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배재고등학교=오승혁 기자] "학생들이 잘못한 건 맞지만, 잘못한 만큼 책임을 지고 교육받아야지 너무 많은 것이 알려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3일 낮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배재고등학교를 찾았다. 전날까지 교문 주변을 채웠던 수십 개의 근조화환은 모두 사라졌다. 이날 낮 그 자리에는 "어른들이 미안하다. 기죽지 마, 응원할게"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 한 개가 놓였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광주일고와의 경기 도중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외쳐 5·18민주화운동 희화화 논란을 빚었다.
이후 학교 앞에는 학생들을 비판하는 근조화환 수십 개가 놓였고, 온라인상에서는 학생들의 신상 추정과 비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현장은 전날과 달랐다. 1885년 미국 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의 역사를 기리는 교문 앞 비석에는 강동구청의 화환 철거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강동구는 학생들의 등교 안전 등을 고려해 화환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경비 관계자는 취재진에 "어제까지만 해도 화환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 출근해 보니 없어져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께 전날까지 흰색 조화가 가득했던 자리에는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응원 화환이 놓였다. 이를 지나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화환의 문구를 바라봤다.
화환 앞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이념과 관계없이 생각하게 된다"며 "학생들은 중범죄를 저질러도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이 친구들은 너무 많은 것이 알려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잘못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면서도 "아이들이 이번 일을 통해 제대로 배우고, 다시 잘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과열돼 있는 듯해 걱정"이라고 했다.
다른 고등학교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는 자녀를 뒀다는 인근 주민은 "운동선수들에게는 중요한 시기고, 야구로 유명한 학교 선수들이면 더 상황을 잘 알 텐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요즘 조롱을 장난처럼 여기는 문화와 단체 분위기에 휩쓸린 측면도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못은 분명히 배워야 하지만, 아이들이 잘 해결하고 다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교는 사과와 역사 교육을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설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열고 배재고 교장과 지도자, 학생 선수, 학부모, 교육청 관계자 등 80여 명이 오는 6일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광주제일고 방문 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역사 교육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김대중 전남교육감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도 참배에 동행한다.
광주제일고가 학생들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두 학교 간 갈등은 봉합 수순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고, 응원을 주도한 학생 2명도 학교 생활교육위원회에 회부돼 징계 절차를 앞두고 있다.
다만 학교 밖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부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이날 징계를 내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들을 강요·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학생들의 행위에 대한 엄정한 교육과 재발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징계가 과도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날은 기말고사 기간이라 낮 시간 학교 주변에는 학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취재진은 시험 기간인 점을 고려해 학생들의 직접 반응을 묻지 않았다.
수십 개의 근조화환은 사라졌고, 응원 화환이 놓였다. 학교는 사과와 역사 교육,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학생 선수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과 재발 방지는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교문 앞에 남은 시민들의 목소리는 처벌이 끝이 아니라, 왜 잘못됐는지를 배우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