[TF프리즘] 또 하나의 타이거즈 KIA, 그 최강팀의 내음
입력: 2017.10.31 01:11 / 수정: 2017.10.31 01:23

KIA 에이스 양현종이 30일 벌어진 한국시리즈 5차전에 구원투수로 등판, 1점차 리드를 지킨 뒤 환호하고 있다./남윤호기자
KIA 에이스 양현종이 30일 벌어진 한국시리즈 5차전에 구원투수로 등판, 1점차 리드를 지킨 뒤 환호하고 있다./남윤호기자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30년 만에 광주에서 헹가래를 올리겠다던 양현종의 다짐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의 팀이 그의 생각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우승의 주역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KIA 타이거즈가 30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2017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7-6으로 꺾고 1패 뒤 4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09년 이후 8년 만이자 해태 시절을 포함해 11번째 패권이다. 타이거즈가 광주에서 마지막으로 헹가래를 한 것은 1987년이었다. 해태의 마지막 헹가래는 1997년이었다. 해태는 2001년 7월 기아자동차그룹에 매각됐다. 그리고 2017년 KIA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새로운 타이거즈의 두 번째 헹가래가 있었다.

20세기 국내프로야구를 지배한 해태 타이거즈는 지금의 KIA 타이거즈와 많이 다르다. 우승 횟수만은 아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전라도라는 지역, 민주화 운동이라는 정치적 상황과 연결된 하나의 시대적 상징이었다. 해태는 우승을 밥 먹듯이 했지만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의 시설은 비라도 오면 진창이 될 정도로 낙후됐고 모기업의 지원은 항상 아쉬웠다. KIA 타이거즈는 기아 챔피언스 필드라는 멋진 야구장을 홈으로 한다. 올해의 우승은 아낌없는 투자의 결과다. 좋은 외국인선수들을 뽑았고, 거액을 들여 최형우라는 대형 FA를 영입했으며, 해외에 진출하려던 양현종을 붙잡았다. 임기영이라는 뛰어난 신예투수를 키워내는 시스템도 갖췄다.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이명기라는 톱타자와 김민식이라는 주전 포수, 김세현이라는 마무리 투수까지 보강했다.

옛 타이거즈를 강하게 만든 것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기질'이었다. 그들이 이룬 위업은 때로 부정적인 시각에 의해 폄하되기도 했다. 가장 '해태적'인 선수 가운데 하나였던 김성한 CMB광주방송 해설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당시 우승을 많이 했지만 전력상 항상 강팀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한국시리즈에 나가게 되면 모두가 잘해보자며 결의도 다지고 했는데 나중에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호흡이 맞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또 "해태가 보여준 정서와 정신은 계승,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그때 그대로여서는 곤란하고 전체의 흐름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도 했다. 지금의 타이거즈의 이미지는 옛 타이거즈의 그것과 다르다. 사령탑부터가 김응용 감독과 김기태 감독은 다른 색깔의 리더다.

그런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타이거즈에게서는 과거 타이거즈의 기운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KIA가 두산과 맞붙게 되었을 때 상대적 약점으로 꼽힌 것이 경험과 불펜이었다. 해태 영광의 시대에 그 일원이었던 임창용은 불펜 투수들을 모아놓고 "이번 한국시리즈는 불펜 덕분에 이겼다는 말 한 번 들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한마디에 후배 불펜 투수들이 각오를 다졌다. KIA 불펜은 시리즈 다섯 경기에서 11.1이닝 동안 2실점만을 했다. 4차전 승리투수 임기영은 스물네 살로 한국시리즈 등판이 처음이다. 그런데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상대 팀 응원가를 따라서 흥얼거렸을 정도다. 해태 타이거즈의 젊은 투수들이 한국시리즈에서 보였던 자신감과 여유를 닮았다.

2차전 완봉승으로 시리즈의 흐름을 바꿔놓았고, 사흘을 쉰 뒤 최종전 세이브로 시리즈를 마무리한 양현종에게는 선동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KIA의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만루홈런의 주인공 이범호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5차전 첫 타석까지 13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그는 타격이 안되면 수비로 팀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하며 강한 타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결국은 타격으로 제몫을 해냈다. 해태의 극적인 홈런들도 그렇게 나왔다. 언젠가는 터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은 배신당하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하면 큰 경기에서 마음이 흔들리기 쉽다. 그러나 KIA는 그렇지 않았다. 김성한 위원이 말한 '계승'이 이뤄진 것이 아닐까? KIA의 이름으로는 이제 두 번째 우승이다. 해태의 아홉 번 우승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 못 나가면 몰라도 나가면 우승하는 타이거즈의 면모만큼은 다르지 않다. 사람이 아닌 팀에도 DNA가 있는 모양이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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