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바스켓 퀸' 정선민의 첫 고백 "두 살 연상의 남친과 1년째 데이트 "…①
- 신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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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4.25 14:25 / 수정: 2012.04.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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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선수 유니폼을 벗고 '여자' 정선민으로 자신있게 살아가겠다고 선언한 정선민. / 문병희 기자
[신원엽 기자] 마산 산호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의 '농'자도 모르고 코트에 뛰어든 한 소녀. 1993년 실업팀 선경증권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점차 여자 농구계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 한다. 1998년 신세계, 2004년 KB국민은행, 2007년 신한은행 2011년 다시 KB국민은행을 거치는 동안 총 9 회(신세계4, 신한은행5) 우승했고, 2003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홀로 묵묵히 흘린 구슬땀은 100여개의 개인 트로피를 자연스레 따라오게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세계선수권 4강 신화, 2007년 아시아선수권 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우승 등 태극 마크를 달고도 눈부신 기량을 자랑한 그는 어느새 여자 프로 농구의 '바스켓 퀸'이 돼 있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여자 프로농구를 생각할 때 그의 이름 '정선민'을 떠올린다.
이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지난 18일 전격 은퇴 선언을 한 정선민(38)은 무척 홀가분해 보였다. 23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마주한 그는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밝고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의 농구 인생 역시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경력이 화려해서라기보다는 선수 시절 내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였기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그의 성격이 오히려 그가 살아온 외 길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휴대폰 메신저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문구로 "내 끝은 창대했다"고 밝힌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 내게 '너는 참 잘살아 온 아이였어'라고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팬들을 위해 농구했고, 팬들을 생각하며 농구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후배 사랑과 여자 농구 발전에 대해서 얘기 할 때는 눈빛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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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은 은퇴에 대한 아쉬움이 놀라울 정도로 전혀 없었다. 온 열정을 다 바친 뒤 결정한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며 몹시 즐거워했다.
◆ "팬들에게 기대감 남기고 은퇴, 발표 당시 짜릿했다"
- 은퇴 발표 후 어떻게 지냈나. 이틀 동안 집에만 있었다. 전화와 문자가 정말 많이 와서 나갈 엄두가 안 나더라. 통화를 하고 있는데도 전화가 계속 올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삼일 째부터 지인들과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 술을 마셨는데, 코트를 떠나서 서운하거나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정말 행복하다. 좋게 마무리가 돼가니 나의 미래도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웃음)
- 홀가분해 보인다. 왜 지금이 은퇴의 '적기'라고 생각했나. 선수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은퇴시기를 한번 쯤은 생각하게 된다. 내 꿈은 후배와 팬들 앞에서 농구공을 멋지게 내려놓는 거였다. 그런데 올 시즌 팀 성적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았다. 이겨도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어떻게든 챔프전에 진출하자는 마음이었다. 결국 국민은행은 6년 만에 챔프전에 진출했고, 나의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챔프전에서 준우승한 뒤 여기에서 끝내야 그동안 최선을 다해온 내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것 같았다.
- KB스타즈로 이적한 첫 시즌이었다. 한 시즌 더 뛰었으면 어땠을까. 팬들이 아쉬워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게 바로 그거였다.(웃음) 팬들은 형식적이 아닌, 진심으로 나의 미래를 축복하며 나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줬다. 팬들의 아쉬움이 없는 은퇴는 싫었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 선수 시절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한 시즌을 더한다면 챔프전에 진출해 우승해야 잘하는 거다. 또다시 준우승 혹은 그 보다 못한 성적을 거뒀을 때는 정말 후회하고 가슴 아프게 은퇴할 것 같아 무서웠다. 지금이 내 전성기였다면 다음 시즌 도전해봤을지도 모른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우승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후배들의 옆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나이다. 팀을 좌지우지할 만한 경기력을 가지지 않았다.
-구단과 KB스타즈 동료들이 뭐라고 하던가. 붙잡지는 않았나.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동료들에게 전혀 말하지 않았다. 다들 당연히 다음 시즌에도 같이 뛸지 알았다더라. 아무도 눈치 못 채서 은퇴 발표할 당시 정말 짜릿했다.(웃음) 그런데 후배들이 원망보다는 오히려 정말 멋있게 은퇴하는 것 같다며 박수를 쳐줘 무척 고마웠다. 구단은 내가 나이 때문에 은퇴를 고려한다고는 생각했지만 16일(월) 막상 내 이야기를 듣고는 당황해 했다. 구단에 내 입장을 조곤조곤 설명하자 충분히 이해하겠다면서 의사를 존중해줬다.
-늘 최고여야 한다는 짐도 내려 놨겠다. 정말 큰 짐을 내려놨다. '시즌을 준비하는 힘든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라는 걱정을 이제 시원하게 떨쳐버린 것 같다. 그 준비 과정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경기를 뛸 수가 없다. 난 '이제 정선민, 한물갔구나'라는 말을 절대 듣고 싶지 않았다. 체력이 안 되면 기술로 승화하고 싶었고 기술로 안 되면 머리를 써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팀 동료들과 어떻게 하면 좋은 호흡을 보일지도 항상 고민했다. 정말 악착같이 했다.
- 30일 열릴 은퇴 기자회견을 상상해본다면? 여자 농구 선수 최초 은퇴 기자 회견이다. 정말 대단했던 (전)주원이 언니도 은퇴식만 했고 기자회견은 열지 않았을 정도다. 무척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러나 기분이 붕 떠있기 보다는 상당히 차분하게 말할 것 같다. '은퇴하는 애 맞아?' 이럴 정도로 말이다. 그동안 내 과거와 미래를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다. 또 이게 영원한 마지막은 아니지 않은가. 여자 농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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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어린 마음으로 여자 프로 농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정선민.
◆ "누구에게든 좌지우지 되지 않을 정책 필요"
- 은퇴한 입장에서 최근 여자 농구 대표팀 감독 선임 등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떤가. 여자 농구가 언제부터 이렇게 뚜렷한 방향성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대표팀 문제는 제대로 된 정책이 있었다면 분명히 이런 잡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든 좌지우지 되지 않을 정책을 세우고 지켜야 한다. 프로 구단을 운영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구단 책임자라고 해도 선수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 소속 선수들을 잘 지원해야한다는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작은 구단 때문에 속 시끄러우니 없애버리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신세계는 해체 작업에 그렇게 발 빠르게 움직일 거였으면 구단 인수에 더 신경 썼어야 했다. 모두 안타깝다. - 신세계 해체, 친정팀이라 마음이 더 아프겠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신세계 해체 전날 (양)정옥이를 만났다. 맥주 한 잔 하면서 우리의 앞날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정옥이가 내일 구단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우리끼리 '새 감독님이 결정됐나봐. 누굴까?' 이러고 있었다. 감독님 정해지면 연락 달라고 말한 뒤 헤어졌는데…. 선수들은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해체 기사를 먼저 봤고, 단장은 '너희들도 알다시피 팀 해체'라고 말했다더라. 그 얘기를 듣고 정옥이에게 신세계 체육관에 올라가는 계단에 걸려있는 내 사진을 떼오라고 했다. 소중한 발자취, 송두리째 없어지는 게 싫었다.
- 신한은행 시절 많이 서운하지 않았나. KB스타즈로 트레이드 될 당시에도 그러한 감정들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아는데. 아쉬움이 많았다. 나이 먹고 다치니 버려지는 느낌이 강했다. 구단 통산 5번째 우승에 도전하던 2010~2011시즌 개막 전날 부상했다. 빨리 복귀해야겠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했다. 당시 구단의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서운한 마음이 더 컸다. 플레이오프를 위해 몸을 만들던 때도 무리를 했더니 왼쪽 종아리 부근에 피로골절이 왔다. 주사를 맞고 뛰어 보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해야했다. 임달식 감독님은 서운할 정도로 냉정한 분이셨다. 그때부터 은퇴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이 여전히 좋지 않은 감정으로 남아 있었다면 챔프전 종료 후 인사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원한 국민은행에서 선수 생활 마무리하는 것도 도와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
-기록상으로는 9번(신세계4, 신한은행5)이지만, 본인이 직접 뛰지 않은 2010~2011시즌은 우승했다고 말하지 않아 왔다. 여전히 본인의 우승횟수는 8개라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신한은행의 5번째 우승은 내게 의미 없다. 국민은행에서 9번째 반지를 꼭 끼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은 없다.
- 신한은행은 어떤 팀으로 기억되겠는가. 정선민이 여자 농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게 만든 팀이다. 전성기를 구가했던 신세계 시절을 거쳐 국민은행에서 뛰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미친 듯이 노력해도 혼자 농구 하냐는 욕을 많이 듣던 시기였다. 그런데 07 시즌부터 뛴 신한은행은 저라는 나무가 멋지게 성장할 수 있게 해줬다. 훌륭한 정원사가 썩고 필요 없는 가지들을 모두 쳐내 화려한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 준 것 같다.
- KB스타즈를 준우승으로 이끈 뒤 떠난다. 어린 후배들에게 미안하지는 않나. (변)연하를 필두로 팀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챔프전이라는 좋은 경험을 했다. 우리 팀의 에이스는 연하다. 홀로 남아 더욱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혼자가 아닌 팀이 이길 수 있는 농구를 하도록 이끌어야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난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때는 이런 말을 못했다. 그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니폼 벗었기에 조언을 해주고 싶다. 더 큰 선수와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 프로 생활하면서 3개 팀에 있었다. 어떤 팀이 가장 애착에 남는가. 3개 팀 모두 애착이 간다. 각 팀마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냈다. 꼭 한 팀을 꼽아야 한다며 국민은행이다. 신세계와 신한은행은 다 좋은 멤버로 우승도 했다. KB는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느낌이어서 마음이 더 쓰이는 것 같다.(웃음)
- 가장 좋았던 기억과 아쉬웠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8번의 우승 순간 모두 좋았다. 한 시즌 내내 고생한 끝에 마지막 우승을 결정지은 뒤 부둥켜안고 헹가래 친 기억이 좋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이번 챔프 3차전에서 2점 차로 지고 있었을 때 종료 10여초를 남기고 (박)세미가 던진 충격적인 슛. 왜 그런 허무한 슛을 던졌는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부상해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연장 가면 참고 '아픈 거 뛰어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그런 슛이 나왔다. 세미는 볼 때마다 4차원이란 생각이 든다. 독특한 친구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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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민은 2살 연상의 남자 친구가 있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 '여자' 정선민 "남자 친구요? 든든한 애인 있습니다" -농구 선수가 아닌 여자 정선민이 됐다. 어떤 여자인가. 주위에서 2% 부족한 천상여자라고들 하더라. '허당'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농구장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데, 사석에서는 180도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애교가 많은 편이다. 모르겠나?(웃음) 아이 같다고 다 챙겨줘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님의 사랑을 엄청 많이 받고 자랐는데 아빠와 아직도 살 비비고 팔짱끼고 다닌다.
- 여자로서 해보고 싶은 것도 포기하면서 살았을 텐데. 특별한 취미를 가질 여유 없었다. 운동한 뒤 쉬기 바빴다. 선수는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 취미를 만들어 볼까한다. 여성스러운 취미인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웃음) 지금 하고 있는 유일한 취미 활동은 페이스 북(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 이제 정말 여자 정선민으로 살아가야한다. 두렵지는 않은가.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신이 난다. 그러나 현실은 무척 냉혹할 것이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이제 그런 걸 다 벗어 던져야 뙨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할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분간 쉬면서 여행도 다니고 세상에 넓이를 아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 마냥 농구장에서만 인생을 보내왔다.
- 제 2의 인생은 어떻게 설계하고 있나.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좋은 인연 있으면, 결혼도 해야 하는 등 할 일이 정말 많아 질 것 같다. 우선 지도자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사실 여자 선수 출신이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리고 지도력을 기르는 과정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밖에서 농구를 바라보고 문제점을 분석하고 견문을 넓혀야 할 것 같다. 해설은 제의가 들어온다면 해보고 싶다. 재밌을 것 같다. 제 3자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말해보고 싶은데 후배들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 너무 지적해서 상처 받을 것 같다고.(웃음)
- 남자 친구는 없나. 나이가 몇인데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겠나.(웃음) 2살 연상의 남자다. 지인의 친구인데, 우연히 같이 밥 먹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다들 '훈남'이라고 하더라.(웃음) 지난해 4월 20일에 만났고, 그때가 무척 힘든 시기였다. 참 의지가 많이 돼 줬다. 성실하고 배려심이 깊은 남자다.
- 결혼을 생각할 나이 아닌가. 둘 다 아직 결혼 생각은 없다. 결혼 보다는 지금의 감정으로 만나는 게 참 좋다. 운동선수로 너무 갇혀 살았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게 연애하고 싶다. 결혼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그럴 여유도 없었다. 한 달에 1번 만났다. 앞으로 더 애틋하게 만날 것이다. 오빠와 함께 여행도 가보고 싶다. 진짜 여자로서 삶을 살게 된 거다.
- 팬들이 어떤 선수로 기억했으면 좋겠나. 팬들이 그냥 각자의 기억 속에 '정선민은 이런 선수였어'라고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 선수 생활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열심히 한 것이다. 은퇴를 아쉬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여자 농구 발전을 위해 물신양면으로 노력하겠다. 또 어떤 식으로든 팬들께서 주신 사랑에 보답하도록 하겠다. 누구보다 행복한 선수 생활을 했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팬들께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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