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가 메이저리거가 됐다면 세계는 달라졌을까?
입력: 2016.11.30 05:00 / 수정: 2016.11.30 05:00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미국 야구팬들 사이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젊었을 때 메이저리거가 되려고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아바나 대학의 투수였던 카스트로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끌었고,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계약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이 ‘전설’에는 이 때의 실망감과 분노 때문에 그가 더욱 극렬한 반미주의자가 됐다는 그럴싸한 해석까지 붙어 있다. 뉴욕 양키스, 워싱턴 시네이터스 또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트라이아웃을 제안한 팀으로 알려졌는데 일설에는 당시 테스트에서 카스트로가 나중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강타자 행크 그린버그를 삼진으로 잡았다고도 한다. 뉴욕 자이언츠가 카스트로의 실력을 인정해 계약하려 했지만 그가 법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거절했고 결국 정치에 투신하게 됐다는 또 다른 버전도 있다.

이 이야기의 진실성에는 많은 의문이 제기돼 왔다. 카스트로가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끌 만큼 대단한 선수였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교내 경기에서나 선수로 뛰었을 정도이고 스카우트는 그의 이름도 몰랐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카스트로가 메이저리거가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야구를 넘어 역사와 정치, 이념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카스트로가 메이저리거가 됐다면 현대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쿠바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쿠바 미사일 위기도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에 따라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베트남 전쟁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세계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지나친 비약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가정이다.

카스트로가 정말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어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쿠바의 야구 선수들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은 것 만큼은 엄연한 사실이다. 1959년 혁명을 통해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하고 권력을 잡은 그는 이듬해 프로 스포츠를 금지했고, 1961년에는 미국과의 국교를 단절했다.
기존 프로야구 리그는 없어졌지만 쿠바 야구가 쇠락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카스트로 자신이 혁명 동지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자선 경기에 나설 정도로 야구광이었다. 쿠바는 아마추어 야구에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쿠바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조국을 등지는 야구 선수들이 속속 등장했다. 망명 또는 탈주를 통해 뛰어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됐지만 모두 불법이었다. 현재 미국의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쿠바 선수는 100명이 넘는다.

지난 26일(한국시간) 카스트로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위해 조국을 등진 야구 선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호세 칸세코는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나는 쿠바에서 태어났고 피델 카스트로가 우리의 지도자였다. 그 때문에 미국에 왔다. 그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떠난데는 이유가 있다."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 집권 이후 50년이 넘도록 미국과 대립해 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많은 쿠바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뗏목에 몸을 실었다. 이제 그의 죽음으로 야구 해빙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08년부터 형의 뒤를 이어 쿠바를 이끌고 있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미국과의 오랜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으로 쿠바는 더욱 개방의 길을 걷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쿠바 야구 선수들이 '탈주자'가 아닌 영웅으로 대접받고, 어쩌면 야구의 나라 쿠바에서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묘하게 얽힌 야구와 세계사의 관계를 돌아보면, 사실이든 아니든 카스트로의 메이저리그 도전에 관한 ‘전설’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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