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탑골공원=이상빈 기자] 바둑판과 장기판이 사라졌다.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지나간 세월을 달래던 그 풍경은 다시 세월에 묻혔다. 종로구청이 지난 7월 31일부터 3·1 운동 정신이 깃든 국가유산 사적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 보존과 시민의 안전 이용을 위한 질서 계도로 바둑·장기 등 오락 행위를 금지하면서부터다.
그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난 9일 방문한 탑골공원은 예전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공원 내 팔각정도 눕거나 앉는 장소로 이용됐다.

오락 행위를 즐기지 못하니 노인들은 한 곳에 여럿이 모이기보다 홀로 또는 두세 명씩 앉아 담소를 나누며 무료함을 달랬다. 공원 곳곳 구청에서 설치한 오락 행위 금지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노인 A 씨는 "(바둑·장기를) 둘만 두냐. 구경도 하다 보니 술도 한 잔 한다. 그러다 다투는 수도 있다"고 혀를 끌끌 찼다. 옆에 있던 노인 B 씨도 "안 싸우고 좋게 지내고 가면 된다. 그게 안 되니까 구청에서도 못 하게 막은 거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공원 밖에서 서울노인복지센터 안내 활동 중인 자원봉사자 C 씨는 "이제 한 달 됐다. 주변 환경이 조금 깔끔해졌지만 여전히 누워 있는 사람도 보이고 정리가 잘 안 된다. 계도 기간이 더 필요하다"며 "근처에 무료급식소가 있다 보니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모여든다. 오락 행위를 금지하는 게 근본적인 원인 해결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바둑과 장기를 두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공원 내 질서 유지 및 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종로구청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10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한 달 사이 환경 문제가 많이 개선됐다. 관리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며 "그러나 장기 두는 분들만 문제는 아니었다. 주취자들도 문제고 그동안 슬럼화된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주취자가 제일 큰 현안으로 떠오르는 문제다. 그 주변에 쪽방이 하나 있다. 거기서 오는 분들과 서울역에서 오는 분들이 섞여서 술을 마신다. 1년이 넘었다"며 "종로구 의회에서 본회의에 공공장소 금주 구역 지정 조례가 상정돼 심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통과되고 공포돼서 효력이 발생하면 그걸 토대로 관리 기준을 잡으려고 계획 중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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