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림의 '현장'] "주문 감당 못해요!“..트럼프 탐낸 K-만년필 공방 '제나일'(영상)
  • 유영림 기자
  • 입력: 2025.08.27 16:15 / 수정: 2025.08.27 19:31
27일 '이재명·트럼프 만년필' 제작한 서울 문래동 수제 공방 '제나일' 현장
현재 주문 폭주로 제작 접수 중단 상태
지난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한 만년필(아래)을 제작한 수제 공방 제나일. /영등포=유영림 기자, 뉴시스
지난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한 만년필(아래)을 제작한 수제 공방 '제나일'. /영등포=유영림 기자, 뉴시스

[더팩트│서울 문래동=유영림 기자] "일단은 정신이 없어요. (주문 접수를) 중단할 정도니까..."

2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공원 사거리.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만년필을 제작한 수제 공방 '제나일' 문 앞에 섰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처럼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이 공방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정상회당 전 방명록 서명식 장면이 전 세계로 퍼진 뒤 이 가게는 하루아침에 '핫플'이 됐다.

하지만 조용히 살고싶었던 공방의 주인은 이 같은 세상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고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하다가 가까스로 몇 마디 말을 한 뒤에는 아예 문을 닫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뺏은 만년필이 세계적 화제를 모으자 국내 주식시장에서 모나미 주가가 급등을 하는 것을 보면서 'K-만년필'의 유명세를 실감했지만 제나일 공방 주인의 반응을 보니 그 여파를 다시 실감하게 됐다.

화제의 중심인 이재명·트럼프 만년필은 작은 건물의 2층에서 제작되고 있다. /영등포=유영림 기자
화제의 중심인 '이재명·트럼프 만년필'은 작은 건물의 2층에서 제작되고 있다. /영등포=유영림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만남이 그만큼 세계의 관심을 모은 탓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K-만년필'의 '선물' 에피소드가 맛있는 반찬의 양념처럼 어우러졌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갈색빛이 도는 두꺼운 두께의 펜으로 방명록을 작성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펜을 가리키며 "직접 대통령이 가져오신 건가"라고 물었다. 이 대통령은 "맞다. 가져온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가져가실 거냐"며 농담을 건넸다. 미소를 지은 이 대통령은 양손을 들어 보이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펜을 가져도 좋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실 로고가 박힌 펜과 펜 케이스를 들며 "(펜의) 두께가 굉장히 아름답다. 정말 멋지다. 어디에서 만든 건가"라고 관심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에서 만든 것"이라며 "대통령께서 하는 어려운 사인에 유용할 것"이라고 말하면 선물했다. 해당 펜은 원목으로 만들어졌으며, 안쪽엔 만년필 펜촉 대신 ‘모나미 네임펜’을 삽입했다. 펜 뚜껑 위쪽에는 태극 문양이 각인됐으며 펜대 상단엔 봉황 문양이 새겨졌다. 모두 수작업을 거쳤으며, 제작을 완료하기까지 두 달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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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업체는 주문 폭주로 접수를 중단한 상태다. /제나일 갈무리
현재 업체는 주문 폭주로 접수를 중단한 상태다. /'제나일' 갈무리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K-만년필'의 위력은 곧바로 지구 반대편 서울 문래동 공방에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하루가 지난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문래동의 수제 공방. 세계적 관심사가 된 만년필 제조 공방이란 명성과 달리 매우 협소한 규모가 또 한 번 찾는 이를 놀라게 했다.

문을 두드리기 전부터 가게 앞에서 분주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른 오전부터 폭증한 주문량을 해결하는 사장 A 씨에게 조심스레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바쁘다며 손사래를 쳤다. 돌아가고 싶었으나, 다시 만년필 주문을 시도하며 접촉을 시도했다. 인터뷰를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5분 뒤 다시 공방을 찾았다.

A 씨는 정신 없는 와중에도 다시 문을 열어줬다. 짧은 새 피곤함이 더해진 A 씨의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가게 문을 사이에 두고 긴박한 인터뷰가 시작됐다.

"원래 하루에 10~20개 정도 제작하는데, 잠깐 사이 그 이상의 주문이 들어와 중단할 정도예요."

늘어난 주문량을 묻자 A 씨는 혼이 나간 채 답했다. 폭주하는 관심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일단은 정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화담 이후 업체 홈페이지의 모든 주문은 막힌 상태다. 문의란엔 '대통령 펜 언제 구매 가능하나요', '트럼프 펜(?) 구입 가능한가요' 등의 문의가 폭주했다. 결국 업체는 팝업창을 통해 '많은 분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연락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주문이 들어와 주문량을 소화하기 어려워 주문을 닫아놓게 됐다. 순차적으로 꼼꼼하게 제작 진행해 보내드리겠다'는 안내를 게시했다.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민 B 씨는 "가격이 8~15만 원인 것으로 안다"며 "타산이 맞지 않다"고 만년필 구매에 의아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대통령의 만년필이 화제를 모았지만, 대중에게는 여전히 높은 가격대가 장벽으로 다가오는 모양새다

그러나 A 씨는 그런 시선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제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면서 소소하게 유지하고 싶다"고 답했다. '왜 나무였냐'는 질문엔 "원래 가구 목수였다"고 답하며 나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짧은 대화에서 '제나일'만의 뿌리를 느꼈다.

"하나의 제품에 한 명의 장인이 나무의 선별부터 마감까지 생산 전 과정을 책임집니다." '제나일' 홈페이지의 소개란이다. A 씨는 자신만의 하나뿐인 필기구를 기다릴 고객을 위해 문을 닫고 작업실로 돌아갔다.

나무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가장 예쁘게 자란다. 세계의 주목을 받은 지금도 '제나일'은 느린 시간 속에서 한 자루의 펜에 나무의 생명을 새기고 있다.

fore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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