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19세기의 투수들(하)
입력: 2017.04.15 05:00 / 수정: 2017.04.15 05: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19세기에는 선발투수가 대부분의 경기를 완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실제 선발로 나설 주력 투수도 두 명 정도인 팀이 대부분이어서 로테이션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자연히 등판 경기수와 투구 이닝수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엄청났다. 스위니가 한 경기 19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바로 그해, 더 대단한 기록이 나왔다.

당시 프로비던스의 에이스는 찰리 '올드 호스' 래드본이었다. 래드본은 언더핸드로 커브와 커브를 변형시킨 공을 던지면서 1882년에 33승, 1883년에 48승을 올렸다. 1884년에도 24승8패로 잘 나가던 그는 빈둥거리며 말을 잘 안 듣는다는 이유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스위니가 에이스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런데 얼마 뒤 이번에는 스위니가 빠지게 됐다. 훈련을 빼먹고 경기 중 마운드에서 내려오라는 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경기에 나선 래드본은 20경기에 연속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두는 괴력을 과시했다. 결국 그해 75경기에 등판해 679이닝을 던지며 한 시즌 59승이라는 영원히 깨질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가 현재와 같아진 것은 한 투수의 스피드 때문이었다. '야구 사상 가장 빠른 볼을 던진 투수가 누구냐'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 가운데 하나인 에이모스 루시가 그 주인공이다.

루시는 엄청나게 빠른 공을 던졌지만 컨트롤이 불안한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1889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뉴욕 자이언츠에 합류한 루시는 1891년부터 4시즌 연속 30승 이상을 올리며 맹위를 떨쳤다. 그런데 1892년 볼티모어와의 경기에서 던진 패스트볼이 상대 유격수 휴기 제닝스의 머리를 강타하고 말았다. 쓰러진 제닝스는 4일 동안 의식을 잃고 누워 있어야 했다.

이 사건으로 투수들의 스피드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1893년부터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가 50피트에서 60피트6인치로 멀어졌다. 물론 제닝스가 빈볼을 맞은 것 때문만은 아니다. 투수들이 오버핸드로 던지게 되면서 루시뿐 아니라 전체 투수들의 스피드가 빨라졌고, 그에 따라 타자들의 타격이 너무 저조했기 때문이다.

거리를 늘려놓은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1892년 .245였던 리그 전체 타율이 1893년에는 .280으로 크게 높아졌다. 묘한 것은 루시의 성적이다. 탈삼진 숫자는 80개 줄어든 208개였지만 여전히 내셔널리그 1위였고, 볼넷도 267개에서 218개로 함께 줄었다.

그의 커브는 패스트볼 못지않게 빨랐는데 바뀐 거리에서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다. 투구 거리가 늘어나는데 중요한 이유가 됐던 루시는 패스트볼과 커브가 조화를 이루고 컨트롤이 개선되면서 불리해진 환경에서 오히려 더 좋은 투수로 거듭났다.

그러나 루시와는 달리 대부분의 투수들은 적응에 애를 먹었다. 루시, 사이 영과 함께 19세기 최고 투수로 꼽히는 키드 니콜스는 탈삼진이 1892년 187개에서 1893년 94개로 절반이 됐다. 니콜스는 당시 최고를 자랑했던 제구력을 앞세워 불리해진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오버핸드 투구가 허용된 이후 투수들은 더 빠르고 더 힘있는 패스트볼을 던지기 위한 투구 동작을 만드는데 골몰했고, 그 결과 와인드업이 화려해졌다.

그러나 니콜스는 와인드업을 거의 하지 않는 간결한 투구 폼을 고집했다. 니콜스는 루시에 못지않는 빠른 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투구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는 와인드업을 권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큰 동작은 컨트롤을 잡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그의 선택은 성공을 거뒀다. 타자들은 그가 패스트볼을 던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로 들어올지 예상할 수 없었고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투구 거리가 멀어지면서 제구력의 중요성은 커졌고 자로 잰 듯한 컨트롤은 니콜스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그는 1893년 이후에도 다섯 차례나 시즌 30승 이상을 올렸다.

역대 개인 통산 최다승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활약한 영의 511승이지만, 19세기만을 놓고 보면 니콜스가 영보다 30승이 더 많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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