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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순간]<7> '원조 미녀골퍼' 박지은 "연못 세리머니, 옷 달라붙어서…" ②
입력: 2011.12.23 14:00 / 수정: 2011.12.23 14:00

▲ LPGA 통산 6승에 빛나는 프로골퍼 박지은. / 배정한 기자
▲ LPGA 통산 6승에 빛나는 프로골퍼 박지은. / 배정한 기자

▶ '원조 미녀골퍼' 박지은 "내 골프인생 16번홀 이븐파, 홀인원 쏜다" ①편 다시보기

[유성현 기자] "그레이스, 빨리 뛰어 들어가!(Grace, go ahead!)"

지난 2004년 10월 2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가 열렸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미션힐스 골프장에는 박지은(32·당시 25세)을 연호하는 갤러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2위 송아리와 접전 끝에 대회 우승을 거머쥔 박지은의 연못 세리머니를 재촉하는 목소리였다.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자는 18번홀 그린 옆의 연못인 '포피 폰드(Poppy's pond)'에 다이빙하는 전통이 내려져 왔다. 이번 대회 우승자 박지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박지은은 우승 세리머니를 원하는 관중들의 잇단 성화에 모자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이내 캐디 데이비드 부커와 함께 연못을 향해 몸을 맡겼다. 관중들의 환호성 속에서 수면을 박차고 나온 박지은의 아름다운 자태는 '연못의 여신'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 박지은은 2004년 LPGA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화끈한 우승 세리머니로 많은 이들의눈길을 끌었다.
▲ 박지은은 2004년 LPGA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화끈한 우승 세리머니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 "나비스코 우승 세리머니, 다음날 보니 민망해 죽는 줄…"

1998년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을 거머쥔 박세리 이후로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메이저 우승. 특별했던 의미만큼 7년이 지난 지금에도 박지은의 머릿속에는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캐디랑 사이가 워낙 좋아서 '만약 우승하면 우리 손잡고 우물에 달려들자'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실제로 그걸 하게 되니 더없이 기쁘더라고요."

"아마 모든 LPGA 선수들의 꿈일 거예요. 연못이 아무리 더럽고 냄새나도 저기 한 번 빠져보는 게 소원이죠. 전통이 있는 세리머니라 평생 남잖아요. 저도 최대한 즐겨보려 했는데 좀 어설프게 뛰어 들어 아쉬운 점도 조금 있어요. 그래도 참 통쾌하고 좋았죠. 냄새는 좀 심하긴 했지만요.(웃음)"

연못 속에서 두 팔을 들고 우승을 만끽하는 박지은의 사진은 모든 다음날 아침 각종 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다. 새로운 골프여왕의 탄생과 더불어 관심이 집중됐던 건 박지은의 섹시한 매력이었다. 7년 전 '최고의 순간'을 회상하던 박지은은 "어휴, 그땐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음 날 많은 신문들에 큼지막하게 실린 사진을 보니 입에서 '오 마이 갓'이 절로 나왔죠.(웃음) 주변에서는 좋게 봐주셨는데 사실 저는 좀 민망했어요. 물에서 올라와서 이마도 훤히 드러나고 옷도 달라붙고….(웃음) 당시 의상을 워낙 눈에 띄는 걸 준비해서였는지 팬 분들이 더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 박지은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쑥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박지은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쑥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섹시 골퍼 1위? 한국 네티즌 덕분…주위 평가 쑥스러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진 한 장에 박지은의 인기는 폭등했다. 빼어난 실력에 아름다운 미모, 개성 넘치는 패션 감각까지 두루 갖춘 여성 골퍼로서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2007년 미국의 골프전문 사이트에서 선정한 '가장 섹시한 여성 골퍼 8인'에 들기도 했다. 세계적인 미녀 골퍼들 가운데 팬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이도 바로 박지은이었다.

"그 때는 맥심 같은 미국 남성 잡지에도 나왔어요.(웃음) 당시 섹시 골퍼 1위에 뽑혔던 건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힘이 컸죠. 솔직히 외국에 얼마나 섹시한 스타들이 많아요. 그 기사가 한국에 알려지고 반나절 만에 1등이 됐다고 들었어요. 아무튼 기분은 좋았죠.(웃음)"

현재 KLPGA 무대를 강타하고 있는 '외모 열풍'의 원조 격이 바로 박지은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박지은은 주위의 평가가 다소 쑥스럽다는 반응이다. 골프계 패션 트렌드를 바꿨다는 점에는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요즘 동생들에 비하면 저는 뭐…"라며 후배들의 미모를 추켜세웠다.

"제가 정말 섹시하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반응 안보이죠.(웃음) 저는 외적인 부분으로는 자신이 없는 편이었어요. 많은 해프닝들로 주변에서 예쁘게 봐주시니까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여자니까 예쁘다 하면 좋죠. 아직도 좀 쑥스럽긴 하지만요.(웃음) 예쁘게 봐주시니까 저를 더 기억해주신 것 같아요."

▲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던 박지은에게는 오랜 시간 교제해온 남자친구가 크나큰 힘이 됐다.
▲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던 박지은에게는 오랜 시간 교제해
온 남자친구가 크나큰 힘이 됐다.

◆ "슬럼프 땐 남자친구가 큰 버팀목…결혼? 곧 해야죠"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골퍼로 큰 관심을 받았던 박지은에게도 침체기는 찾아왔다. 무려 5년이 넘도록 이어진 부상 악령에 성적은 내리막을 거듭했다. 주위의 기대치도 예전 같지 않았다. 반드시 부활하겠다던 다짐은 거듭된 부진 속에서 흔들리는 나날이 반복됐다. 하지만 10년 넘게 만나 온 남자친구의 존재는 쓸쓸한 타지 생활을 버티게 한 든든한 힘이 됐다.

"저는 운이 좋게도 어렸을 때부터 최상의 환경에서 골프를 해 왔어요. 저도 모르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깊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아무도 다시 올라가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그 때 남자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올라가는 일 밖에 없다고.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지만 그 한 마디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2000년대 '꿈의 무대' LPGA를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쉴 새 없이 누비던 박지은도 지금은 어느덧 3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가 됐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불태울 프로골퍼로서, 오래 만나 온 남자친구와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은 한 여성으로서 박지은의 2012년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죠.(웃음) 시간이 없어서 날짜를 못 잡고 있어요. 조만간 미국 들어가서 시즌 준비도 해야 하니 쉽지 않네요. 저한테는 내년이 굉장히 중요한 해잖아요. 한국, 미국 모두에서 우승을 노려야 하니까요. 봄도 안 되고 여름도 힘들고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에요."

"아직 저를 잊지 않고 계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내년에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저의 멋진 도전을 팬들께서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대에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인터뷰 내내 특유의 밝은 미소를 보였던 박지은.
▲ 인터뷰 내내 특유의 밝은 미소를 보였던 박지은.

<글 = 유성현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yshalex@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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