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서울 종로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오승혁 기자] "우와! 네 세상이 진짜로 품 안에 들어왔네. 네 세상을 샀네." (웃음)
부모가 계산을 마친 어린이날 선물을 딸의 품에 안기며 건넨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승혁의 현장'이 찾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는 '세상을 품에 안은 듯' 만면의 미소를 지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만 골목을 채운 것은 아니었다. 재량휴업일을 맞아 거리로 나온 중고등학생부터 젊은 연인들,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옛 추억을 찾아온 중장년층까지 저마다의 동심을 채우며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대형 고릴라와 곰 동상이 건물을 지키며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승진완구'를 기점으로, 동서남북 뻗은 골목에는 100여 개의 문구완구 할인매장이 밀집해 있다. 이 거리는 한국의 경제 발전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1960년대 동대문역 인근에서 문구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1970년대 중반 이곳에 터를 잡으며 골목이 형성됐다.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 행사를 처음 연 이후,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먹고 사는 문제'에 밀려 사라졌던 어린이날 문화는 1970년 법정 공휴일 지정을 기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1980년대 '과자 종합선물세트'의 시대를 지나, 1990년대 본격적인 장난감 시대로 접어든 어린이날 선물 문화는 이제 '텐포켓(Ten-Pocket)' 시대를 맞이했다. 저출산으로 아이가 귀해지면서 부모와 양가 조부모, 이모, 삼촌 등 주변 지인 10명의 지갑이 한 아이를 향해 열린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날 현장 곳곳에서는 "할머니가 뭐 사줄까?", "삼촌한테 말만 해"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승진완구 송동호 대표는 "4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장난감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졌다"며 변화를 실감했다. 송 대표는 "과거에는 일본 완구가 시장을 독점했다면, 이제는 '캐치! 티니핑'을 필두로 한 국내 캐릭터 IP(지식재산권)들이 압도적인 인기를 끌며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단순히 어린이들만의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송 대표는 "중고생, 연인들, 추억을 찾는 아저씨들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0세부터 100세까지의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이 골목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올해 창신동을 휩쓴 최고의 히트작은 단연 '왁스 부시는 말랑이(왁뿌볼)'였다. 얇은 왁스 껍질을 깨뜨릴 때 느껴지는 시각·청각·촉각적 쾌감이 전 연령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시장 여기저기서 "왁뿌볼 주세요"라는 요청과 "2000원입니다, 몇 개 드릴까요?"라는 활기찬 대답이 오갔다.
온라인 쇼핑과 대형 프랜차이즈의 공세 속에서도 창신동은 여전히 건재했다. 직접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며, 그 자리에서 저렴하게 득템하는 '현장의 맛'이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 이날 낮까지 방문객이 1만명을 넘겼다는 승진완구 대표의 말이 바로 공감될 정도로 인파에 휩쓸려 다니면서도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던 방문객들의 표정이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