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차 못 지나가요”…50년 만에 차 없는 잠수교 [오승혁의 현장]

  • 오승혁 기자
  • 입력: 2026.10.26 18:19 / 수정: 2026.10.26 18:19
26일 차량 통제 시작된 잠수교 찾아
50년 만에 차 없는 다리에 적응 기간 필요할 듯
26일 낮 오승혁의 현장은 이날부터 차량의 통제가 시작된 잠수교를 찾았다. 곳곳에 붙은 도로 통제 안내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차량의 경적 소리가 더러 들렸다. /서울 잠수교=오승혁 기자
26일 낮 '오승혁의 현장'은 이날부터 차량의 통제가 시작된 잠수교를 찾았다. 곳곳에 붙은 도로 통제 안내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차량의 경적 소리가 더러 들렸다. /서울 잠수교=오승혁 기자

[더팩트|서울 잠수교=오승혁 기자] "오늘부터 여기 차 못 지나가잖아."

26일 낮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잠수교를 찾았다. 용산구 경의중앙선 서빙고역에서 내려 잠수교를 향하니 차량 통제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온 시민들은 한결 여유롭게 다리 위를 거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입로 주변에서는 길을 찾지 못한 차량의 경적이 연달아 울렸다.

"아! 왜 저리 빵빵대!"라는 행인의 짜증 섞인 불평에도 경적은 그치지 않았다. 통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차량들이 진입로 앞에서 속도를 줄이거나 차선을 바꾸면서 주변은 한동안 혼잡했다.

서울 반포대교 아래를 지나는 잠수교가 개통 50년 만에 차량 없는 보행 전용 다리로 거듭나기 위한 첫날, 달라진 도로 환경이 빚은 혼잡이었다. 이날 자정부터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됐다. 잠수교를 오가던 승용차와 버스가 사라진 차도에는 플라스틱 방호벽과 진입 금지 안내판이 설치됐다. 도로 위를 채우던 엔진 소리 대신 시민들의 대화와 자전거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수교는 1976년 한강 남북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개통했다.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물에 잠기도록 설계된 국내 최초의 잠수교다. 이후 반세기 동안 차량과 보행자, 자전거가 한정된 공간을 나눠 이용해왔다.

차량이 다니던 때 잠수교를 건너는 보행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좁은 보행로 옆으로 차량이 연이어 지나갔고, 자전거 이용자는 앞에서 걸어가는 시민과 뒤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동시에 살피며 다리를 건너야 했다.

26일 차량 통제가 진행된 잠수교 진입로에서 신호등은 여전히 차도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서울=오승혁 기자
26일 차량 통제가 진행된 잠수교 진입로에서 신호등은 여전히 차도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서울=오승혁 기자

이날 만난 시민들의 표정은 이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천천히 한강을 바라보는 시민이 있었고, 자전거에서 잠시 내려 다리 위 풍경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차량 통제와 동시에 잠수교 전체가 완성된 보행 공간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이날 현장에서는 통행을 막기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고 작업 구역을 정리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차량이 사라진 차도에는 기존 차선과 교통 표지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 잠수교에는 한강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조망 공간 22곳이 마련된다. 선박이 통과하는 구간 두 곳에는 발밑으로 강물이 보이는 투명 데크도 설치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잠수교 북단의 지하 보·차도까지 보행 공간을 확대해 이태원과 한강을 잇는 보행축도 강화할 계획이다. 공사 중에도 기존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는 이용할 수 있다. 2027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차량 없는 다리를 반기는 분위기 속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있었다.

한 중장년 남성은 자전거를 빠르게 몰며 휴대용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었다. 남성은 음악을 즐기는 듯했지만, 주변 보행자들은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 잇따라 뒤를 돌아보거나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속도와 음량을 줄이지 않은 채 다리를 가로질렀다. 그의 표정만 행복에 젖었고 이를 견디는 다른 보행자들의 인상은 찌푸려졌다.

26일 낮 잠수교에서는 차도와 자전거 도로를 구분하던 조형물을 제거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차가 가리는 것 없이 한강이 선명하게 보인다. /서울=오승혁 기자
26일 낮 잠수교에서는 차도와 자전거 도로를 구분하던 조형물을 제거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차가 가리는 것 없이 한강이 선명하게 보인다. /서울=오승혁 기자

보행 전용 다리로의 전환이 시민들에게 새로운 휴식 공간을 제공하더라도 이용자 사이의 배려가 없다면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어린이와 노인, 반려동물을 동반한 시민이 많은 구간에서는 자전거 이용자가 충분히 속도를 줄여야 한다.

잠수교를 통과하던 740번과 405번 시내버스도 상·하행 모두 반포대교를 경유하도록 노선이 변경됐다. 평소 해당 버스를 이용하던 승객은 정류장과 운행 경로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서울시는 잠수교 통제에 따른 주변 교통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차량이 상부의 반포대교와 주변 도로로 분산되면서 통행 속도가 소폭 감소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수치로 나타나는 전체 교통 흐름과 개별 운전자가 현장에서 겪는 불편은 다를 수 있다. 통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진입로까지 온 차량은 현장에서 방향을 돌려야 한다.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우회 차량이 몰리면서 일부 구간의 정체가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50년 동안 익숙하게 이용한 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만큼 새로운 교통 흐름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안내와 현장 관리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잠수교는 그동안 교통시설이면서 한강을 가장 가까운 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독특한 장소였다.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잠겼고, 날씨가 좋을 때는 차량과 시민, 자전거가 좁은 다리 위를 함께 오갔다. 축제나 행사가 열리는 날에만 잠시 차량이 사라지고 시민들이 도로를 채웠다.

반세기 동안 자동차와 사람에게 길을 내줬던 잠수교가 사람을 위한 다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첫날에는 기대와 여유, 혼란과 경적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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