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볼파크] 체인지업과 패스트볼
입력: 2017.05.02 05:00 / 수정: 2017.05.02 05:00
류현진. / 게티이미지 제공
류현진. / 게티이미지 제공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LA 다저스 류현진이 마침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1일(이하 한국시간)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5⅓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9개의 탈삼진을 빼앗았는데 눈길을 끈 것은 체인지업이었다.

류현진은 지난달 25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시즌 첫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는데 이 때 체인지업 구사율이 42%를 넘었다. 필라델피아와 경기에서도 체인지업을 가장 많이 던져 38% 가까이 됐다. 호투의 이유가 체인지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가 좋다보니 그 효과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게다가 패스트볼스피드가 생각처럼 올라오지 않는데 대한 우려가 있는 까닭에 두 경기처럼 체인지업을 많이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그럴까?

현재는 체인지업을 하나의 구종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는 구종이라기보다는 투구 방식이었다. 호칭도 지금은 별로 쓰지 않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change of pace)였다. 타자가 패스트볼로 생각하도록 똑같은 동작으로 던지면서 속도를 죽여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1940~1960년대에 활약한 워렌 스판이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런 생각은 훨씬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체인지 오브 페이스라는 말이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1868년이다. 투수들이 빠른 공을 던지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느린 공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체인지업은 패스트볼 때문에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투수들이 언더핸드로만 공을 던져야 했던 때에 교묘하게 손목을 사용해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공을 던졌던 짐 크레이턴은 타자들이 자신의 투구에 적응하자 스피드를 줄이고 큰 포물선을 그리는 투구 기술을 개발해 '이슬방울(dew drop)'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언더핸드 체인지업이었다.

1884년 오버핸드 투구가 허용된 이후 투수들은 더 빠르고 더 힘있는 패스트볼을 던지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한편으로는 체인지업도 던졌다. 팀 키프 같은 19세기의 투수들이 이미 체인지업을 던졌던 것이다. 다만 이름은 체인지업이 아니라 '슬로 볼'이었다. 당시에 쓰였던 체인지오브페이스는 투구에 변화를 주는 것, 즉 패스트볼과 슬로 볼을 모두 가리킨 말이었다.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빼앗는 공을 체인지업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서클체인지업을 의미한다. 투수들이 가장 많이 던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인지업은 속도만 느린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 패스트볼보다 느린 시간차만큼 더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특징을 잘 살린 피칭은 속도뿐 아니라 궤적의 변화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서클체인지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매우 드물다.

류현진의 재기를 기대하면서 흔히 예로 드는 투수가 트레버 호프먼과 그레그 매덕스다.

호프먼은 어깨 수술을 받은 뒤 강속구를 던질 수 없게 되자 체인지업을 개발해 최고의 구원투수로 거듭났다. 어깨 수술 이후 구속 저하를 보이고 있는 류현진도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매덕스는 포심패스트볼은 물론 투심과 커터 등 변형 패스트볼에 서클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등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무엇보다 제구력이 뛰어났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볼 때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뛰어난 투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국 진출 이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완급 조절과 제구력 덕분이었다. 처음부터 지향하는 바가 매덕스 쪽이었다.

그러나 호프먼이 던진 것은 서클체인지업이 아니라 그보다 변화가 심하고, 완벽하게 던지기도 힘든 팜볼이었다. 매덕스처럼 많은 구종을 완벽하게 제구하기도 호프먼이 팜볼을 자유자재로 던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류현진에게 체인지업은 패스트볼을 대신할 마구가 아니라 패스트볼과 함께 던져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류현진이 경기 후 구속이 좀 더 올라오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 야구에서 체인지업은 선발투수의 레퍼토리에서 필수적인 구종으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투수들이 많이 던지기 때문에 타자들도 그에 대응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메이저리그 타자라면 체인지업을 공략할 수 있어야 한다.

강속구를 갖고 있지 못한 투수들에게 체인지업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좋은 투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체인지업은 근본적으로 패스트볼의 위력을 강화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체인지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패스트볼이 어느 정도 위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포심패스트볼에 한계가 있다면 투심패스트볼을 가져야 한다.

류현진이 최근 두 경기에서 체인지업의 비율을 높여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성공적인 복귀를 위한 해답은 될 수 없다. 많이 던지다 보면 타자의 눈에도 익고, 제구가 안 된 공도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타자가 알고 있거나 제대로 던져지지 않았을 때 체인지업은 그냥 치기 좋은 느린 공이다. 과도한 사용보다는 패스트볼과 조화를 이뤄 적절하게 던질 때 타자와의 심리전에서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디지 딘이 1952년에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체인지업은 아주 좋은 투구다. 단, 너무 지속적으로 던지지만 않는다면."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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