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빈볼과 브러시백(하)
입력: 2017.08.06 04:00 / 수정: 2017.08.06 04: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깁슨 역시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왼손 투수는 코팩스, 오른손 투수는 깁슨이다. 17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동안 깁슨을 최고의 자리에 서게 한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승리에 대한 맹렬한 투지, 정교한 컨트롤, 그리고 타자를 홈플레이트로부터 밀어내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그는 거의 습관적으로 몸쪽 공을 던져 타자를 뒤로 나자빠지게 만들었다. 타자들은 깁슨을 두려워하면서도 경멸했다. 거기에는 빈볼(bean ball)인가, 아니면 브러시백 피치(brushback pitch)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빈볼은 타자를 홈플레이트로부터 떨어지게 하거나, 타자나 상대팀의 특정한 행위에 대해 혼내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타자의 머리를 겨냥한 투구다. 애초에는 머리를 향해 던지는 볼만을 빈볼이라고 했지만 어느 신체 부위에 맞든 고의성이 있는 위협적인 투구 모두를 뜻하게 됐다. 야구 규칙에 의해 금지된 행위다.

브러시백은 타자에게 겁을 줘 뒤로 물러서게 만들려는 공이다. 처음부터 타자를 맞히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빈볼과는 다르다. 문제는 빈볼과 브러시백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녹다운(knockdown)이라는 말도 있다. 빈볼과 브러시백을 포괄하는 말이다.

깁슨은 자신의 브러시백이 타자를 맞히거나 겁을 주려는 목적으로 던지는 공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타자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장타를 맞았다고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지지는 않는다. 타자가 홈런을 쳤다면 그건 내 실수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왜 타자가 홈플레이트 쪽으로 바짝 붙게 내버려뒀냐는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브러시백이 투수에게 좋은 무기라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아마도 스트라이크존의 개념이 확립된 순간부터일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 막 팀에 입단한 신인 투수가 감독에게 와서 물었다. "야구에서 제일 좋은 공이 뭐죠? 커브인가요? 아니면 패스트볼? 그것도 아니면…" 그러자 감독이 대답했다. "이것 봐. 야구에서 제일 좋은 공은 스트라이크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두 번째로 좋은 공은 녹다운 피치지."

투수는 자신이 공을 던지려고 하는 곳으로부터 가능한 한 타자를 멀리 두고 싶어 한다. 타자는 투수가 공을 던질 것으로 생각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면 투수에게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타자는 타석의 땅을 발로 파면서 앞으로 다가간다. 투수는 몸쪽 공을 던져 물러서게 만든다. 투수와 타자의 주도권 싸움은 다분히 심리전의 양상이다. 그리고 몸쪽 공을 던질 수만 있다면 유리한 쪽은 투수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빠른 공에 대한 타자의 본능적인 두려움, 이것이 투수를 승리하게 만들었다.

합법적으로 스핏볼을 던진 마지막 투수 벌리 그라임스는 헤드헌터로도 유명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타자가 약점이 있으면 당연히 그쪽으로 던진다. 좋아하는 곳으로는 절대 던지지 않는다. 그게 기본이다. 타자가 맞든 말든 신경 안쓴다. 타자가 맞을까봐 좋아하는 곳으로 던진다고? 그러면 내가 망하는데?"

강속구로 유명했던 월터 존슨은 자기 공에 타자가 맞으면 어떡하나 하고 항상 걱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존슨은 타자의 몸에 맞는 공을 가장 많이 기록한 투수다. 이에 대해 레너드 코페트는 "당시는 타자에게 위협구를 던져 타구폼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었고 타자들도 그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존슨은 그런 투구 패턴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몸에 맞는 공이 많이 나왔다는 것은 평범한 안쪽 공을 타자가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공의 스피드가 얼마나 빨랐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아무리 빨라도 타자가 위협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공에 그렇게 많은 몸에 맞는 공이 나왔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타자가 자신의 공에 맞는 것을 꺼렸던 존슨조차도 결국 몸쪽 승부는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투수의 전략적인 무기로서 브러시백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위협구에 대한 제한이 강화된데다 타자들은 각종 보호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나 던지지가 힘들어진 만큼 몸쪽 공의 의미와 가치는 투수에게 더 커질 수밖에 없다.

malishi@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