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27일 현재 프로야구 타격순위에는 1할대 타율을 기록 중인 타자가 3명 있다. KIA 김주찬(0.189), 두산 오재원(0.182), 삼성 다린 러프(0.150)다. 김주찬은 지난 시즌 타율 0.346으로 타격 4위에 올랐다. 오재원은 데뷔 후 3할 타율을 기록한 것이 딱 한 번뿐이지만 통산타율이 0.272다. 즉, 원래 못치는 타자가 아니라 시즌 초반 일시적인 슬럼프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러프는 올시즌 처음 선을 보인 외국인 타자다. 계속 적응하지 못하면 교체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타격순위에서 1할대 타자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시즌이 끝났을 때 타율이 1할대였던 타자는 단 두 명이다. 1986년 청보의 권두조(0.162)와 1997년 현대의 박진만(0.185)이다. 원년의 백인천 한 명뿐인 4할타자만큼이나 귀한 것이 1할타자다. 1할이 될 뻔한 타자들도 있었는데 1985년 OB 유지훤이 0.209, 1993년 쌍방울 김호가 0.204로 간신히 2할대를 기록했고, 2013년 NC 권희동은 0.203으로 안타 2개만 덜 쳤으면 1할이었다. 타격순위에서 최하위를 가장 여러 번 기록한 타자는 김민재(현 롯데 코치)다. SK 소속이었던 2003년(0.211), 한화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2006년(0.211)과 2008년(0.241) 등 세 차례나 리그 최저타율이었다.
권두조에서 김민재까지 앞에서 언급한 타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권희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야수, 그 중에서도 유격수였다. 시즌 타율이 1할대일 정도로 타격이 저조한데도 규정타석을 채울 만큼 기용됐다는 사실은 유격수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타격이 부진하다고 쉽게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에게 1할 타율은 하나의 '훈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ESPN은 여러가지 기준과 통계를 종합해 리그 선수들의 순위를 매긴다. 순위 산정 방법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타격에서 수비를 고려하는 점이다. 포지션별로 수비가 어려운 정도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데 포수가 50점으로 가장 많은 점수를 받고 그 다음이 유격수의 35점이다. 수비를 하지 않는 지명타자는 가산점이 없다. 포구와 블로킹은 물론 투수 리드와 주자 견제, 수비 지휘 등 할 일이 너무나 많은 포수와 수비의 핵인 유격수가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수비 부담이라는 면으로 볼 때 타격에서 가장 핸디캡이 큰 포지션은 포수다. 그런데 역대 시즌 최저타율 타자 가운데 포수는 박경완(1995, 1997년)과 박동원(2016년)뿐이다. 한국프로야구는 포수에게도 어느 정도의 공격 기여도를 기대해왔으며 정상급 포수도 공격에서 최소한의 역할은 해내려고 노력해왔다. 타율은 높지 않아도 일발 장타력을 갖춘 포수들이 꽤 있다. 물론 최저타율이 아닐 뿐 전반적으로는 타율이 낮다. 또 부상을 당하거나 확실한 주전이 없어 타율이 낮은 포수가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수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좋은 타격솜씨를 보이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올시즌 KIA 김선빈, LG 오지환, 삼성 강한울 한화 하주석 등 유격수들이 3할 타율을 기록 중이다. 포수로는 두산 양의지가 3할 타율을 치고 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 기술이 발전했다. 이에 따라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에서도 타격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수비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타격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 대량득점 경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타격을 수비로 커버할 수 있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전에도 거의 없었던 1할타자의 출현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진 것이다. 1할타율을 말할 때 선수의 타격 외 능력의 대단함보다는 진귀함쪽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할타자가 나온다면 그 선수가 갖고 있는 다른 능력은 정말 엄청난 것일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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