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관람 되세요' K팝 티켓박스가 "부정선거! 재선거!" 게시판으로 [오승혁의 현장]
  • 오승혁 기자
  • 입력: 2026.06.29 20:09 / 수정: 2026.06.29 20:09
24일 13번째 찾은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시위 현장
"부정선거!" "재선거!" 게시판으로 변한 공연 티켓 박스
29일 오승혁의 현장이 13번에 걸쳐 찾은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핸드볼경기장 앞 티켓박스는 집회 후 계속 붙여진 플래카드로 기존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태다. /서울 올림픽공원=오승혁 기자
29일 '오승혁의 현장'이 13번에 걸쳐 찾은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핸드볼경기장 앞 티켓박스는 집회 후 계속 붙여진 플래카드로 기존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태다. /서울 올림픽공원=오승혁 기자

[더팩트|서울 올림픽공원=오승혁 기자] "아니, 저 집회는 그래서 언제까지 하는 거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집회가 네 번의 주말을 보내고 네 번째 월요일을 맞이하며 25일 차로 접어들었다. 주변 상가와 공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리는 K팝 스타들의 공연을 보러 온 이들이 줄을 서서 표를 바꾸던 2-4 게이트 앞의 티켓박스는 수백 장의 플래카드로 겹겹이 둘러싸여 기존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가 됐다.

부스 위에 설치된 'Ticket Box'라는 영어 간판이 아니면 원래 어떤 목적으로 자리한 공간인지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수많은 플래카드 중 한 장에 적힌 '출입구입니다. 통로 확보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읽고 안으로 들어가면 창구 앞에 플래카드로 만들어진 복도를 마주할 수 있다.

"티켓 발권 도와드렸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세요" 등의 다정한 대화가 오갔을 이곳에는 이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윤석열이 옳았다", "이죄명 아웃"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빼곡하게 자리했다. 옆에 있는 식음료 판매 박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9일 오승혁의 현장이 13번에 걸쳐 찾은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핸드볼경기장 앞 티켓박스는 집회 후 계속 붙여진 플래카드로 기존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태다. 창구 앞에는 플래카드로 복도가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공원=오승혁 기자
29일 '오승혁의 현장'이 13번에 걸쳐 찾은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집회 현장, 핸드볼경기장 앞 티켓박스는 집회 후 계속 붙여진 플래카드로 기존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태다. 창구 앞에는 플래카드로 복도가 만들어졌다. /서울 올림픽공원=오승혁 기자

29일 '오승혁의 현장'이 열세 번째로 찾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는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기록한 폭염주의보 속에서 날씨만큼이나 과열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더위를 피해 태극기와 성조기가 반반씩 섞인 양산을 쓰고 구호를 외치거나,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앉아 부채질로 더위를 달래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경 핸드볼경기장 인근에 모인 2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 중 70% 가량은 중장년 층으로 이들은 그늘에서 얼음물, 쿨링 패치 등으로 체온을 낮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장기화된 대치 속에 갈등은 이미 '일상'의 에피소드가 됐다. 현장을 중계하려는 유튜버들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거친 다툼이 일어나자, 현장에 배치된 대화경찰이 익숙한 듯 다가가 중재에 나섰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보고 단번에 싸움을 말리는 경찰과 참가자들의 모습은, 이곳의 대치가 얼마나 오래 반복됐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불편과 피로감은 이미 공원 울타리를 넘어 주변 상권까지 덮쳤다. 서울지하철 5호선과 9호선이 지나는 올림픽공원역 인근 상가에서 식사 중이던 주민들도 "집회가 그래서 언제 끝나는 거냐", "오늘은 뭐 연습용 수류탄도 나왔다던데 도대체 뭔 일이냐" 등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장기화된 집회에 피로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날 정오쯤에는 핸드볼경기장 인근에서 수류탄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일대가 술렁였다. 한 시위 참가자가 실제 수류탄일 가능성을 의심해 신고한 것으로, 출동한 군·경이 확인한 결과 다행히 뇌관이 제거돼 기폭 위험이 없는 '연습용 수류탄'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 수류탄이 시위 현장에 유입된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 중이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경찰도 사법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이날 잠실 개표소 관련 사건 총 58건 중 57건을 수사하고 있으며, 수사 대상자는 총 139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단순 집회 관리를 넘어 전방위적인 범죄 수사 체제로 전환된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의 핸드볼경기장 출입을 방해한 업무방해 사건으로 9명을 입건한 뒤 7명의 신원을 특정해 조사 중이며, 지난 8일 핸드볼 여자 국가대표팀 선수단의 소지품을 무단 수색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2명을 추가 특정해 총 5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소환조사를 벌이고 있다.

취재기자 폭행 사건과 관련해선 추가로 3명이 입건돼 총 6명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모욕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선 구속 1건을 포함해 11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밖에 허위사실 유포 286건, 집회 참가자 간 폭행 등 불법행위도 43건을 수사 중이며, 경찰은 구속 수사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지적했던 통신 케이블 처짐, 쓰레기·재활용품 증가에 따른 부담 등 누적된 공원의 몸살은 이제 문화·체육계의 거대한 '숫자 피해'로 번지고 있다.

집회 이후 핸드볼경기장에서만 2026 위버스콘 페스티벌, 넥슨 여름 쇼케이스, 박서진 전국투어 앙코르 콘서트 등 총 7건의 공연과 행사가 취소되고 1건은 장소가 변경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추산한 시설 운영 손실액만 총 2억 8500만 원. 여기에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가 개표 물품을 반출하지 못해 쌓여가는 추가 대관료도 이미 1억 원을 넘어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중앙선관위에 "개표 물품을 조속히 반출해 시설 운영을 정상화해달라"는 공문까지 보냈지만, 현장의 완강한 대치 속에 물품 반출 계획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티켓과 응원봉이 아닌 태극기와 성조기, 플래카드로 뒤덮인 핸드볼경기장. 공공시설 마비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문화예술계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출구를 찾지 못한 대치는 오늘도 폭염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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