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9일 발표된 축구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은 한국 축구의 미래 대신, 지도자 개인의 전술적 무능과 자신감 결여를 감추기 위해 ‘군필 자원’이라는 안전장치에 비겁하게 매달린 과도한 집착의 결과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번 명단 발표는 국가대표 선발의 대원칙이었던 '현재의 경기력'도, 아시안게임이라는 무대가 지녀온 '한국 축구 자산 보호'라는 대의도 모두 팽개쳐진 모순덩어리다. 팬들과 축구계가 느끼는 분노와 허탈감은 단순히 특정 선수의 탈락 때문이 아니다. 과정의 정당성과 명분을 상실한 지휘부의 독단,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축구협회의 무능한 행정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어서다.

◆ 기회 박탈과 전술적 악수(惡手), 서재민·손정범 대신 ‘군필’ 이승원 발탁
한국 축구에서 아시안게임은 유망주들이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유럽 및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민성 감독의 선택은 철저히 이 대의를 배제했다. 이번 아시안게임 최종명단 23인 가운데 군필 요원은 이영준 김준홍 이승원 등 3명이다.
그 가운데 이미 김천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최전방 공격수 이영준(그라스호퍼)과 골키퍼 김준홍(수원 삼성)의 발탁은 정작 중요한 우승을 위해 필요하다면 전술적 차원에서 충분히 인정해 줄 만한 대목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중원이 논란의 중심이다. 현재 K리그에서 왕성한 활동량과 멀티 능력을 선보이며 전술적 치트키로 꼽히던 서재민(인천)과, 아시아 특유의 밀집 수비를 깨부술 날카로운 창 역할로 기대를 모은 손정범(서울)의 제외는 이번 명단이 얼마나 현장 데이터와 전술적 필요성을 무시한 채 짜여졌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특히 이들을 제외하고 이승원(강원FC)을 뽑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이미 군 복무를 마친 군필 자원으로, 2023년 FIFA U-20 월드컵 4강 멤버로 맹활약한 한국축구의 소중한 자산이기는 하지만 올 시즌 강원에서 경기에 잘 나서지 못할 만큼 보여주고 있는 폼이 지난 시즌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대체 발탁됐다. 단기 토너먼트의 안정감이라는 미명 하에 국제대회 경험을 이유로 군필 자원을 고집하느라, 정작 현재 가장 경기력이 좋고 간절했던 미필 유망주들의 기회를 원천 차단한 셈이다. 이로 인해 대표팀의 선발 원칙은 완전히 실종됐다.

◆ '종합적 검토'라는 수사(修辭) 뒤에 숨은 감독 리스크
이민성 감독은 명단 발표 직후 "두 차례 소집훈련을 통해 성장 정도를 다시 평가했고, 이 연령대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단기 토너먼트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했다"며 과정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나 이 그럴듯한 수사야말로 철저한 자기모순이다. 그동안 이민성호는 배준호, 김지수, 양민혁 등 아시아 무대를 압도하고도 남을 초호화 멤버들을 보유하고도 색채 없는 전술과 졸전을 거듭하며 불안감을 키워왔다. 축구계 안팎의 일관된 지적은 선수들의 이름값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감독의 전술적 부재였다.
진정으로 소집 훈련과 경기력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면, 팀 전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 코칭스태프의 무능에 있음을 시인하고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결단이 선행됐어야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도리어 '군필 자원의 안정감'이라는 방패 뒤로 숨으며, 자신의 전술적 리스크를 지우기 위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제물로 삼는 ‘오만한 독주'를 택했다. 지도자의 전술적 역량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단만 바꾼다고 경기력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이는 참사의 원인을 지휘봉이 아닌 선수단 구성으로 돌리려는 전형적인 책임 전가다.

◆ 전력강화위원회의 무소신·눈치보기 행정, 시스템의 붕괴
더 큰 비판의 화살은 현장의 독주를 견제하고 제어했어야 할 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로 향한다. 위원회의 존재 이유는 감독의 전술 능력 부족이나 단기적 성과욕이 한국 축구의 장기적 방향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잡는 것이다. 감독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아시안게임 병역 혜택 활용을 저버리고 모순된 명단을 짜왔다면, 위원회는 선발 기준의 형평성과 전술적 타당성을 매섭게 검증하고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이번에도 현장의 독단 앞에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철저히 윗선과 여론의 눈치만 살폈다. 명단 발표 이후 쏟아지는 의구심에 대해 어떠한 설명이나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못하고 입을 닫아버린 모습은 '밀실 행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무기력함은 결국 감독의 성패에 자신들의 안위도 엮여 있는 '면피용 카르텔'에서 비롯된다. 선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논란부터 현장의 독단까지, 기존 국가대표팀 잔혹사에서 드러난 문제점 중 단 하나도 개선되지 않은 채 시스템의 실패를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

◆ 기득권의 면피용 무대로 전락한 아시안게임, 팬들은 볼모가 아니다
이번 이민성호의 명단 발표를 보며 축구팬들이 느끼는 기시감은 명확하다. 지도자의 무능과 행정의 독단을 시스템이 아닌 '선수 개인의 기량과 경험'에만 기대어 모면하려다 파국을 맞았던 '홍명보호 실패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 기득권층과 현장 지도자들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자신들의 행정적 과오와 무능을 덮을 '면죄부 자판기'로 여기고 있을 게 뻔하다. "아무리 과정이 엉망이고 시스템이 붕괴되어도, 금메달 하나만 따오면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오만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홍명보호의 전철에서 봤듯이 그마저도 생각대로 될 리 만무하다. 첫 단추인 진단이 잘못됐는데 처방이 제대로 됐을 리가 없다.
한국 축구의 백년대계가 되어야 할 유망주들의 동기부여와 미래 자산은 그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인질로 전락했다. 실패의 역사를 이토록 맹목적으로 복제하는 기득권의 회전문 행정 속에서, 한국 축구와 팬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들의 위험한 놀음에 볼모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