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항모’로 비유된 한국의 지정학...북한은 ‘악어?’[이우탁의 인사이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 입력: 2025.08.12 00:00 / 수정: 2025.08.12 00:00
주한미군 사령관, ‘전략적 유연성’ 직설 표현...규모-역할 조정 시사
美세계전략 변화에 한국의 지정학 가치 결합한 대응 절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국방부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주한미군사령부 제공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국방부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주한미군사령부 제공

[더팩트 | 이우탁 칼럼니스트] "한국은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이나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5월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미국육군협회(AUSA)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서 한 발언이다. 한국의 지리적 위치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인도태평양이라는 큰 공간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을 어렵게 하는 ‘거리의 횡포(Tyranny of distance)’를 극복하는 데 주한미군이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한 비유였다.

필자는 ‘고정된 항공모함(Fixed aircraft carrier)’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갔다. 밤에 찍힌 위성 사진을 떠올려보면 브런슨 사령관의 말이 실감난다. 전력사정이 열악한 북한 전역이 어둡게 나오는 사진 속에 한국은 마치 바다 위에 떠올라 있는 큰 배처럼 연상될 것이다. 그런데 그 배는 거대한 중국 대륙과 일본 사이에 놓여있으니 지정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할 것인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6.25전쟁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일찍이 냉전 초기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공산당에 있어 대만의 가치는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 공급선과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대만의 지정학이 미국의 세계패권을 지키는 최전선과 연결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회담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회담 직후 "일본과 미국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운명 공동체이고, 일본 열도는 미국의 불침항모"라고 말했다. 미국을 축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이 공산 세력과 대결하는데 있어 일본의 역할과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불침항모(不沈航母)’라는 표현이 이후 외교가에서 회자됐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직접 한국의 지정학을 ‘고정된 항모’라고 표현한 것은 당연히 미국의 세계전략과 직결된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었던 미국은 이제 중국의 거센 도전 앞에 놓여있다.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 속에 미중 패권경쟁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앞에 두고 "지구는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살기에 충분히 넓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데 대한 화답이었다.

필자는 딱 10년 전인 2013년 6월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시 주석이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10년의 굴기(崛起)’에 성공한 중국이 미국을 향해 ‘이제는 태평양이 아닌 지구의 패권을 나누자’는 도전으로 필자는 생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과 물러설 수 없는 대결에 돌입했다. 미국은 과거 소련과 정면승부에서 승리한 것처럼 중국과의 전략적 충돌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중국을 봉쇄하고 압박하기 위한 새로운 국방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그런 미국에 ‘고정된 항모’라는 지정학적 역할이 한국에 투영된 것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지난 8일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 국방부 출입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사령관으로서 주한미군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든가 한국의 중국견제 역할확대 등 미국이 추진하는 ‘동맹 현대화’에 대해 상세하게 밝혔다.

조만간 열릴 한미정상회담 의제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한미군 재조정 논의와 관련해서는 "단순히 숫자(Numbers)가 아닌 임무 수행을 위해 이곳에 주둔하는 능력(Capabilities)이 논의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을 겨냥한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 조정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재밌는 것은 그가 간담회 도중 "북한은 ‘배 바로 옆에 있는 악어’처럼 가장 근접한 위협"이라고 표현한 점이다. 미국의 세계전략 상 중국을 압박하는 게 제1의 목표이고 주한미군의 성격도 변화할 것이지만 당장 주한미군에게 최우선 과제는 ‘북한 억제’라는 점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양자간 문서에서는 결코 ‘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러시아 극동함대가 동해 방면으로 남하했고, 중국 해군은 제주도 남방을 돌아 합류해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며 "두 나라가 함께한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이, 그리고 한미동맹이 ‘악어’를 막는데도, 그리고 중국과 대만의 충돌에도 개입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표현으로 읽혔다.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은 결국 중국과 패권경쟁에 돌입한 미국의 핵심동맹인 한국도 확실하게 ‘고정된 항모’의 역할을 수행해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달라진 미국의 세계전략이 펼쳐지는 최전선, 한반도의 지정학이 조명되는 순간이다. 6.25 전쟁 이후 70여년간 한국인의 생존을 지켜온 한미동맹의 성격변화가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향후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결합한 정교한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