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탈퇴! 임태훈, 정수빈, 김진우, 정형식(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등은 임의탈퇴의 쓴맛을 경험했다. / 두산 베어스 , 삼성 라이온즈 제공, 더팩트 DB |
임의탈퇴 그림자 벗어나지 못한 스타
또 한 명의 야구 스타가 임의탈퇴를 공시하며 은퇴의 갈림길에 섰다. 지난 2007년 신인왕 출신 임태훈(26·두산 베어스)이 스스로 글러브를 내려놓았다. 완전한 은퇴인지 아니면 잠시 야구계를 떠나는 것인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최소 1년은 마운드에 오른 임태훈을 볼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프로야구에 화려하게 데뷔하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까지 목에 걸며 승승장구했으나, 개인사 문제로 끝없는 나락을 걸으며 결국, 퇴단의 길을 걷게 됐다. <더팩트>는 출중한 기량에도 여러 문제로 인해 임의탈퇴의 쓴맛을 본 야구 스타 5명을 모아봤다.
추락한 신인왕! 2007년 신인왕 임태훈이 25일 스스로 임의탈퇴를 요청했다. / 더팩트 DB |
◆ 임태훈
26일 KBO 리그에 비보가 잇따라 터졌다. 최진행이 지난 5월 실시한 도핑테스트 결과에서 금지 약물이 검출돼 30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고, 곧이어 임태훈의 자진 임의탈퇴 소식이 들려왔다. 이날 두산 관계자는 "임태훈이 스스로 임의 탈퇴를 결정했다. 본인이 허리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임의 탈퇴를 요청했다. 당분간 쉬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며 "여러 가지 사건을 겪다 보니 심신이 많이 지친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26일 한국야구위원회 역시 "전날 오후 두산 구단으로부터 임태훈의 임의탈퇴 공시 요청을 받고 이를 승인했다"고 알렸다.
이로써 2007년 신인왕이 현역과 은퇴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임태훈은 데뷔 첫해 7승 3패 1세이브 20홀드 평균자책점 2.40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듬해 6승 5패 6세이브 14홀드, 2009년 11승(5패 4세이브 13홀드)을 작성하며 '10승 투수' 반열에 올랐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후 임태훈의 웃는 얼굴은 다신 보지 못했다. 개인사가 문제였다. 지난 2011년 여자 아나운서와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구설에 올랐다. 팬과 네티즌들의 많은 질타를 받았고, 허리 부상까지 겹치며 내림세를 걷기 시작했다. 매년 재기를 노렸으나 쉽지 않았고, 올해엔 단 한 차례도 1군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 정형식
2011년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뛰어든 정형석(24)은 2012년 118경기에 출장하며 경험을 쌓았고, 2013년엔 배영섭(28)과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120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7푼8리 49득점 43타점을 기록하며 팀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2014년 배영섭이 군에 입대하며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는가 싶었으나 부진에 빠졌고, 2군 생활 도중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입건돼 중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18일 새벽 1시 35분께 대구 시내에서 술을 먹고 자신의 BMW 승용차를 몰고 가다 건물 벽을 들이받아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09%였다. 삼성 구단은 정형식에 대해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인 임의탈퇴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 이형종
이형종(26)은 서울고 시절 시속 150km의 묵직한 직구를 뿌리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8년 신인 지명에서 LG 트읜스로부터 당해 최고액인 4억 3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다. 하지만 팔꿈지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0년엔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발언으로 팀을 이탈했고, 8월 10일 임의탈퇴로 공시됐다. 골프 선수로 전환을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2013년 6월 임의탈퇴가 해체됐고, 2014년 신고 선수로 전환됐다. 여전히 팔꿈치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이형종은 올해 야수로 전환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재기에 성공한 김진우! 김진우는 2002년 계약금 7억 원을 받으며 KIA에 입단해 2007년 무단으로 숙소를 이탈해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 |
◆ 김진우
김진우(32)는 지난 2002년 '제2의 선동열'이란 찬사를 받으며 계약금 7억 원에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직구와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데뷔 첫해 12승을 거뒀고, 2006년까지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KIA 마운드를 든든히 지켰다. 그리고 2007년 최대 위기가 찾아온다. 부진한 성적으로 숙소를 무단 이탈하며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 이후 복귀 표명과 이탈을 반복하며 허송세월을 했다. 2010년엔 일본 독립리그 서울 해치에 입단하며 재기를 노렸고, 2011년 4월 임의탈퇴에서 풀리며 KIA 2군 훈련에 합류했다. 이듬해 10승(5패)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 정수근
'탕아' 정수근(38) 역시 임의탈퇴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재기에 실패하며 유니폼을 벗게 된 케이스다. 선수 시절 빠른 발과 재치 있는 주루 플레이로 지난 2003년 최대 40억 6000만 원의 'FA 대박'을 터뜨렸던 정수근은 음주와 폭행으로 물의를 빚었다. 2004년 시민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KBO로부터 벌금 500만 원과 무기한 출장 금지 처분을 받았고, 2008년 7월엔 만취 상태에서 경비원을 폭행해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았다. 2009년 징계가 해제됐으나 8월 또다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려 롯데로부터 임의 탈퇴 공시를 받았고, 9월 은퇴를 선언했다.
야구규약 40조는 '선수가 계약 해제를 신청해 구단이 승낙할 경우, 선수가 계약 존속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인정할 경우 선수계약을 해제하고 해당 선수는 KBO 총재에 의해 임의탈퇴선수로 공시된다'고 규정돼 있다. 보통 은퇴를 앞둔 선수가 구단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임의탈퇴 조치가 된다. 큰 부상을 당하거나,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에게도 임의탈퇴를 공시하게 된다.
[더팩트ㅣ이성노 기자 sungro51@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