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차는 나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는 거다.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삶의 일부다." -엔초 페라리(1898~1988)
매년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지는 시대. 자동차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팩트’는 귀하다. ‘팩트 DRIVE’는 <더팩트> 오승혁 기자가 직접 타보고, 확인하고, 묻고 답하는 자동차 콘텐츠다. 흔한 시승기의 답습이 아니라 ‘오해와 진실’을 짚는 질문형 포맷으로, 차에 관심 있는 대중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준다. 단순한 스펙 나열은 하지 않는다. 이제 ‘팩트DRIVE’에 시동을 건다. <편집자 주>
[더팩트|서울 마포구=오승혁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이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0-5로 대패했던 그날(10월 10일), 르노의 쿠페형 SUV 시장 공략 모델인 '아르카나'가 찾아왔다.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현란한 발놀림과 슈팅에 번번 뚫리던 우리나라 팀의 골대 모습은 불편했지만, 그와 별개로 아르카나(Arkana) 하이브리드와 함께 한 주행은 세상 편했다.
아르카나의 편한 주행 성능과 승차감은 시장에서 성과로 증명되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 불황 속에 중견 완성차 브랜드 3사(르노코리아·KG모빌리티·한국GM)의 국내 시장 판매량이 지난달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모두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아르카나는 르노 지난해 10월보다 29.2% 증가한 447대 판매를 달성했다.
아르카나 에스프리 알핀은 1.6 가솔린 엔진과 2개의 모터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췄다. 전기 모터 2단과 엔진 변속 4단의 조합을 사용하는 클러치 리스 멀티모드 기어박스를 결합해 에너지 효율과 변속 성능을 높였다. 엔진과 모터 등이 모두 르노코리아가 업그레이드한 부산 공장에서 생산되는 만큼, 르노가 자랑하는 신기술을 최대한 탑재했다.
이번에 시승한 트림은 '에스프리 알핀'(esprit Alpine)이다. 에스프리 알핀은 르노 그룹의 최상위 트림이다. 르노는 초기 출고 모델 290대의 동승자석 대시보드에는 1부터 290까지의 고유 번호가 새겨진 ‘리미티드 넘버 플레이트'를 부착해 희소성을 높였다. 10/290이라는 판을 붙인 아르카나와 함께 서울 마포구, 경기도 고양, 파주 등을 200km 넘게 달렸다. 지금부터 아르카나의 엑셀을 자세히 밟아보자.
Q. XM3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A. 이름은 낯설 수도 있지만, 르노 아르카나는 사실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차량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르노 XM3의 글로벌 수출명이 바로 아르카나다. 르노 코리아는 글로벌 브랜드 통합 전략에 따라 ‘XM3’ 대신 ‘아르카나’로 이름을 통일했다.
‘Arkana’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영어, 스페인어로는 ‘비밀’, ‘신비로움’ 등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 르노의 스포츠카, 레이싱카 브랜드 알핀(Alpine)의 감성을 더해 ‘에스프리 알핀’ 트림을 완성했다. ‘에스프리(Esprit)’는 프랑스어로 ‘정신’을 의미한다. 프랑스인의 감성과 정체성에 스포츠카의 강렬함을 더했다.
르노는 아르카나 하이브리드 모델에만 일렉트릭 골드 컬러의 F1 블레이드 범퍼를 적용하고, 쿠페형 SUV답게 ‘18인치 다이내믹 블랙 투톤 다크 틴티드 알로이 휠’, ‘리어 스포일러’ 등으로 휠과 리어 램프 라인을 더 날렵하게 빼 스포티한 감성을 강조했다.
특히 대시보드 중앙에 위치한 10.25인치 디스플레이는 키오스크를 연상시키는 세로형 직사각형으로 상당히 직관적인 주행 경험을 선사한다. 운전자 방향으로 살짝 돌아간 디스플레이와 시인성 높은 공조 기능 등은 르노가 전작에 비해 운전자의 편의 강화에 신경 쓴 티가 확 난다.
Q. 주행감은 어떤가?
A. 이번 시승이 진행된 3일 내내 비가 매일 내렸다. 빗길이 이어졌지만 차량은 묵직하면서도 안정적인 주행감을 보여줬다. 르노 아르카나 하이브리드의 공인복합연비는 17.4km/L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리터당 20km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시내 주행에서는 하이브리드 모터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전기차에 가까운 정숙함과 효율성을 보여줬다. '이거 전기차라고 해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주행 중에 문득 들 정도로 정숙성과 연비는 상당히 높다.
멀티센스 주행 모드 시스템을 통해 스포츠·에코 등의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스티어링 감도, 파워트레인 반응, 실내 앰비언트 컬러까지 변경되며 운전자의 취향에 맞춘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하이브리드 특유의 전·모터 병행 구동은 도심 주행에서의 부드러움과 고속 주행에서의 탄탄함을 모두 살피는 것에 성공했다.
Q. 실내는 어떤 인상을 줬나?
A. 르노가 강조하는 ‘프렌치 감성’이 내부 곳곳에 녹아 있다. 디지털 클러스터와 중앙 디스플레이는 시인성이 높고, 물리버튼으로 구성된 공조 시스템은 조작 편의성이 뛰어났다. 통풍시트, 열선시트, 파킹어시스트, 후방카메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기본적인 기능도 충실하다.
다만 USB-C 포트가 아닌 일반 USB 포트가 적용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스마트폰이나 액세서리가 대부분 C타입으로 통일된 만큼, 이 부분은 다음 모델에서 개선되면 좋겠다.
스마트폰은 애플 카 플레이 또는 안드로이드 오토 등을 통해서 차량과 연결하고 차내에서는 무선 충전 보드나 C케이블을 활용한 충전만 되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시대에 맞춘 변화가 필요하다.
다만 에스프리라는 표현을 쓰며 프랑스 감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아르카나 하이브리드 모델은 르노 코리아의 부산 공장에서 생산된다.
Q. 공간은 여유로운 편인가?
A. 아르카나는 쿠페형 SUV답게 루프라인이 매끄럽게 떨어진다.덕분에 외관은 세련되지만, 2열 공간은 다소 제한적이다. 성인 4명이 탑승하면 레그룸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본인이 체격이 크거나 3~4인 가족 기준으로 자녀의 덩치가 어느 정도 있다면 이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차박에서는 이야기가 또 다르다. 트렁크 공간이 깊기 때문이다. 시트 폴딩 시 성인 2명이 적당히 눕기 좋아, 차박이 가능할 정도의 공간이 확보된다. 어느 정도의 기울기가 있어 평탄화는 완벽하지 않지만, 차박이나 간단한 캠핑용으로는 충분하다.
다만 트렁크는 전동식이 아닌 수동 개폐 방식이라 손으로 닫아줘야 한다.
Q. 직접 타보며 느낀 ‘프랑스 감성’은?
A. 아르카나는 화려하지 않지만 정제된 감성의 여유가 있다. ‘달리는 전시품’ 같은 벤츠, 아우디, BMW 등의 독일 완성차 브랜드와 달리, 르노는 감각적인 데일리카로 여겨질만 하다.
출퇴근길 도심 주행에서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조용한 움직임 덕분에 피로도가 낮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세련되고, 빠르지 않지만 안정적이다. 이 차는 액션, 스릴러 보다는 일상의 로맨스를 다룬 프랑스 영화 같은 SUV다.
총평하자면 르노 아르카나 에스프리 알핀은 ‘합리적인 프렌치 감성’을 추구하는 드라이버에게 이상적이다. 17km/L가 넘는 연비, 하이브리드의 정숙함, 세련된 쿠페형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