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상빈 기자] 418만 9822명. 올 1월 1일부터 이달 25일까지 237일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수다. 지난 한 해 총관람객 378만 8785명을 8개월째에 넘어섰다. 1945년 박물관 개관 이래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았던 해는 418만 285명을 찍은 2023년이다. 올해 이미 그 기록도 갈아치웠다. 사상 첫 500만 명 돌파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박물관 관람 열기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데는 뮤지엄숍 굿즈, 이른바 '뮷즈' 열풍이 자리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상품 덕에 몇 년 전부터 두꺼운 마니아층을 보유하던 뮷즈는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로 K컬처 위상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주목받았다. 특히 '케데헌' 속 캐릭터 '더피'를 닮은 까치호랑이 배지가 뮤지엄숍 인기 뮷즈로 부상하면서 지난달부터 이를 사기 위한 박물관 '오픈런' 현상도 벌어졌다.

지난 28일 오전 9시 40분. 개장 20분 전 도착한 박물관 입구는 이미 대기 중인 관람객 40여 명으로 북적였다. 주말에 비해 오픈런 열기가 뜨겁지 않지만 평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숫자다.
오전 10시가 되자 박물관 문이 열렸다. 대기자가 많지 않은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갔다. 함께 줄을 섰던 관람객 절반은 뮤지엄숍, 나머지는 전시층으로 향했다. 가방을 소지한 경우에는 검색대를 통과해야 전시실 입장이 가능하다.
뮤지엄숍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뮷즈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민화 속 동물이 그려진 데코 스티커와 메모홀더 그리고 머그컵과 부채 등 온갖 문구류, 생활용품이 뮤지엄숍을 가득 채웠다.

기대했던 까치호랑이 배지는 아쉽게도 동나 9월 예약 판매로 전환했다.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은 반가사유상 관련 제품과 단청 키보드, 그리고 변색 잔도 대부분 품절돼 현장 구매가 불가했다. 뮤지엄숍의 높은 인기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눈이 즐거운 뮤지엄숍 구경을 마치고 전시층으로 향했다. 1층은 선사·고대관과 중·근세관, 2층은 서화관과 기증관 그리고 사유의 방, 3층은 조각·공예관과 세계문화관으로 구성됐다.

1층 중앙을 걷다 어린이 키만 한 기계에 시선을 뺏겼다. 박물관 인공지능(AI) 안내로봇 큐아이(Q.I)다. 전시해설, 이용안내, 전시정보를 몇 번의 단순 터치만으로 볼 수 있게 한 큐아이는 한국어는 물론 영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지원하며 AI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큐알코드도 있어 스마트폰으로도 큐아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전시와 기술의 접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1층 중앙에 우뚝 솟은 LED 미디어 타워가 이를 대표한다. AI로 재구성한 전시물이 화면에 등장한다. 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직사각형 돌 '모노리스(Monolith)'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세련됨과 웅장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2층 기증1실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를 전시하고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故 손기정 옹과 제자들의 세계 무대에서 발자취를 AI로 구현해 대형 스크린에 옮겼다.
1936년 베를린에서 청년 손기정 옹을 시작으로, 광복 이후 1947년과 1950년 보스턴을 누빈 제자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 주자로서 잠실주경기장을 달리는 노년 손기정으로 이어지는 2분짜리 AI 영상이 전시관 삼면 스크린에 펼쳐진다. 딥페이크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한 예다.

3층 세계문화관 입구에는 큐알코드 안내판도 마련됐다. 스마트폰으로 코드를 찍으면 브라우저를 열어 전시 기획자가 직접 해설하는 영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전시실 내부 벽면에 설치된 대형 LED 화면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는다.
과거를 품은 박물관에 미래를 상징하는 AI가 도입된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단순한 문화향유공간을 넘어 발전하는 기술 구현의 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이날 박물관을 찾은 방글라데시 관람객도 기술적인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현대적인 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마음에 든다"며 "박물관이 기술적으로 진보됐고, 여기에는 기술의 도움을 받은 시설이 많다. 그리고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졌다"고 털어놨다.
세계 유명 박물관에 가 봤다는 그에게 차이점을 묻자 "파리의 루브르, 런던, 도쿄 등 많은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곳들과 이곳의 차이는 기술적인 진보"라며 "다른 박물관은 고대 조각품이나 다른 것들에 집중하는 반면, 이곳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터뷰 말미 그는 자신을 방글라데시의 판사라고 소개했다.

2층에서 만난 시민 B 씨는 "굿즈 사려고 아이들이랑 왔다가 전시관도 둘러볼 겸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게 해놔서 조금 신기했다"며 "이렇게 잘돼 있는 줄 몰랐다. 아이들은 글이 길면 잘 읽으려고 한다. 움직이는 영상을 더 좋아한다. 박물관에 이런 장치가 많아야 와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사상 최다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비결에는 비단 뮷즈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AI 시대 흐름에 올라타 관람 편의에 맞게 접목한 방식이 이곳을 매력적이게 바꿨다. 그것은 '테크놀로지(technolog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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