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첫 우승' 조상현 감독의 ‘창조적 파괴’ 리더십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 유병철 기자
  • 입력: 2025.05.21 00:00 / 수정: 2025.05.21 00:00
선수시절 2차례 빅트레이드 경험
지난해 2위팀이 충격적인 빅딜 단행
스포츠판 창조적 파괴인 트레이드의 성공 사례 
조상현 감독의 창원 LG가 창단 28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했다. SK와의 챔프전에서 3연승 후 3연패, 그리고 마지막 7차전에서 접전 끝에 승리했다./KBL
조상현 감독의 창원 LG가 창단 28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했다. SK와의 챔프전에서 3연승 후 3연패, 그리고 마지막 7차전에서 접전 끝에 승리했다./KBL

[더팩트 | 유병철 전문기자] # 지난 5월 17일.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던 2024~2025시즌 프로농구(KBL) 챔피언결정전 최종 7차전에서 창원 LG가 서울 SK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승승승-패패패 후 마지막 승부에서 이긴 까닭에 더 감동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LG는 KBL 2년차인 1997~1998시즌 창단 이래 첫 우승이기에 농구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KBL 10개팀 중 챔프전 우승트로피를 가져보지 못한 팀은 대구 가스공사(전신 인천 전자랜드)밖에 없군요.

프로야구 LG는 한때 ‘LG팬이라면 사위 삼을 만하다’는 촌평을 들었습니다. 1994년 이후 우승이 없었는데도 사생팬들이 많아 그 정도 한결같음이라면 사윗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얘기였죠. 이는 2023년 트윈스의 29년 만의 우승으로 이제 과거사가 됐습니다. LG의 문화인가요? 농구도 비슷하네요. 창단 28년 만의 우승이었으니까요.

# 그런데 농구 LG의 첫 우승은 우리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교훈을 하나 던져줍니다. 바로 스포츠판 ‘창조적 파괴’의 대명사라고 부를 수 있는 트레이드의 미학입니다. ‘창조적 파괴 이론’ 혹은 ‘혁신이론’으로 불리는 요제프 슘페터 얘기는 생략합니다. 그저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은 혁신과 파괴의 과정’이라는 그의 이론은 1940년대에 나왔지만 현재도 아주 유효하다는 정도만 언급합니다. 이게 스포츠에서도 통하니, 마치 야구소설을 빗대 경영학을 쉽게 표현한 베스트셀러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 생각납니다. ‘슘페터가 조상현의 LG농구를 본다면’ 정도가 되겠네요.

창조적 파괴를 주창한 요제프 슘페터는 경제학과 경영학 분야를 넘어 지금까지도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창조적 파괴'를 주창한 요제프 슘페터는 경제학과 경영학 분야를 넘어 지금까지도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 LG의 조상현 감독은 선수 시절 4번 팀을 옮겼습니다(골드뱅크~SK~KTF~LG~오리온스). 이중 세 번이 트레이드였고, 그 중 두 번은 KBL 역사에서 한 손에 꼽힐 ‘빅딜’이었습니다. 먼저 1999년 12월 24일 당시 골드뱅크(현 KT) 소속이던 조상현은 당대의 스타 현주엽(당시 SK)과 맞교환됐습니다. 조상현에 현금 4억원을 얹어주는 조건이었는데 워낙 충격적이었기에 ‘크리스마스 이브의 빅딜’로 불렸습니다. 조상현은 연세대 선배 서장훈과 함께 1999-2000시즌 SK의 첫 우승을 이끌었죠. 이어 2005년 11월 조상현은 SK와 KTF(현 KT)의 통신라이벌 3대3 트레이드를 통해 KTF로 이적했습니다. KTF의 방성윤 등 양 팀의 주요선수 3명이 맞교환되는 빅딜이었죠. 이렇게 '선수' 조상현은 빅딜을 통한 팀의 체질개선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 이제 최근을 살펴보죠. 조상현 감독은 2022년 4월 LG의 9대 감독으로 취임합니다. 당시 LG는 3년간 9~10(최하위)~7위를 기록하며 창단 후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전력보강도 없었기에 2022~2023시즌은 잘해야 플레이오프 진출의 마지노선인 6강으로 평가됐습니다. 그런데 3라운드부터 단테 커닝햄 등 외국인선수의 활약과 김준일의 부활 같은 호재가 겹치며 정규시즌 2위를 기록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4강에서 SK에 스윕패(3패)를 당하며 탈락한 것입니다. 이어 2023~2024시즌은 FA 양홍석을 데려오며 전력을 보강했고, 정규리그 막판 10연승을 질주하는 등 역시 2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수원 KT에 2승3패로 져 탈락했죠.

1999년 조상현-현주엽의 트레이드는 지금도 회자되는 KBL의 대형 트레이드다. 사진은 이를 다룬 농구전문지 점프볼의 기사./점프볼
1999년 조상현-현주엽의 트레이드는 지금도 회자되는 KBL의 대형 트레이드다. 사진은 이를 다룬 농구전문지 점프볼의 기사./점프볼

#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하위권도 아니고, 2년 연속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한 팀이 시즌 후 3건의 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2024년 6월 이재도를 고양 소노에 내주며 리그 최고의 슈터 전상현을 영입했습니다. 또 원주 DB와는 간판 이관희를 주고 두경민을 받았습니다. 이 두 트레이드는 같은 날(4일) 발표돼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미 FA로 허일영을 데려왔고, 울산 현대모비스와는 신예 이승우를 내주고 최진수를 데려왔기에 LG는 아예 새로운 팀으로 거듭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말이 쉽지, 2위 팀이 이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 결과는 다 압니다. 대대적인 트레이드로 팀이 완전히 바뀐 조상현의 LG는 올시즌도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고, 마침내 창단 첫 우승을 일궜습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쌍둥이 동생 조동현 감독의 현대모비스를 3전 전승으로 일축했고, 챔프전에서 정규리그 1위 SK를 잡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새로 영입한 전상현, 두경민 등 유명 선수의 활약은 미미했다는 점입니다. 둘은 시즌 내내 돌아가며 부상으로 제몫을 못했죠. 오히려 연세대 듀오 양준석-유기상과 아시아쿼터 칼 타마요 등이 기대 이상의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기존멤버로는 아셈 마레이만 건재했고, 새얼굴 중에는 허일영만이 챔프전 MVP가 될 정도로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이쯤이면 진짜 창조적 파괴 아닐까요?

조상현 감독이 챔피언 트로피와 함께 울먹이고 있다. 창조적 파괴에는 리더십이 필요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는 난관이 많은 법이다. 조상현 감독이 꼭 그랬다./뉴시스
조상현 감독이 챔피언 트로피와 함께 울먹이고 있다. 창조적 파괴에는 리더십이 필요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는 난관이 많은 법이다. 조상현 감독이 꼭 그랬다./뉴시스

# 조상현 감독은 의외의 측면이 많습니다. 자신이 리그를 대표하는 3점슈터였지만, 공격 못지않게 짠물수비를 중시합니다(올시즌 최소 실점). 프로팀 코치와 국가대표 감독과 코치 등 다양한 지도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기술보다는 성실한 훈련, 정신적인 준비, 그리고 팀워크를 강조합니다. 당연히 선수들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두 번의 좌절에 굴하지 않고, 과감한 변화를 택할 줄 압니다. 모든 혁신 시도가 성공할 수 없듯이, 스포츠의 트레이드도 누구나 결실을 거두지는 않습니다. 슘페터에 따르면 창조적 파괴에는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기업가 정신은 스포츠에서 바로 리더십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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