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스크루볼(상)
입력: 2017.06.12 04:00 / 수정: 2017.06.12 04: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스크루볼

193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의 선발 투수는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 칼 허벨이었다. 1회초 허벨은 첫 두 타자에게 안타와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베이브 루스를 시작으로 루 게릭, 지미 폭스, 알 시먼스, 조 크로닌까지 다섯 명의 아메리칸리그 강타자들을 연속해서 삼진으로 잡아낸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나중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위대한 타자들이었지만 허벨의 공을 배트에 맞히지도 못했다.

허벨이 이 다섯 명을 상대하면서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 던진 공은 모두 같았다. 스크루볼이었다. 루스는 4개 가운데 잇따라 들어온 3개의 스크루볼에 삼진을 당했고, 게릭은 풀카운트까지 갔지만 스크루볼에 잇따라 헛스윙한 뒤 물러났다. 그나마 폭스는 한 차례 파울팁 으로 공을 건드리는데는 성공했다. 2회에도 시먼스와 크로닌을 연속으로 삼진으로 아웃시킨 허벨은 빌 디키에게 단타를 허용하며 역사적인 탈삼진 쇼를 끝냈다.

허벨은 이 올스타전이 열리기 전해인 1933년 이미 내셔널리그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카디널스를 상대로 18이닝 1-0 완봉승을 거뒀고, 46⅓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도 세웠다. 결국 그 시즌 10차례의 완봉승을 포함해 23승(12패)을 거두며 내셔널리그 MVP로 뽑혔다. 평균자책점 1.66은 라이브볼 시대 들어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 모두 스크루볼의 위력 덕분이었다. 루스 등 아메리칸리그 타자들은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대해보기는 처음인 스크루볼에 속수무책이었다.

허벨 이전에도 스크루볼은 있었다. 19세기에 활동한 클라크 그리피스가 처음 던졌다는 주장도 있다. 스크루볼의 기원에 대해서는 허벨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스크루볼을 만들었다고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스크루볼은 역 방향으로 던지는 커브이기 때문이다. 커브를 던질 줄만 안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반대로 던져볼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데드볼 시대의 스타였던 크리스티 매튜슨이 던지면서부터였다. 매튜슨은 뉴욕 자이언츠에 합류하기 전 톤튼에 있을 때 동료 왼손 투수가 커브를 던지는 것과 같은 동작이지만 손의 방향과 손목 움직임을 달리해 공을 던지는 것을 보게 됐다. 매튜슨은 처음 본 신기한 공에 매료됐다. 그의 동료 투수는 그 공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뛰어난 제구력을 자랑하던 매튜슨은 그 공을 자신의 새로운 무기로 삼을 수 있었고 '사라지는 공(fadeaway)'이라고 이름붙였다.

매튜슨은 오른손 투수였지만 그 이후 허벨을 비롯해 스크루볼로 성공한 투수들은 대부분 왼손 투수들이었다. 오른손 투수보다는 왼손 투수가 던질 때 이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스크루볼은 커브의 반대 방향으로 변화한다. 오른손 투수가 오른손 타자에게 던졌을 때 공은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진다. 왼손 투수가 오른손 타자에게 던지면 공이 타자의 바깥쪽으로 휘어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왼손 투수는 왼손 타자에 강점이 있지만 오른손 타자에는 그렇지 못하다. 릴리스포인트의 위치와 그에 따른 타자의 시야 때문이다. 따라서 왼손 투수의 커브는 오른손 타자에게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스크루볼은 서로 다른 손을 쓰는 투수와 타자 간의 유불리를 상쇄시킨다. 그런데 오른손 타자가 왼손 타자보다 많기 때문에 스크루볼은 왼손 투수에게 더 효과적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공략하기 어렵다.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타자들이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스크루볼은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좋은 커브와 스크루볼을 함께 갖고 있다면 더욱 효과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왜 스크루볼을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을까? 스크루볼은 '양날의 칼'로 여겨져 왔다. 타자를 농락하는데는 큰 효과가 있지만, 던지는 투수의 몸도 망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대로 던질 수 있도록 익히기 어렵다는 점과 함께 필연적으로 부상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투수들이 스크루볼을 기피하는 원인이 됐다.

스크루볼은 투구 동작이 다른 공을 던질 때에 비해 매우 부자연스럽다. 팔과 손목을 몸쪽으로 비틀면서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커브는 손바닥이 안쪽을 향하도록 공을 쥐고 던지는 반면 스크루볼은 손바닥이 바깥쪽을 향하도록 공을 쥐고 던진다. 이같은 동작 때문에 근육에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생각됐다. 최근까지도 어깨에 무리가 간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팔꿈치에 좋지 않다는 견해도 있었다. 손목을 다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처럼 스크루볼이 투수의 팔을 망가뜨린다는 인식 때문에 허벨은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고도 한동안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허벨이 스크루볼을 처음 던지게 된 것은 마이너리그에서였다. 그는 클로드 토머스라는 나이 많은 왼손 투수가 싱커를 던지는 것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고 자신도 싱커를 연마하기 시작했다. 싱커는 스크루볼과 손목을 회전시키는 방향이 같다. 따라서 던지는 방법도 큰 차이가 없다. 허벨은 팔과 손목을 비트는 각도를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싱커와는 다른 공을 개발하게 됐다. 그때까지 그럭저럭 괜찮은 패스트볼과 커브뿐이었던 그는 새 공을 자신의 투구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1925년 마이너리그 팀 오클라호마시티에 합류했을 때 허벨은 베테랑 포수를 상대로 몸을 풀면서 자신의 새 공을 선보였다. 포수는 허벨의 공을 몇 번 받아보더니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괴상한 공(the screwiest damn pitch)"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공의 이름은 스크루볼이 됐다.

허벨은 스크루볼로 오클라호마시티에서 17승13패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오클라호마시티로부터 그에 대한 권리를 사들였다. 허벨은 스크루볼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생각에 한껏 꿈에 부풀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스크루볼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1926년 처음으로 참가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허벨에게 악몽이었다. 당시 디트로이트 감독은 타이 콥이었고 루키들을 관리하는 코치는 조지 맥브라이드였다. 허벨이 스크루볼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본 맥브라이드는 허벨에게 팔을 망가뜨릴 것이라며 던지지 말 것을 지시했다. 콥 역시 허벨에게 스크루볼 투구를 금지했다. 콥은 시범경기에 허벨을 단 한 차례도 등판시키지 않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다. 스크루볼을 던지지 못하면서 자신감까지 잃은 허벨은 마이너리그에서도 통하지 않는 평범한 투수가 됐다. 결국 3년 뒤 디트로이트는 그를 텍사스리그의 보몬트에 팔아넘겼다.

좌절감에 빠진 허벨은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보몬트에서는 스크루볼을 던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그를 구한 것은 뉴욕 자이언츠 감독 존 맥그로의 임시 스카우트였던 딕 킨셀라였다.

정치인이었던 킨셀라는 1928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문에 휴스턴에 와있었다. 하루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야구장에 갔는데 휴스턴과 보몬트의 경기에서 허벨의 피칭을 보게됐다. 그 경기에서 허벨은 11이닝을 던지며 2-1 완투승을 거뒀다. 킨셀라는 곧바로 맥그로에게 전화를 걸어 잠재력 있는 미래의 에이스를 찾았다고 전했고 허벨은 며칠 뒤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스크루볼이 투수의 팔을 망가뜨린다는 이야기에 맥그로는 "농담도 심하지. 예전에 매티(크리스티 매튜슨)가 페이드 어웨이라고 그것과 똑같은 공을 던졌는데 팔이 멀쩡했단 말씀이야."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매튜슨과 허벨 사이에는 자이언츠와 맥그로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셈이다.

허벨과 스크루볼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맥그로였지만 그 덕을 본 것은 그의 뒤를 이어 자이언츠 감독이 된 빌 테리였다. 허벨은 자이언츠에서 16년 동안 253승을 거두며 193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가 됐고 1947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언론은 그에게 '칼 대제(King Carl)'라는 별명을 붙였고, 다른 팀 감독들은 그를 '테리와 자이언츠의 밥줄(The Meal Ticket)'이라고 불렀다.

malishi@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