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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에우제비우가 5일(현지 시각) 심장 질환으로 영면했다. / 슈피겔 보도 화면 |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박두익의 결승 골에 힙입어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고 조별 리그 성적 1승1무1패로 8강에 오른 건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충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3-5로 졌지만 포르투갈과 치른 준준결승에서 북한이 전반 25분까지 박성진 이동운 양성국의 연속 골로 앞서 나간 건 더 큰 충격이었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에는 TV 중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팬들은 극장에서 기록영화로 펠레의 브라질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잉글랜드가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서독을 4-2로 누르고 우승하는 장면 등을 봤다.
이 기록영화에 등장하는 2명의 당대 최고 축구 선수를 글쓴이를 비롯한 국내 팬들은 1970년과 1972년,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운동장에서 보게 된다. 북한과 경기에서 2개의 페널티킥 골을 포함해 4골을 몰아 넣으며 대회 득점왕(9골)이 된 에우제비우와 1958년 스웨덴, 1962년 칠레 월드컵 우승 멤버인 펠레다.
1972년 6월 2일 서울운동장 육상경기 트랙까지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열린 펠레의 산토스(브라질)와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이회택과 차범근이 골을 넣으며 분전했으나 2-3으로 졌다. 에우제비우가 이끄는 포르투갈의 벤피카는 1970년 9월 3일과 5일 각각 국가 대표 2진인 백호, 1진인 청룡과 경기를 치러 5-0, 1-1로 1승 1무를 기록했다. 벤피카에는 에우제비우 외에 뒷날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는 움베르투 쿠엘류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축구 올드 팬과 신세대 팬을 구분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포르투갈 축구하면 떠오르는 선수는?"
에우제비우를 떠올리는 팬이 있다면 그 팬은 적어도 40대 후반 이상의 올드 팬이다. 거기에다 '유세비오'라는 발음으로 기억하는 팬이 있다면 그는 확실한 올드 팬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얘기하면 당연히 신세대 팬이고 루이스 피구를 거론하는 팬은 두 세대의 중간쯤 된다.
에우제비우[Eusebio]를 1960~70년대 신문과 방송에서 왜 '유세비오'로 쓰거나 불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영어식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 무렵에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와 교류가 많지 않았다. 하긴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모든 언론 매체가 호마리우(브라질)를 로마리오[Romario]로 썼다. 몇몇 기자가 앞장서서 제대로 된 발음을 알리고자 했지만 새로운 '이름'이 정착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튼 '유세비오'는 백호와 경기에서 30m가 넘는 장거리 프리킥을 엄청난 감아차기로 성공해 바로 전해인 1969년 6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서독 클럽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 국가 대표 2진의 경기에서 귄터 네처가 터뜨린 '바나나킥' 묘기를 국내 팬들에게 다시 한번 선사했다.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유세비오'의 활약상은 어땠을까. 포르투갈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조별 리그 3조 첫 경기에서 헝가리를 3-1로 제친 데 이어 2차전에서 불가리아를 3-0으로 완파했다. '유세비오'는 불가리아전에서 전반 38분 추가 골을 넣어 자신의 대회 1호 골을 기록했다. 구디슨 파크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포르투갈은 강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3-1로 잡는 파란을 일으켰다. '유세비오'는 이 경기에서 전반 27분 추가 골, 후반 40분 마무리 골을 잇따라 터뜨려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불가리아를 2-0으로 잡았으나 2차전에서 헝가리에 1-3으로 져 1패를 안고 있던 브라질은 포르투갈에 져 1승2패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17살의 나이로 월드컵(1958년 스웨덴)에 데뷔한 펠레는 이 대회에서 상대팀의 집중 견제를 받았다. 잉글랜드 월드컵 기록영화 초반에는 펠레가 이반 콜레프 등 헝가리 수비수들에게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이 잇따라 나온다. 포르투갈과 경기할 때쯤 펠레는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조별 리그에서 3골을 터뜨린 '유세비오'의 득점 행진은 구디슨 파크에서 치른 북한과 준준결승에서 4골로 절정에 오른데 이어 잉글랜드와 준결승(1-2 웸블리 스타디움), 소련과 3위 결정전(2-1 웸블리)에서 페널티킥으로 한 골씩 보태며 끝났다.
일세를 풍미한 '유세비오'가 5일, 70대 초반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타계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고인을 기리는 뜻에서 이날부터 3일 동안 '국가 애도의 날'을 보낸다고 한다. 한국 축구 팬들과도 적지 않은 인연이 있는 에우제비우 다 실바 페헤이라를 추모한다.
더팩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