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르카 시절 스승 가르시아 플라사와 적으로 재회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측면에 서면 윙어, 중앙으로 들어오면 플레이메이커, 최전방에 올라가면 세컨드 스트라이커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로운 ‘7번’ 이강인(25)이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그토록 즐겨 활용했던 ‘앙투안 그리즈만형 만능 공격수’로 진화할 수 있을까.
한국축구의 에이스 이강인이 30일 오전 4시30분(한국시간) 스페인 세비야의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열리는 세비야FC와 2026~2027시즌 라리가 3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시즌 2호골을 겨냥한다. 라리가는 경기를 현지시간 29일 오후 9시30분으로 편성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강인의 포지션이다.
시메오네는 세비야전을 준비하는 최근 전술훈련에서 이강인을 최전방 공격 조합에 계속 포함시켰다. 27일 훈련에서도 사실상 유일한 정통 공격수 카드인 아데몰라 루크먼의 파트너로 줄리아노 시메오네와 이강인을 번갈아 시험했으며 현지 매체는 최종적으로 "모든 것이 한국 선수를 가리킨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훌리안 알바레스가 몸 상태 문제로 훈련에서 빠지고 알렉산데르 쇠를로트도 부상 중인 만큼 이강인의 2경기 연속 선발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포지션 없는 공격수’…그리즈만의 길을 걷나
중요한 것은 이강인이 단순히 공격수들의 공백을 메우는 ‘대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메오네가 이강인 영입 직후부터 주목한 것은 다재다능함이었다. 측면과 중앙은 물론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 사이의 좁은 공간, 세컨드 스트라이커까지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리즈만이 떠오른다. 시메오네 체제의 그리즈만은 전통적인 최전방 공격수가 아니었다. 필요하면 중원으로 내려와 패스를 연결하고, 측면으로 빠져 공간을 만들며, 페널티지역에서는 직접 마무리했다. 여기에 수비 전환 때는 전방 압박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10번과 9번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격수’에 가까웠다.
아틀레티코의 올 시즌 전력 분석에서도 스페인 매체 아스는 이강인을 두고 그리즈만 이탈로 부족해진 공격의 ‘명료함(Claridad)’을 보완해야 할 선수로 지목했다. 단순한 윙어 영입이 아니라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까지 기대한다는 의미다.
이강인은 이미 가능성을 보여줬다.
말라가와 개막전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돼 경기의 막힌 흐름을 뚫는 환상적인 왼발 골로 결승골의 주인공이 됐다. 시메오네 감독도 교체 선수들이 경기의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비야레알과 2라운드에서는 루크먼과 투톱으로 선발 출전했지만 한곳에 머물지 않고 좌우와 2선을 오가며 공격 전개에 관여했다.
세비야전은 이 실험의 세 번째 단계다. ‘어디에서 뛰느냐’보다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한 선수. 시메오네가 이강인에게 원하는 모습도 점차 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적장이 된 ‘옛 스승’…이강인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르시아 플라사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장면은 세비야 벤치에 있다.
현재 세비야를 지휘하는 루이스 가르시아 플라사 감독은 이강인이 2021년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에 입단했을 때 그를 직접 지도했던 감독이다. 당시 이강인은 가르시아 플라사를 두고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자신에게 공격적이고 정확한 플레이, 좋은 패스와 득점·찬스 창출을 요구하는 감독이라고 설명했다.
5년 전 자신의 장점을 키워주려 했던 감독이 이제는 그 장점을 막아야 하는 상대 감독으로 만나는 셈이다.
더구나 가르시아 플라사의 세비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지난 시즌 도중 지휘봉을 잡은 그는 2027년 6월까지 계약돼 있으며 올 시즌에는 라요 바예카노를 2-1로 꺾은 데 이어 난적 아틀레틱 빌바오를 산 마메스에서 3-1로 제압했다. 개막 2전 전승·5득점 2실점. 세비야 구단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시즌 첫 두 경기를 모두 이긴 세비야 감독은 가르시아 플라사를 포함해 세 명뿐이다.
세비야의 특징은 화려한 점유율 축구보다는 강한 압박과 빠른 전환,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는 직선적인 공격에 있다. 빌바오전 첫 골 역시 최전방 압박으로 상대 골키퍼의 실수를 유도하면서 나왔다. 이강인에게는 공격뿐 아니라 압박을 벗겨내는 첫 터치와 순간적인 패스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 10차례 AT 7승…그러나 피스후안에선 ‘경고등’상대전적은 아틀레티코가 앞선다.
최근 공식·친선전을 포함한 10차례 맞대결에서 아틀레티코가 7승1무2패로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가장 최근 산체스 피스후안 원정이었던 지난 4월에는 세비야가 2-1로 이겼다. 지난해 11월 메트로폴리타노에서는 아틀레티코가 3-0으로 완승했다.
따라서 시메오네에게도 이번 경기는 부담스럽다.
아틀레티코는 말라가를 2-0으로 꺾었지만 비야레알과 2-2로 비기며 현재 승점 4다. 반면 세비야는 승점 6으로 출발했다. 우승 경쟁을 목표로 하는 아틀레티코가 시즌 초반부터 선두권과 간격이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다.
그리고 그 승부의 중심으로 이강인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개막전에는 골로 흐름을 바꾼 ‘조커’, 2라운드에서는 투톱 선발, 3라운드를 앞두고는 다시 최전방의 유력한 선발 카드다. 입단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시메오네의 전술판 여러 칸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셈이다.
그리즈만이 아틀레티코에서 특별했던 이유도 한 포지션의 최고여서만은 아니었다. 감독이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인이 세비야에서 라리가 2호골까지 터뜨린다면 의미는 단순한 ‘2경기 만의 득점’에 그치지 않는다. 시메오네가 찾고 있는 새로운 공격의 만능키가 누구인지 보다 분명해질 수 있다.
옛 스승은 이강인을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의 이강인은 마요르카 시절보다 훨씬 많은 무기를 갖고 있다.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펼쳐질 ‘제자와 스승의 재회’, 그리고 이강인의 ‘그리즈만 프로젝트’가 라리가 3라운드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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