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알루미늄 배트
입력: 2017.08.13 04:00 / 수정: 2017.08.13 04: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알루미늄 배트

1972년 미국 대학야구에 알루미늄 배트가 등장했다. 속이 비어 있어 가벼우면서도 강한 알루미늄 배트는 곧 리틀리그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른 모든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급속하게 전파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데 있었다. 처음 나왔을 때 알루미늄 배트는 나무 배트보다 비쌌다. 그러나 절대 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비용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었다.

알루미늄 배트의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나무 배트와는 다른 점이 또 하나 드러났다. 가볍고 강하기 때문에 타자들의 스윙이 빨라지고, 타구가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이었다. 타격이 약한 타자들에게 큰 도움이 됐고 원래 장타력을 갖춘 선수들의 타구 비거리는 훨씬 더 늘어났다. 1974년 미국대학체육협회(NCAA)가 알루미늄 배트의 사용을 승인한 이후 홈런수가 나무 배트를 사용할 때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프로 야구는 알루미늄 배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역사적인 기록들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알루미늄 배트를 인정하면 위대한 타격 기록들이 급속도로 사라져 버리고 과거의 투수 기록들은 깨트리기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기록을 알루미늄 배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관리해야 할 판이었다. 알루미늄 배트를 금지한 이유는 또 하나의 이유는 도구가 아닌 인간의 능력에 의해 기량을 겨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알루미늄 배트의 사용은 프로 야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아마추어에서 야구를 하던 선수들이 나무 배트를 쓰는 프로에 와서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자들이 나무 배트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투수들의 경우는 더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새로 메이저리그에 진입한 투수들에게서 인사이드 피칭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피칭 기술의 발전은 타격 기술의 영향을 받는다.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타자들은 투수가 던진 몸쪽 공에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었다. 방망이가 부러지는 일도 없었고, 배트 중심에 맞지 않더라도 내야를 넘겨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투수들은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피칭을 하게 됐다. 투수들은 아마추어에서 타자의 몸쪽으로 공을 던지는 기술을 배우지 못한 채 프로에 들어와 새롭게 인사이드 피칭을 익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와 상관없이 타자의 몸을 맞히는 일이 빈번해 졌다.

스트라이크 존의 개념이 확립된 이후 홈플레이트 위의 좁은 상공을 차지하기 위한 투수와 타자의 싸움이 계속돼 왔다. 그런데 알루미늄 배트가 등장하면서 투수들에게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타자와의 싸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앗아갔다. 프로에서는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것을 금지했지만, 피칭의 면에서 보면 실제로 사용된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한국에서도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알루미늄 배트가 도입됐다. 그 이전에도 일부 선수들이 일본과 미국에서 개별적으로 구입해 사용하다가 이 해부터는 모든 선수들이 사용하고, 적응하면서 나무 배트를 쓸 때보다 비거리가 5~7m 늘어났다.

게다가 서울운동장 마운드 높이를 국제 추세에 맞추어 5㎝ 가량 깎아내리면서 '정통파' 투수들에게 불리해졌다. 알루미늄 배트의 사용으로 홈런이 늘어나면서 투수들은 달라진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1960년대 재일교포 투수들이 국내에서 활약하면서 위력을 떨친 슬라이더도 영향을 받았다. 슬라이더는 직구처럼 보이다가 마지막 순간 방향을 틀기 때문에 타자가 공을 배트의 중심에 맞히기 어렵게 한다. 중심에서 벗어나면 타구가 약해지거나 때로는 방망이가 부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알루미늄 배트는 중심에서 벗어난 빗맞은 타구마저 외야까지 날아가게 만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변화하는 공이 필요하게 됐고, 낙차 큰 커브 계통의 공을 개발하는 투수들이 많아졌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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