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1939년 6월 2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치러진 루 게릭의 은퇴식은 8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스포츠 사상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전해오고 있다. 루 게릭은 6만 2000명이 들어찬 홈구장에서 "나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란 말을 남기고 어두컴컴한 야구장 복도로 사라졌다. 관중석에선 손수건이 하나둘 등장했고, 곧 울음바다가 됐다.
2130경기 연속 출전기록을 세워 ‘철마’란 별명을 들었던 루 게릭은 은퇴 1년 전인 1938년부터 갑자기 근육의 힘이 빠지는 훗날 ‘루게릭병’으로 명명된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을 앓아 왔다. 더 이상 그라운드에 서 있기조차 버거웠던 루 게릭은 은퇴를 결심했다. 루 게릭은 은퇴 2년 뒤인 1941년 38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루 게릭은 베이브 루스와 중심타선을 이뤄 ‘양키 제국’을 건설한 슈퍼스타였지만 은퇴식에서의 마지막 한 마디가 없었다면 불멸의 선수로 기억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은 선수 시절 "선발 또는 마무리로 뛰지 못한다면 유니폼을 벗겠다"고 공언했다. 선동열 감독은 1999년 호시노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이 자신을 마무리에서 셋업맨으로 보직을 바꾸려 하자 주저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스포츠 선수들 중에서도 흔히 ‘레전드’로 불리는 슈퍼스타들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내리막길은 있게 마련이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은퇴’를 이들도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배구 스타 김연경(37)이 땀으로 얼룩진 배구코트를 떠났다. 8일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열린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은 "김연경"을 연호하는 핑크빛 함성으로 가득 찼다. 팬들은 더 이상 김연경을 코트에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뜨거운 눈물로 환송했다.
지난 2월 은퇴 예고를 한 김연경은 6개 구단을 돌며 아쉬운 ‘은퇴 투어’를 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에선 마지막 남은 기운을 모두 쏟아부어 기어코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은퇴 투어 때도 밝은 모습으로 후배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줬던 김연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김연경은 "나는 떠나지만 후배들 많이 사랑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 김연경은 기량 면에서 지금도 V-리그 최정상급이다. 그럼에도 김연경이 ‘아름다운 퇴장’을 결심한 배경은 자신이 혹시나 후배들의 성장을 막는 건 아닌지 염려해서다.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연경은 데뷔 첫해부터 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싹쓸이했다. 그 뒤 일본 JT 마블러스, 튀르키예 페네르바체, 중국 상하이를 거치며 세계적 선수로 성장한 뒤 2022년 흥국생명에 금의환향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한국을 4강으로 이끌며 MVP에 선정돼 명실공히 세계 최고 선수가 됐다.
김연경이 걷게 될 ‘제2의 인생’에 기대를 거는 건 그가 차지하고 있는 배구계의 독보적 위치 때문이다. 김연경은 스포츠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셀럽이다. 김연경은 방송계에서도 핫 아이콘으로 꼽힌다. 각종 예능프로그램을 비롯한 방송계에서도 김연경을 잡으러 뛰어들 것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김연경을 예능이 아닌 배구코트에서 계속 보고 싶은 건 필자만의 희망일까.
세계 무대를 두루 경험한 노하우는 지도자로서 최고의 덕목이다. 배구 저변확대를 위해 유소년 육성에 나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김연경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영원한 배구인’으로 배구와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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