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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PGA 통산 6승에 빛나는 프로골퍼 박지은. / 배정한 기자 |
[유성현 기자] 올해 한국 골프계는 크나큰 경사를 맞았다. 지난 10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사임 다비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최나연이 우승을 차지해 LPGA에서 한국인 여자 골퍼 통산 100승 고지를 달성했다. 지난 1988년 구옥희가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23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11월에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통산 100승 중 6승을 보탠 '원조 미녀골퍼' 박지은(32)이 내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 투어 출전권을 획득해 국내로 복귀하게 됐다. 박세리, 김미현과 함께 태극낭자 1세대를 이끌던 그의 컴백에 골프팬들은 벌써부터 다음 시즌을 기대하고 있다.
박세리에 이어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LPGA 메이저 타이틀(2004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을 따낸 그는 미모와 실력을 겸비하며 세계적인 골퍼로 발돋움했다. 물론 그에게도 부상으로 인한 시련기가 있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자 다시 일어선 그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더팩트>은 새로운 도전을 향한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지은을 지난 5일 부친이 운영하는 신사동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특유의 늘씬한 몸매와 시원스런 미소는 과거 LPGA를 호령했던 '그때 그 순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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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국내무대 복귀를 확정한 박지은의 목소리는 새로운 희망과 열정이 묻어났다. |
◆ "13년차 새로운 도전, 현역 마무리 잘 해야"
- KLPGA투어 출전권 확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복귀 소감은?
새로운 도전이다. 어느덧 골프를 시작한지도 20년이 넘었다. 프로 13년차다.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다시 골프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기억해주시는 국내 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 꿈의 무대를 호령했던 선수로서 국내 복귀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의외로 쉽게 했다. 다만 결정하고 약간 주저하긴 했다.(웃음) 그동안 LPGA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몇 대회를 치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더라. 세계 최고 무대인 LPGA에 비해 한국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갈팡질팡 했다. 오게 됐으니 열심히 하는 일만 남았다.
- LPGA 한국계 선수 통산 100승이 달성됐다. 그중 6승을 보탰는데.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 선수들이 이룬 성과에 한 몫을 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다. 오래 전에 우승하신 구옥희 선배를 제외한다면 채 15년도 안됐다. 우리나라 골프가 이렇게나 급속도로 성장해왔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 13살 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골프 유학길에 올랐다. 프로 데뷔 5달 만에 우승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신인왕이다. 솔직히 다 따놓은 거였는데. 9월에 포인트 집계가 끝난 뒤 갑작스런 갈비뼈 부상으로 7월부터 11개 대회에 참가를 못했다. 간발의 차이로 신인왕을 놓쳤다. 뭐 다 지난 일이니…. 미국에서 못했으니 내년 KLPGA 신인왕에 도전해야겠다(웃음) 그나저나 신인이 맞는지? 하하,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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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크나큰 외로움과 싸웠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
◆ '버디 퀸' 괴롭힌 부상 악령 "한때 은퇴도 생각했지만…"
- 나비스코 클래식 우승을 차지했던 2004년을 정점으로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다. 이듬해부터 시달렸던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원인이었는데, 현재 몸 상태는?
골프선수에게 완전한 회복은 없다. 허리도 이상하게 골프할 때만 아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다만 체력적인 면에서 예전과 다르다. 20대 초반에는 따로 운동을 안 해도 체력이 좋았는데 이제는 관리의 필요성을 느낀다. 아직 장타를 치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꽤 줄었죠. 젊은 선수들에게 밀린다.(웃음)
- 1년에 8~9개월씩 투어생활을 하는 LPGA 선수들, 화려한 겉과 달리 외로움도 많을 것 같은데.
에이, 화려하지 않다. 정말 외롭다. 혼자 이동해서 숙소 잡고 경기 준비부터 혼자서 해결해야 하니까. 모든 것들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이다. 물론 잘했을 때만큼은 노력에 대한 대가가 굉장히 크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맞는 건 1%에 불과하다. 나머지 선수들은 앞서 말한 대로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 5~6년간 부상으로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는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셀 수 없이 많이 울었다. 소리 내서 울면 스스로에게 비겁해질까봐 혼자 방에서 이불 쓰고 울었다. 올해 또 부상 때문에 대회를 치르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다행히 몸이 좋아져서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뭔가 될 것 같은데 막상 치르면 잘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올 여름 한 대회 첫 라운드를 마쳤을 때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정말 안 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운딩 마치고서 곧바로 라커룸에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선수 생활 끝났나봐. 해도 해도 이제는 시기가 지났나봐'라고 말했다. (살짝 눈시울을 붉히며)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원래는 잘 안 운다.(웃음)
- 어머니께서는 어떤 말씀을 해주셨나.
'그래 돌아와라.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쉬자'하셨다. 나는 아직도 이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정 힘들면 들어와. 그렇지 않을 거라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즐겨봐. 넌 즐겨본 적이 없잖아'라고 말해주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괜찮아'라는 위안 섞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다음부터 성적이 조금씩 나아졌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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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 생활 막바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프로 13년차' 박지은의 도전이 시작됐다. |
◆ "내 골프 인생은 16번 홀 이븐파, 이젠 홀인원"
- 힘겨운 시기를 거치며 다시 골프의 새로운 재미를 깨닫게 된 건가.
한동안 골프가 정말 재미없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재밌었다. 예전에 허리가 안 아프게끔 스윙을 교정했는데 낫지도 않으면서 스윙만 더 망가졌다. 그래서 '어차피 허리 아플 거면 내 스윙으로 하자'라고 결심했다. 13년 전 지도해주신 코치에게 돌아가서 2년 동안 제 스윙을 찾기 시작했다. 올 6월부터는 과거 감각이 살아나는 게 서서히 느껴지더라. 그런 것들에서 재미가 엿보였다. 2000년 데뷔 후 모든 대회를 부상 없이 마무리한 것도 올해가 처음이었다. 뿌듯함을 가지고 내년에는 더 잘 해보고 싶다.
- 재기에 나서는 지금, 특별한 목표가 있다면.
최근에는 목표가 없었다. 은퇴하기에는 아쉽고, 몸은 몸대로 안 좋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아예 밑바닥을 치다 보니 사라졌던 열정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나더라. 목표도 생겼고. 2012년에는 무조건 우승을 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우승을 맛보고 싶다.
- 은퇴는 잠시 미뤄둔 거라고 봐도 되나.
일단 멀리는 안 볼 꺼다. 줄리 잉스터(LPGA 통산 31승의 51세 현역 골퍼) 같은 목표는 없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는 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모든 것을 쏟아보는 것도 내게는 큰 도전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KLPGA에 도전한 거다. 동기부여는 충분히 됐으니 섣불리 은퇴를 정하지 않은 채 길을 열어놓고 싶다.
- 박지은의 골프 인생, 현재 몇 홀쯤 왔고 성적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음…(한참 생각하더니) 한 16홀쯤. 선수생활은 마무리만 남은 것 같다. 성적은 이븐파 정도? 이미 더블보기도 했고 이글도 했고 지루한 파도 많이 했으니까. 이번 16번홀에서 꼭 홀인원을 터뜨릴 거다. 그래야 17, 18번홀을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글 = 유성현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yshalex@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