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빰때리기'의 본질은 ‘일본 저질문화’ 답습 [유병철의 스포츠 렉시오] 
  • 유병철 기자
  • 입력: 2025.12.31 00:00 / 수정: 2025.12.31 00:00
‘뺨 맞고 힘낸다’ 이노키의 '투혼빈타'
돈 받고 뺨 때려주는 엽기식당도
일본의 변태문화를 왜 따라하나?
2009년 1월 일본 나가사키현 고토시의 한 이벤트에서 일반 참가자들의 뺨을 때리고 있는 안토니오 이노키의 모습. 이노키의 엽기적인 투혼빈타는 일본열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 나가사키현청 홈페이지
2009년 1월 일본 나가사키현 고토시의 한 이벤트에서 일반 참가자들의 뺨을 때리고 있는 안토니오 이노키의 모습. 이노키의 엽기적인 '투혼빈타'는 일본열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 나가사키현청 홈페이지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한때 일본에서는 해마다 이쯤(정월)이면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유명인사 안토니오 이노키(1943년생))에게 뺨을 맞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주요 격투기 대회는 이노키를 초청해 현역선수들이 뺨을 맞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죠. 유래는 이렇습니다.

이노키가 의원 시절 한 대학의 강연 중 이벤트를 했죠. 참가자들이 이노키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참가자가 무술을 연마한 학생이었고, 맞은 순간 고통을 느낀 이노키가 반사적으로 학생의 뺨을 때린 겁니다.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학생은 오히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고, 이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후 자청해서 이노키에 뺨을 맞는 학생들이 생겨났고,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뺨을 맞은 재수생들이 대거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투혼의 뺨때리기, 이른바 ‘투혼빈타(闘魂ビンタ)’가 생겨난 것입니다. 여성들에게는 ‘빈타’ 대신 키스를 하는 투혼주입키스가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 이노키 말고도 일본의 뺨때리기는 해외토픽에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2023년 12월 뉴욕포스트 등 외신들이 보도했는데, 일본 나고야에 있는 한 식당은 손님들이 300엔(당시 약 2680원)을 내면 여성 종업원이 뺨을 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특정 직원을 지명할 경우 500엔(약 4500원)의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 뺨을 때리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세게 칩니다. 일부 손님은 종업원으로부터 너무 세게 맞아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종업원들은 손님의 뺨을 때린 뒤 허리 숙여 인사를 하죠. 어이가 없게도 이 식당은 이 서비스가 화제가 되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합니다.

2023냔 일본 나고야의 샤치호코야라는 식당에서 점원이 돈을 받고 손님의 뺨을 때려주는 장면. 잠시 화제를 모았지만 이 서비스는 중단됐다고 한다. / 유튜브 영상 캡처
2023냔 일본 나고야의 '샤치호코야'라는 식당에서 점원이 돈을 받고 손님의 뺨을 때려주는 장면. 잠시 화제를 모았지만 이 서비스는 중단됐다고 한다. / 유튜브 영상 캡처

# 문화는 다양하고, 특정 문화현상이나 행위에 대해 등급을 매기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투혼빈타와 뺨때리기 서비스는 저질문화입니다(그러니 지금은 없어졌죠). 원래 일본문화의 폐해로 지나친 선정성과 폭력성이 지적돼 왔습니다. 대표적인 게 SM입니다. 이 단어를 접하면 일본사람들은 얼굴을 붉힙니다. ‘사도마조히즘’을 뜻하는데 이 약어가 일본에서는 공공연하게 쓰이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공간에서 행해지는 개인의 취향을 나무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상업적으로 포장해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섹스 관련 산업을 ‘욕망산업’으로, 불륜을 ‘혼외연예’ 등으로 순화합니다. 그리고 이 못된 행습의 뿌리는 사무라이 문화에 기인합니다. 사회학자 이케가미 에이코는 '사무라이의 나라'에서 명예를 중시하는 사무라이 문화에는 ‘소유’와 ‘폭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작동했다고 일갈했습니다. 맞습니다. 폭력은 아무리 미화해도 폭력입니다.

# 2025년 12월 신태용 전 울산 감독의 뺨때리기가 이슈가 됐습니다. 선수들과의 갈등으로 취임 두 달만에 중도하차한 것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뺨때리기 사건이 폭로된 겁니다. 신태용 전 감독은 지난 8월 울산 선수단과의 첫 공식 미팅에서 과거 대표팀 시절 함께했던 정승현을 만나자 가벼운 악수 후 그의 뺨을 오른손으로 때렸습니다.

묻혀있던 이 사실은 지난 11월 30일 정승현이 (신태용 감독의)폭행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화두에 올랐죠. 그리고 12월 14일 언론이 다큐멘터리 영상에 남아 있던 이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고, 울산구단이 회신했고, 향후 징계가 이뤄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신태용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습니다.

문제의 순간. 신태용 전 울삼 감독(왼쪽)이 지난 8월 취임 후 선수단과의 미팅에서 정승현과 인사를 나누던 중 뺨을 때리고 있다. / 울산구단 다큐멘터리영상 캡처
문제의 순간. 신태용 전 울삼 감독(왼쪽)이 지난 8월 취임 후 선수단과의 미팅에서 정승현과 인사를 나누던 중 뺨을 때리고 있다. / 울산구단 다큐멘터리영상 캡처

# 당사자인 신태용 감독은 "(정)승현이 같은 경우는 올림픽, 월드컵 등 함께한 동료였다. 가장 아꼈던 제자"라고 애정표시였다고 항변했습니다. 이에 정승현은 "가한 사람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지만, 받는 사람이 폭행이라고 느끼면 그건 폭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여론도 분분합니다. ‘친근함의 표시(구단측 설명 포함)’ vs '황당한 폭력‘으로 갈렸습니다.

신태용 감독을 두둔하는 쪽은 ’세대 간 격차‘, 즉 기성세대와 MG세대의 의사소통 문제로 치환했습니다. 반면 그 폭력성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한국체육대학의 장익영 교수는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의 토론에서 "아무리 선수를 아낀다고 해도 표현하는 방식이 굉장히 폭력적이다. 세대를 넘어,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폭력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 세대 간의 문화격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논쟁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그것도 그 행위가 최소한의 타당성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친근함의 뺨때리기’는 윤리적 정당성도 없고, 한국의 전통문화와도 관련이 없습니다.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사무라이, 군국주의 일본의 폭력성에서 기인하는 변태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배울 게 없어서 이런 걸 배우는지요? ‘너님이나 그렇게 하세요.’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거세고, 우리의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와는 달리 일본문화에 대해 열등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의 부회장을 지내고, 해외에서 인정을 받은 유명 지도자가 아무 생각 없이 몹쓸 행동을 한 것입니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문제가 불거진 후에도 신태용 감독이나 구단 측이 ‘친근함의 표시’라며 쓰레기 문화에 이해를 덧붙이려 한다는 점이죠. '생각이 짧았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반성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정말이지 젊은 세대가 이런 거 배울까 겁이 납니다.

유투브에 신태용 정승현을 검색하면 뺨때리기 관련 영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조회수도 폭발적이었다. 젊은 세대가 친근함의 뺨때리기 같은 일본의 저질문화를 따라할까 우려된다. / 유튜브 검색 화면
유투브에 '신태용 정승현'을 검색하면 뺨때리기 관련 영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조회수도 폭발적이었다. 젊은 세대가 '친근함의 뺨때리기' 같은 일본의 저질문화를 따라할까 우려된다. / 유튜브 검색 화면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