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층 한계와 리그 일정은 면죄부가 아니다… 구단의 투자와 연맹의 지원이 관건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아시아 축구의 강호를 자처해온 K리그가 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와 경쟁력을 끌어올린 일본 J리그에 밀리는 데 이어, 이제는 동남아시아 구단들을 상대로도 고전하며 아시아 무대에서의 위상 저하를 드러내고 있다. K리그의 부진은 더 이상 일시적인 불운이나 선수들의 정신력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제는 구단의 선수단 구성과 대회 운영 방식, 아시아 무대를 대하는 인식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K리그 팀들은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 아시아 무대에서 무너지는 것일까. K리그 구단들이 보유한 전력과 선수들의 기량을 고려하면, 아시아 무대에서 지금보다 나은 경쟁력을 보여줄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주전과 백업의 격차, 국내 리그와 대륙 대회를 병행하는 선수 운용, 구단의 대회 우선순위가 맞물리면서 경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출전권 확보를 목표로 내걸면서도 정작 본선에서는 소극적인 운영을 반복한다면, 구단이 내세운 아시아 정상 도전의 진정성부터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 출전권엔 목숨 걸고, 대륙에선 뒷걸음치는 구단들
매년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와 출정식 때마다 구단들은 입을 모아 "K리그 우승" 또는 "ACL 티켓 획득"을 외치며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ACL 대회가 시작되면 얇은 선수층과 K리그 잔류 경쟁, 스플릿 일정 등을 이유로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제외하고 백업 위주로 원정에 나서는 사례가 반복된다. 그 결과 경쟁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패배를 떠안는다면, 팬들로서는 구단이 내세운 ACL 출전의 목표와 의지가 진정성 있는 것이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국내 리그 성적과 K리그1 잔류 여부는 구단의 재정과 다음 시즌 운영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다. 그렇다고 ACL 출전권을 확보한 뒤 본선 경쟁을 사실상 후순위로 밀어놓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출전권은 그 자체로 성취의 완성이 아니라 아시아 강호들과 경쟁할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다. 그 기회를 살릴 준비와 의지가 없다면, 시즌 내내 ACL 출전권 확보에 공을 들인 이유부터 되물을 수밖에 없다.

◆ K리그 경쟁에 밀린 ACL, 무엇을 위한 출전권인가
지난 14일 FC서울의 멜버른 빅토리 원정은 K리그 구단들이 대륙 대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돌아보게 하는 사례다. FC서울은 올 시즌 K리그1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며 10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고 있지만, 이날 ACL2 조별리그 E조 2차전에는 주전 선수들을 대거 제외한 채 경기에 나서 0-3으로 완패했다. 리그 성적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시아 정상 도전을 목표로 내걸고 출전권을 확보한 구단이 정작 본선에서는 경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선수 운용을 하지 못한다면, 출전권 확보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강원FC 역시 ACL2 안방 경기에서 캄보디아의 프놈펜 크라운에 1-2로 충격패했고, 그에 앞서 ACLE 리그스테이지에서도 포항이 홈에서 말레이시아의 조호르 다룰 탁짐에 0-2로 무릎을 꿇었다. 전북 현대도 ACLE에서 일본의 비셀 고베에 0-2로 패했다. 동남아시아 구단들에 잇달아 패하고 일본 구단에도 무릎을 꿇은 결과는 K리그의 아시아 무대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대전하나시티즌이 ACLE 상하이 하이강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13~15일 열린 ACL 경기에서 K리그 구단들의 전패는 피할 수 있었다.
구단마다 전력과 상황은 다르지만, 이 같은 결과는 출전권 확보에 쏟는 노력만큼 본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도 충실히 이뤄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출전권 확보에 공을 들이고도 본선에서 주전 선수들을 대거 제외하는 운영이 반복된다면, 아시아 정상 도전이라는 목표는 구두선에 머물 수밖에 없다.
물론 K리그 구단들이 국내 리그와 ACL을 병행하면서 선수단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빡빡한 일정과 주전·백업 간 전력 차이는 대륙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선수층의 한계가 소극적인 대회 운영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제한된 자원 안에서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하고, 리그와 대륙 대회를 고려해 선수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감독과 프런트의 책무다. 구단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단을 구성하고, 감독은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 광주가 증명한 '기회'… 출전권 너머의 경쟁력을 키워라
물론, 구단의 자성과 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륙 무대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리그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아시아 무대에 진심으로 부딪혔을 때의 실익은 이미 광주FC가 증명했다. 광주FC의 사례는 ACL이 단순히 피로만 누적되는 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2024-2025시즌 광주FC는 당시 이정효 감독이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며 ACLE 파이널스테이지 8강까지 진출해 총 180만 달러, 당시 환율 기준 약 26억 원의 상금을 확보했다.
K리그1 우승 상금(5억원)의 5배를 웃도는 규모로, 당시 구단의 연간 선수단 연봉 총액으로 알려진 약 96억7000만 원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재정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구단에 대륙 대회가 상당한 수익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아사니는 대회에서 두드러진 득점력을 선보이며 자신의 경쟁력을 아시아 무대에 알렸고, 이후 이적 과정에서 광주는 100만 달러, 약 14억 원의 이적료를 확보했다.
대륙 대회는 선수에게는 경쟁력을 입증할 기회이고, 구단에는 상금과 선수 가치 상승을 통한 수익 창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일부 구단은 대륙 무대에서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제외하며 소극적인 운영을 반복한다.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한 시즌 동안 사력을 다하고도, 정작 확보한 무대에서는 국내 리그 일정을 우선하며 ACL을 부차적인 대회처럼 취급하는 셈이다.

K리그가 아시아 무대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구단과 연맹, 현장이 함께 달라져야 한다. 구단은 출전권 확보를 넘어 본선 경쟁까지 고려한 선수단 구성과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연맹은 국내 리그와 대륙 대회의 일정이 불필요하게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하고, 국제대회 성과가 구단의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감독 역시 제한된 자원과 빡빡한 일정만 탓할 것이 아니라 유스 활용과 로테이션, 전술적 대응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ACL 출전권은 목표의 끝이 아니라 경쟁의 시작이다. 출전권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도 정작 본선에서 경쟁을 포기하는 듯한 운영이 반복된다면, 아시아 정상 도전은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구단의 투자와 현장의 책임, 연맹의 지원이 맞물릴 때 K리그는 비로소 아시아 무대에서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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