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박철순과 너클볼
입력: 2017.07.16 04:00 / 수정: 2017.07.16 04:00
박철순 /KBO 한국프로야구화보
박철순 /KBO 한국프로야구화보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박철순과 너클볼

한국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 투수 박철순의 너클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국내 야구에서는 생소한 공이었던 너클볼을 그가 던졌다는 사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해 22연승의 대기록을 세우며 투수 가운데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게다가 미국프로야구 출신이었다. 마이너리그라고는 하더라도 '본고장'에서 '고급 야구'를 익힌 선수가 '마구'를 던진다는 것은 미디어와 야구팬의 구미를 당기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너클볼이 어떤 공인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지면서 그가 정말 너클볼을 던졌는지 논란이 있었다. 나중에 그가 "사실은 팜볼을 던졌다"고 밝히면서 이제는 그가 던진 공이 팜볼이었던 것으로 정리됐다.

그러면 너클볼은 어떻게 된 것인가? 당시 OB의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 전 한화 감독에게 박철순이 너클볼을 던졌는지 물었다. 김 감독은 "본격적인 너클볼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 손가락 끝으로 너클볼과 비슷하게 공을 잡았기 때문에 그 자신도 너클볼을 던졌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공'은 곧 '그 공'일 수도 있다.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는 구종이라 하더라도 투수마다 그립과 투구동작은 조금씩 다르다. 각자의 신체적 특징과 원하는 효과에 따라 자신에게 맞도록 변형하기 때문이다. 팜볼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너클볼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박철순이 너클볼에서 원했던 것은 빠른 공을 더욱 살려줄 수 있는 움직임과 스피드의 변화, 즉 체인지업이었다. 본격적인 너클볼은 체인지업으로 쓰기에 적당한 공은 아니었다. 너클볼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해도 공을 제대로 받을 포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성의 문제도 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밀워키 브루어스의 더블A 팀 엘파소 디아블로스에 있었다. 마이너리그는 수많은 투수들이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우는 곳이다. 일반적인 구종으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투수들이 스크루볼처럼 흔히 쓰이지 않는 공을 연마한다.

박철순 역시 마찬가지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가 한국에서 최고의 투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릴리스 각도가 좋았던 패스트볼과 훌륭한 커브였다.

김성근 감독은 "던질 수 있는 공이 몇 개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공이라도 자신의 뜻대로 타자를 처리할 수 있느냐다. 누구나 포크볼이나 체인지업, 투심을 던질 줄은 안다. 그러나 실전에서 자신의 무기가 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너클블올 본격적으로 던진 투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완급 조절을 위해 쓴 정도다. 너클볼을 던진 투수 가운데 잘 알려진 이름은 와카바야시 다다시다. 하와이 출신인 그는 1944년과 1947년 MVP에 올랐고 통산 237승을 기록했는데 '7색 변화구'로 유명하다. 그가 던진 7개의 변화구는 체인지업과 싱커, 포크볼, 팜볼, 그리고 잡는 방법이 각자 다른 3종류의 너클볼이었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공을 던졌다는 사실보다는 그렇게 하면서도 제구가 가능했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와카바야시는 너클볼에 대해서 바람이 부는 정도나 타자와의 볼카운트에 따라 조금씩 다른 공을 던졌다며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수로는 한신에서 활약한 진 바크의 너클볼이 유명하다. 바크는 1964년 센트럴리그 다승(29승)과 평균자책점(1.89) 타이틀을 차지해 일본인이 아닌 투수로는 처음으로 사와무라 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요미우리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91㎝의 장신이었던 바크는 패스트볼에 가까운 스피드의 너클볼을 승부구로 던진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 그가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은 팀 동료 고야마 마사아키의 도움으로 컨트롤을 잡은 슬라이더 덕분이었다. 너클볼은 포수가 포구에 애를 먹었기 때문에 경기 상황에 여유가 있을 때 재미로 던져 타자가 놀라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정도였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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