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의 월드컵파일] 사람 바꾼다고 한국 축구가 달라질까
  • 최순호 전 국가대표
  • 입력: 2026.07.15 00:00 / 수정: 2026.07.15 00:00
감독 교체보다 먼저 손봐야 할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시스템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람을 찾지만 지금 더 절실한 것은 누가 맡느냐보다 어떤 구조와 시스템으로 움직이느냐다. 사진은 2024년 국회에 출석한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왼쪽).더팩트 DB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람을 찾지만 지금 더 절실한 것은 누가 맡느냐보다 어떤 구조와 시스템으로 움직이느냐다. 사진은 2024년 국회에 출석한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왼쪽).더팩트 DB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 감독을 바꾸고, 위원회를 새로 만들고, 이름난 축구인을 불러 모은다. 물론 사람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축구에 더 절실한 것은 누가 맡느냐보다 어떤 구조와 시스템으로 움직이느냐다.

어떤 조직이든 기본적인 틀은 갖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도 각종 위원회와 행정 조직, 대표팀 지원 체계와 유소년 육성 제도가 존재한다. 문제는 구조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요한 결정이 정해진 절차보다 특정 인물의 판단에 좌우되고, 실패가 발생해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면 그것은 시스템이라 부르기 어렵다.

시스템은 문서로 만들어 놓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며, 모든 구성원이 같은 기준에 따라 실행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사람이 바뀌어도 정책과 철학이 이어지고, 감독이 교체돼도 대표팀의 축구 방향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유소년에서 성인 대표팀까지 일관된 선수 육성 철학과 경기 모델이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 번의 실패가 전체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 축구가 경계해야 할 또 하나는 독단이다. 한 사람의 경험과 판단이 조직 전체를 지배하면 구성원은 침묵하게 되고, 조직은 점점 약해진다. 자신의 신념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고집이 아집으로 변하면 균형을 잃는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혼자 결정하고 밀어붙이면 공감과 실행력을 얻기 어렵다.

반대로 충분한 토론과 검증을 거친 결정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실패 가능성을 줄인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결정 과정과 근거를 기록하며, 결과를 다시 평가하는 과정이 반복돼야 한다. 그렇게 쌓인 경험이 프로세스가 되고, 프로세스가 결국 조직의 자산이 된다. 강한 조직은 뛰어난 한 사람이 끌고 가는 조직이 아니라, 누구나 지켜야 할 원칙과 절차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다만 시스템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시스템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람을 선택하는 안목이다. 가까운 사람, 말이 잘 통하는 사람만으로 조직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 내부에서 전략을 만들고 실행할 사람과, 외부에서 냉정하게 문제를 지적할 전문가를 구분해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이나 경쟁 관계에 있는 인물을 충분한 검증 없이 중요한 자문 역할에 앉히면 갈등과 불신이 커질 수 있다. 능력뿐 아니라 도덕성, 책임감, 협업 능력,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함께 살펴야 한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것은 전술보다 어려운 일이며, 리더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한국 축구의 재건은 유명 감독 한 명을 선임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먼저 실패의 원인을 투명하게 분석하고, 의사 결정 구조와 책임 체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대표팀 운영, 지도자 선임, 유소년 육성, 행정과 기술 분야를 하나의 장기 계획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이 사람의 교체와 관계없이 이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사성어에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본받되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한국 축구가 쌓아온 투혼과 공동체 정신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방식에만 기대서는 미래를 열 수 없다. 전통 위에 현대적 시스템과 투명한 프로세스를 세워야 한다.

좋은 조직은 사람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위대한 조직은 시스템으로 사람을 성장시킨다. 한국 축구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사람을 바꾸는 일보다 먼저 시스템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책임 있게 운영할 사람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위기에 처한 한국 축구가 다시 신뢰를 얻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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