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짱구인, 세상의 모든 신형만과 봉미선에게 [오승혁의 현장]

  • 오승혁 기자
  • 입력: 2026.10.17 03:02 / 수정: 2026.10.17 03:02
17일 서울 성수동 짱구는 못 말려 세계관 체험 공간 열려
엉덩이 두드려 괴물 잡고 흰둥이와 별 모으고…보고 듣는 전시 넘어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짱구는 못말려! 놀자! 시공간 대모험’ 체험전이 펼쳐지는 스테이지 비밀 성수를 찾았다. 짱구의 세계관이 그대로 구현된 공간에서 동심으로 돌아갔다. /닷밀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짱구는 못말려! 놀자! 시공간 대모험’ 체험전이 펼쳐지는 스테이지 비밀 성수를 찾았다. 짱구의 세계관이 그대로 구현된 공간에서 동심으로 돌아갔다. /닷밀

[더팩트|서울 성수동=오승혁 기자] "마음은 짱구인 신형만, 봉미선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과 작별하는 일인 줄 알았다. 먹고사는 문제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어날수록 마음속 장난꾸러기는 조금씩 자리를 잃기 마련이니까.

유년기에 짱구와 친구들을 보며 웃었던 많은 이들은 어느새 짱구보다 그의 부모인 신형만과 봉미선의 나이에 가까워져 그렇게 동심을 잊고 살아간다.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짱구는 못말려! 놀자! 시공간 대모험’ 체험전이 펼쳐지는 스테이지 비밀 성수를 찾았다. 17일 정식 개막을 하루 앞두고 취재진에게 먼저 공개된 전시장은 짱구의 극장판이 30년 넘게 쌓아 올린 세계관을 서울 성수동 한복판에 옮겨놓은 공간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짱구의 공간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초자연적인 힘에 빨려 들어간 짱구 가족과 시공간 난기류 속으로 흩어진 떡잎마을 주민들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관람객은 짱구와 흰둥이를 따라 여러 세계를 통과하며 캐릭터를 모으는 모험을 시작한다.

단순히 인기 캐릭터를 전시해놓고 사진을 찍는 공간은 아니다. 먼저 짱구의 세계관과 이번 모험의 배경을 이해한 뒤 직접 몸을 움직여 임무를 수행하는 흐름으로 구성됐다. 한 구역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게임과 이야기가 등장해 단계별로 레벨이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줬다.

짱구가 여러 극장판 작품에서 보여준 다양한 모습들이 서울 성수동의 체험전에 전시되어 있다. /서울 성수동=오승혁 기자
짱구가 여러 극장판 작품에서 보여준 다양한 모습들이 서울 성수동의 체험전에 전시되어 있다. /서울 성수동=오승혁 기자

벽과 통로, 바닥까지 콘텐츠의 일부로 활용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도 다음 장면을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고, 굽은 통로를 돌아설 때마다 전혀 다른 색감과 분위기의 세계가 펼쳐졌다. 취재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들어섰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임무의 성공 여부를 신경 쓰며 게임에 몰입하고 있었다.

웃음을 터뜨리게 한 것은 화면 앞에 놓인 짱구 모형이었다. 짱구의 엉덩이를 때리자 방귀가 발사됐고, 이를 이용해 화면 속 괴물을 물리쳐야 했다. 힘껏 엉덩이를 두드릴 때마다 우스꽝스러운 효과와 함께 공격이 이어졌다.

황당하고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설정이지만, 짱구이기에 자연스러웠다. 점수를 올리려고 연달아 엉덩이를 두드리다 보니 체면을 차릴 틈도 없다. 적응하기 전까지는 생각 보다 높은 난이도에 취재진도 자연스럽게 극강의 몰입 상태로 들어갔다.

커다란 공을 굴리는 체험도 인상적이었다. 관람객이 공을 움직이면 화면 속 흰둥이가 함께 달렸다. 흰둥이가 별을 먹을 때마다 점수가 쌓였고, 화면과 내 움직임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에는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과 다른 손맛이 느껴졌다.

체험전의 공간은 제법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할 때마다 각기 다른 극장판 작품을 모티브로 한 다른 공간과 체험이 진행됐다. /닷밀
체험전의 공간은 제법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할 때마다 각기 다른 극장판 작품을 모티브로 한 다른 공간과 체험이 진행됐다. /닷밀

각 체험에는 목표 점수가 설정돼 있었다. 일정 점수를 넘으면 새로운 캐릭터를 얻을 수 있어 자연스럽게 경쟁심을 자극했다. 전시장 곳곳의 QR코드를 전용 모바일 웹 애플리케이션으로 스캔하면 만난 캐릭터를 수집할 수도 있다.

그저 한 번 체험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어떤 캐릭터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가 동선을 이어줬다. 어린이에게는 게임 속 임무처럼, 성인에게는 한때 열중했던 스티커와 캐릭터 수집처럼 다가오는 장치였다.

유리의 토끼 인형을 힘껏 때리는 공간에서는 쌓였던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화면 속 상황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공을 굴리고 주먹을 뻗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관람객은 구경하는 사람에서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특히 ‘Future City’에서는 현재의 얼굴을 촬영한 뒤 인공지능(AI)이 미래의 모습을 캐릭터로 선별해 보여줬다. 화면 앞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자 잠시 뒤 낯설면서도 익숙한 캐릭터가 나타났다.

과학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기능은 아니다. 결과 역시 장난스럽다. 그런데 화면 속 캐릭터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동심이 떠올랐다. 어떤 모습이 나올지 기다리던 짧은 시간만큼은 어린 시절 뽑기 기계 앞에서 좋아하는 장난감이 나오기를 바라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체험전은 짱구가 그간 펼친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해 짱구가 낯선 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했다. /서울 성수동=오승혁 기자
체험전은 짱구가 그간 펼친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해 짱구가 낯선 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했다. /서울 성수동=오승혁 기자

우리 모두 아이였다. 취재를 위해, 일로 인해 찾은 공간에서 마음 한켠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나의 짱구와 반갑게 인사했다.

‘짱구는 못말려’를 단순히 엉덩이를 내놓고 장난치는 아이의 유쾌한 만화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에는 짱구의 엉뚱한 행동을 보며 웃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형만과 봉미선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짱구는 늘 사고를 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족과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낸다. 철없어 보이는 어른들도 위기의 순간에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선다. 가족과 우정, 사랑, 성장이라는 메시지는 같은 작품을 보는 사람의 나이와 삶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1993년 시작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었다. 짱구 가족은 과거와 미래, 꿈과 현실을 오가며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작품은 엉뚱한 웃음 뒤에 가족의 의미와 어른들의 삶을 슬쩍 숨겨놓았다.

오랜 시간 짱구를 봐온 관람객이라면 작품을 처음 만났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떠올릴 만하다. 만화 속 짱구는 여전히 다섯 살인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웃던 어린이는 어느새 신형만과 봉미선의 나이가 됐다.

체험전에서 마주한 꿈의 세계를 모티브로 한 공간. 잠시 달콤한 꿈을 꾼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닷밀
체험전에서 마주한 꿈의 세계를 모티브로 한 공간. 잠시 달콤한 꿈을 꾼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닷밀

이번 전시는 인큐베이스 스튜디오의 원작 큐레이션을 바탕으로 콘텐츠 기반 공간 솔루션 기업 닷밀이 공동 기획·제작했다. 원작사 후타바샤와 ADK의 공식 승인을 받았으며 약 3개월 동안 운영된다. 전시장 밖에는 굿즈와 짱구 세계관에서 영감을 얻은 식음료를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취재를 마치고 다시 성수동 거리로 나오자 현실은 그대로였다.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약속, 어른의 책임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짧은 시간이나마 점수를 얻기 위해 공을 굴리고, 짱구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웃었던 기억이 남았다.

어른이 됐다고 해서 마음속 아이까지 완전히 떠나보낼 필요는 없다. 짱구를 보며 웃던 어린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신형만과 봉미선의 얼굴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짱구는 못말려! 놀자! 시공간 대모험’은 그런 어른들에게 잠시 체면을 내려놓고 다시 장난치며 웃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마음은 여전히 짱구인, 세상의 모든 신형만과 봉미선에게.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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