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권택 감독의 뮤즈, 김규리가 말하는 '화장'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102번째 영화 '화장'(제작 명필름, 배급 리틀빅픽처스)에 김규리(35)를 캐스팅하며 "삶이 연기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여배우"라고 말한 바 있다.
'화장' 속 추은주는 주인공 오상무가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유부남이 반하는 여자라고 해서 결코 천박하거나 얄미운 여성은 아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 감독은 김규리를 또 한번 찾았을까. 임권택 감독의 말대로 김규리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추은주는 스크린 속에 곱고 아름답게 녹아났다.

김규리가 출연한 '화장'은 거장이라 불리는 임권택 감독의 신작으로 제28회 이상 문학상 대상을 받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죽어가는 아내(김호정 분)를 두고 젊은 여자(김규리 분)를 마음에 품어 갈등하는 중년남성 오상무(안성기 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며 지난 9일 개봉했다.
봄비가 내리던 4월 첫째 주,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던 김규리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열이 올라 가녀린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밝게 웃으며 취재진을 반긴다. 싱그러운 느낌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미소다.
김규리는 '화장'에서 30대 초반의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서 대리 추은주를 연기했다. 오상무의 열정을 깨우는 여인으로 약혼자와 파혼을 겪고 오상무와 가까워지지만, 중국으로 이직을 고민하고 있어 오상무를 조바심내게 한다.

영화가 처음 공개된 것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크랭크업은 그해 3월이다. 하지만 김규리는 여전히 임권택 감독과 또 한번 작업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눈치였다.
"저는 임권택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신다고 해서 굉장히 감사했어요. 팬이거든요(웃음). 그런데 저한테 출연 제의를 해주실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죠. 12년 만에 감독님이 다시 불러주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지난 2004년 '하류인생'을 통해 임권택 감독을 처음 만났던 어린 김규리는 성숙한 여자가 돼 임권택 감독과 또 한번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김규리는 여전히 임권택 감독 앞에만 서면 작은 소녀가 되는 기분이란다.
"이번엔 더 했어요. 임권택 감독님만 계신 게 아니라 안성기 선배님도 있었고 김호정 언니도 그렇고…. 저한테는 너무나 큰 존재잖아요. 함께 연기한 분들이 워낙 빼어나신 분들이라 현장에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 공부가 되는 기분이었죠. 다 습득하고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감독님 마음에 들 수 있는 연기를 할까? 그 생각만 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그가 여전히 '꿈만 같다'고 묘사하는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 합류할 수 있던 캐스팅 이유가 궁금했다. 그를 추은주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지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언급한다.
"당시에 개막식 축하공연으로 춤을 췄어요. 예전에 MBC 예능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던 경험이 계기가 돼 좋은 기회를 잡은 거죠(웃음). 지나고 나니까 이런 좋은 기회가 생기려고 춤도 배웠던 것 같고 그래요."

김규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연기자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현장이 좋아 여배우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고. 그런 부분에서 김규리가 현역으로 뛰는 임권택 감독을 유독 존경하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또 김규리는 스스로 편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는 단호히 거절하고 싶다.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치면서 연기하는 것이 그만의 철학이다.
"현장은 내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장소에요. 그날 내가 촬영이 없어도 가고 싶어요(웃음). 현장만큼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곳이 없죠. '이 세상 안에서 내가 뭔가 할 일이 있고 이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시기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 작품을 잘 만들겠다는 목적을 함께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이 굉장히 좋아요."

김규리는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장소, '현장'에서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고 한다. 더 고생하고 도전하는 역할이리라.
"화장하지 않는 여자를 연기하고 싶어요(웃음). 이것도 우리 영화 '화장'처럼 중의적인 표현일 수 있겠네요. 진짜 화장을 안하고 민낯으로 출연하고 싶단 뜻이기도 하고요. 여배우가 메이크업을 안 하고 연기한단 의미는 그만큼 꾸밈없이 모두 보여주겠다는 뜻이잖아요. 약간은 도전이기도 하고.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복잡하고 까다로운 캐릭터만 연기한다고요? 제 운명인 거 같아요(웃음)."
[더팩트ㅣ성지연 기자 amysu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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