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투수의 친구' 슬라이더(하)
입력: 2017.08.26 04:00 / 수정: 2017.08.26 04: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스크루볼과 마찬가지로 슬라이더의 기원 역시 확실하지 않다. 커브를 던지는 투수라면 누구나 반대 방향으로 던져 볼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빠르게 던지려고 시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최초'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1930년대에 활동한 두 명의 투수가 슬라이더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조지 블래홀더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조지 얼이다. 블래홀더는 1928년 슬라이더를 처음 던졌고 다른 투수들에게 던지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으로 알려졌다. 얼은 자신이 1929년에 슬라이더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슬라이더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대체로 1930년대부터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슬라이더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데드볼 시대의 투수 치프 벤더가 던졌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벤더가 1911년 《베이스볼 매거진》을 통해 밝힌 자신의 투구 레퍼토리다. 그는 "나는 오버핸드나 사이드암으로 빠른 커브를 던진다. 패스트볼을 높게 또는 몸쪽으로 던지고, 언더핸드로 던지는 페이드어웨이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빠른 커브'가 지금의 슬라이더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커브가 나온 이후 한동안은 패스트볼을 제외한 대부분의 변화구를 커브라고 불렀다. 슬라이더 역시 커브에 비해 변화하는 각도가 작다고 해서 '싸구려 커브(nickel curve)'로 불렸다.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사실상 같은 구종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미 존재했던 비슷한 공들이 중요한 구종으로 인식되면서 하나의 독립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슬라이더는 발전에 한계를 맞거나 위기에 봉착한 투수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 강속구 투수였던 밥 펠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1945년에 복귀했다. 패스트볼의 위력이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가 돌아왔을 때 마침 새로운 공이 등장해 있었다. 슬라이더를 배워 기존의 패스트볼과 커브에 더한 그는 1946년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자신의 두 번째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26승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왼손 투수 가운데 최다승을 자랑하는 워렌 스판도 원래는 패스트볼과 커브에 의존했다. 1949년부터 3시즌 연속 20승 이상을 올렸던 그는 1952년 14승 19패의 불만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슬라이더와 스크루볼 두 가지 구종을 추가하면서 그의 피칭은 다시 위력을 되찾았다. 1953년 그는 23승 7패에 2.10의 뛰어난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었던 빌리 피어스는 데뷔 후 몇 년간 평범한 투수였다. 특히 컨트롤에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1951년 폴 리처즈가 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리처즈는 피어스의 투구 자세를 약간 손봤고 슬라이더를 던지도록 했다. 이전 두 시즌 112개와 137개의 4구를 내줬던 피어스는 리처즈가 온 뒤 2시즌에 각각 73개와 79개만을 허용했고 그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많은 투수들이 슬라이더를 던지게 됐지만 그들 모두 칼턴 같은 공을 던질 수는 없었다. 슬라이더가 이름과는 달리 정확한 지점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면 타자가 치기 좋은 곳으로 들어오는, 그것도 스피드까지 줄인 평범한 패스트볼에 불과하기 때문에 장타를 맞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슬라이더는 리그의 전반적인 타율을 떨어뜨린 반면 홈런도 양산했다. 슬라이더를 '고퍼(gopher)'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홈런을 맞는 공이라는 뜻이다. '맞으면 멀리 간다(go far)'거나 '펜스를 향해 날아간다(go for the fence)'를 줄인 말이다.

커브는 탄생 이후 패스트볼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구종으로 대접받아 왔으나 그 지위를 슬라이더에 넘겨준 지 오래다. 커브의 변화에 패스트볼의 스피드를 더한 슬라이더는 2013년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 사용된 비율이 14.5%로 패스트볼(57.8%) 다음으로 높았다. 이에 비해 커브는 9.7%로 체인지업(10.2%)에게도 밀려났다. 그러나 슬라이더에서 다시 패스트볼 쪽으로 한 걸음 더 나간 컷 패스트볼(커터)이 인기를 얻으면서 슬라이더의 비중은 이전에 비해 다소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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