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투수의 탄생(2)
입력: 2017.03.13 05:00 / 수정: 2017.03.13 05: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이 경기 이후 크레이턴이 마음대로 공을 가라앉게도, 떠오르게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많은 투수들이 그의 투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처럼 던질 수는 없었고 컨트롤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수가 공을 놓치기 일쑤여서 폭투가 양산됐다.

야구 사상 최초의 스타 투수가 된 크레이턴은 브루클린 익설시어스에 입단해 동부 지역 각지를 순회하며 경기를 했다.

크레이턴의 투구는 사실 반칙이었다. 언더핸드로는 던졌지만 손목을 쓸 수 없도록 한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정 투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심판들은 규칙을 위반한 것을 보지 못했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당시 야구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헨리 채드윅이 크레이턴의 '두뇌 피칭'을 칭찬하면서 논란은 끝났다. 크레이턴의 투구가 용인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기 진행이 빨라졌고 더욱 흥미로워졌으며 무엇보다 관중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의 야구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투수들에게 타자에게 얻어맞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칠 수 없는 곳으로 던지는 것뿐이었다. 대부분의 투수들은 타자가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스윙을 하기를 바라며 계속 나쁜 공만 던졌고, 타자는 투수가 치기 좋은 볼을 던질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그러나 크레이턴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투수들은 타자와 본격적인 대결에 나섰고, 주루와 득점에만 관심을 가졌던 팬들도 투수의 활약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미미한 존재였던 투수가 야구의 심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1864년 '투수 박스'가 생겼다. 투수는 투구 때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고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공을 던져야 했다. 이전처럼 달려와서 던질 수 없게 됐다.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1860년대 중반에는 대부분의 투수들이 가능한 한 빠른 공을 던지려고 했다. 예전처럼 타자에게 얌전히 토스하는 투수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야구 규칙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재와 비슷한 쪽으로 바뀌어 갔다. 크레이턴이 스냅을 이용해 빠른 볼을 던지면서 다른 투수들도 공을 놓을 때 손목을 쓰게 됐고 더 이상 제한이 무의미해졌다.

결국 1872년 손목 사용을 허용하게 됐다. 손의 위치도 마찬가지였다. 투수들의 손은 점점 위로 올라갔고 허리를 거쳐 1884년에는 손 높이의 제한이 어깨까지 완화됐다. 투수들은 마침내 오버핸드로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게 됐다.

1887년에는 타자가 투수에게 공의 위치를 지정할 수 없도록 한 대신 투수는 타자의 어깨 윗부분부터 무릎 아랫부분 사이에 공을 던지도록 했다. 스트라이크존의 개념이 생긴 것이다.

투수는 자신의 뜻대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자유를 얻은 대신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는 의무를 갖게 됐고 이는 피칭이 힘의 차원을 넘어 기술의 단계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향하면서도 얻어맞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1888년에는 타자가 제3 스트라이크에 아웃되도록 했고, 1889년에는 투수의 투구가 네 번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 볼이 되면 타자가 출루하도록 했다. 투수와 타자의 볼 카운트 싸움이 시작됐다.

투수들의 공이 빨라지면서 타자가 불리해지자 투수와 포수 간의 거리를 벌려 균형을 맞췄다. 처음 45피트였던 투수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는 점점 늘어나 1893년에는 현재와 같은 60피트6인치(18.44m)로 확정됐다.

투수 박스 대신 투수판도 도입됐다. 타자와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투수들은 더욱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한 기술을 개발했고 타자들은 그 빠른 공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1900년 한 변의 길이가 12인치인 정사각형이었던 홈플레이트가 17인치 폭의 5각형으로 바뀌었다. 스트라이크존의 폭은 17인치로 똑같았지만 타자가 앞뒤로 커버해야 하는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홈플레이트 상공에서 벌어지는 투수와 타자 간의 '인치의 전쟁'이 시작됐다.
malish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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