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영웅을 겨냥한 비수, 포크볼
입력: 2017.10.15 04:00 / 수정: 2017.10.15 04:00
무라야마 미노루는 포크볼을 앞세워 나가시마 시게오와 14년간 필살의 대결을 펼쳤다.
무라야마 미노루는 포크볼을 앞세워 나가시마 시게오와 14년간 필살의 대결을 펼쳤다.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영웅을 겨냥한 비수, 포크볼

가와카미 데쓰하루는 1940~1950년대 일본프로야구의 대스타였다. 명문 요미우리의 1차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강타자로 '타격의 신'이라고 불렸다.

1949년 주니치에 입단한 신인 투수 스기시타 시게루는 그런 가와가미에 대해 투지를 불태웠다. '신, 오늘도 2안타' 같은 제목들이 신문 스포츠면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왜 인간을 신이라고 부른단 말인가"라며 반감을 품었다. 그리고 다른 타자는 몰라도 가와카미만큼은 꼭 꺾겠다고 다짐했다.

1954년 스기시타는 요미우리전에서 당시 메이저리그에서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포크볼로 가와카미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맹렬하게 날아오다 포수 앞에서 급격하게 뚝 떨어지는 공에 가와카미는 무기력하게 헛스윙을 했다.

스기시타는 메이지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8년 포크볼을 익혔다. 당시 야구부 기술고문이었던 아마치 슌이치가 스기시타에게 "예전에 메이저리그에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공을 끼워 잡고 던져 타자 앞에서 떨어뜨리는 공이 있었다. 너는 손가락이 길어서 잘 던질 수 있겠다"고 조언했다. 아마치는 1922년 일본을 방문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의 투수 허브 페녹이 포크볼을 던지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그 뒤 메이지대학 투수들은 누구나 한 번쯤 포크볼에 도전하게 됐다. 스기시타도 포크볼 연마에 나섰지만 교본이나 코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오랜 시행착오를 겪었다. 포수가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백네트를 향해 수없이 던졌다. 납으로 만든 공을 이용해 손가락 사이에 공을 끼우는 힘을 키우기도 했다.

프로 입단 5년째에 마침내 공포의 포크볼이 완성됐다. 포크볼을 선보인 이후 각 팀은 경계의 눈길을 보냈지만 그가 한 경기에서 실제로 던진 것은 5~6개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포크볼을 던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타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공을 서둘러 치다가 땅볼이 되는가 하면 한가운데 들어오는 직구를 뻔히 바라보다 삼진을 당하곤 했다. 예전에 다짐한 대로 가와카미를 만나면 포크볼로 승부했다.

스기시타는 1954년 32승을 기록하면서 다승, 방어율, 탈삼진 등 투수 부문 타이틀을 휩쓸었다. 니시테쓰와의 일본시리즈에서도 3승 1세이브를 올리며 맹활약해 주니치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때 감독이 바로 아마치였다. 아마치 감독은 수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기시타를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스기시타가 주니치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바로 그해 17세의 소년이 필사적으로 포크볼을 연습하고 있었다. 나중에 요미우리 킬러가 되는 무라야마 미노루였다.

그가 포크볼을 던지게 된 것도 스기시타와 비슷했다. 스미토모 공고 시절 학교 야구부장을 맡고 있던 교사가 무라야마의 큰 손을 보고는 포크볼을 던지도록 했다. 무라야마는 악력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두 손가락의 힘을 키웠고 잘 때도 두 손가락에 공을 끼운 채 잤다. 두 손가락 간격을 넓히려고 칼로 쨀 생각까지 할 정도로 포크볼에 몰두했다.

간사이대학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그는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한 요미우리의 손길을 뿌리치고 한신에 입단했다. 어릴 때부터 열렬한 한신 팬이었던 그는 프로에 들어가기 전부터 요미우리와의 전쟁을 벼르고 있었다. 그는 결국 요미우리전 통산 39승으로 한신 투수로는 최다승을 기록했다.

무라야마는 요미우리의 '국민 타자' 나가시마 시게오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다. 프로 데뷔 첫해인 1959년 일왕이 관전하는 '천람시합'에서 나가시마에게 홈런을 허용한 이후 더욱 '타도 나가시마'의 의지를 불태웠다. 무라야마는 개인통산 1500탈삼진과 2000탈삼진을 모두 나가시마를 상대로 기록했는데 최고의 타자를 상대할 때 빛을 발한 무기가 바로 포크볼이었다.

무라야마의 '3단 포크'는 마음먹은 대로 던질 수 있기까지 4년이 걸렸지만 그 후에도 갈고닦아 33세의 나이로 감독 겸 선수로 나섰을 때도 14승 3패에 0.98의 경이적인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수 있었던 힘이 돼줬다.

나가시마는 "그의 포크볼은 알고 있어도 칠 수 없었다."며 감탄했다. 무라야마와 나가시마는 14년 동안 필살의 대결을 펼치며 일본 야구팬들을 열광시켰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칭찬했다고 한다.

malishi@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