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LA=황덕준 재미 언론인] 손흥민이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지난주 중대한 결정을 발표했다. 2027시즌부터 정규리그를 7월 중순에 개막, 이듬해 5월까지 진행하는 이른바 '추춘제(秋春制)'로 일정을 변경한다는 내용이다. 1996년 출범 이후 이어온 봄 개막→가을 종료의 '춘추제(春秋制)'를 유럽축구리그 일정에 맞춘다는 것이다.
MLS 돈 가버 커미셔너는 "캘린더 전환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라며 "이는 리그와 북미 축구가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단순한 일정 변경이 아니라 역사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다소 과장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MLS 입장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결정으로 평가되는 모양이다.
프로미식축구리그 NFL, 프로야구 MLB, 프로농구 NBA, 프로아이스하키 NHL 등 미국스포츠의 '빅4'를 넘보기에는 언감생심인 처지를 벗어날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대한 미국 스포츠팬의 관심이 높아질 것을 예상하고 내친 김에 유럽리그와 일정동기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살려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우선 MLS의 '캘린더 변화'는 국제 트레이드시장에서 선수영입에 한결 수월해지는 장점이 가장 크다. 기존의 춘추제 일정에서는 시즌 중반에 새 선수를 영입해야 해 운영측면에서 다소 부자연스러웠지만 여름철 이적시장에서 유럽 등 다른 지역 리그와 동등하게 거래하게 되면 보다 전략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
또 플레이오프가 10~12월이 아닌 5월에 치러지게 되면 MLB나 NFL, 대학풋볼의 정규시즌이나 포스트시즌을 피하게 돼 주목도를 높일 수 있다. 가을부터 초겨울로 이어지는 북미스포츠의 전통적인 스포츠 흥행시즌을 벗어나 MLS의 플레이오프에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킬 수 있다. 이는 스폰서십과 중계권 가치를 높이는 데 매력적인 요소다.
구단에도 선수 관리 전략을 세우는 데 안정감을 제공한다. 연중 트레이드 전략을 일관성 있게 짤 수 있고, 여름철 영입을 통해 정규시즌 시작 전에 통합된 전술훈련을 가능하게 만든다.
뭐니뭐니해도 캘린더 전환은 MLS가 진정한 글로벌 리그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유럽, 중남미, 아시아 등 주요 리그와 일정을 맞추게 되면서 충성도 높은 세계 각 지역 팬층과 연결 고리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MLS 구단의 이적 시장 참여가 활성화되면 뛰어난 해외 선수를 유치하고 유망주를 발굴하는 한편 선수 수출도 기대할 만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리그 경쟁력과 수준을 끌어올리는 선순환 고리가 될 수 있다. 리그 운영이 더욱 구조적으로 정비되면 성장 궤도에 안정적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캘린더 전환은 그 자체로 지속 가능성의 신호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리스크도 있다. 기후, 팬들의 관전 습관, 노사 관계 등 현실적 도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 북동부와 캐나다의 프랜차이즈 도시는 겨울철이 매우 춥다. 12월과 2월의 홈 경기 수를 제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경기장 조건과 안전 문제 등이 변수로 남는다.
팬들의 시즌패스 구매 패턴, 경기장 방문 습관, 중계 시청 습관이 바뀔 가능성도 결코 만만하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과도기인 2027년 초의 '짧은 시즌'은 일부 팬이나 시즌패스 보유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경기 수가 적고, 이전 시즌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티켓 가격, 시즌패스 정책, 마케팅 전략 등 모든 걸 다시 짜야한다. MLS 선수 노조(MLSPA)와 계약 조정도 필요하다. 경기 일정 변화, 휴식 기간 조정, 연봉 지급 일정, 연차 휴가 등에서 협의가 필요하며, 이는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만약 이 변화가 성공적으로 실행된다면, MLS는 북미스포츠 '빅4' 진입이라는 야망에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 축구리그 서열에서도 위치가 더 당당해질 수 있다. 사실 MLS는 2023년과 2024년 관중수와 TV시청률에서 기록을 세웠지만 올해는 평균 관중수가 경기당 2만1988명으로 작년보다 5.4% 감소했다. 축구전문 매체 '사커 아메리카'에 따르면 29개 팀 중 19개 팀의 관중이 감소했으며, 절반 이상이 10% 이상의 하락을 기록했다.
MLS는 지난 10월 모든 스트리밍 및 플랫폼을 통해 주간 총 370만 명의 글로벌 시청자를 기록했으며, 주말 전체 경기당 평균 약 24만 6000명이 시청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약 29% 증가한 것이지만, 평균 시청자 수는 애플TV의 10년간 25억 달러 계약이 발효되기 직전인 2022시즌 당시 ESPN 단독 중계 단일 경기 평균 시청자 수보다 약 10만 명 적은 수준이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이 같은 결과는 클럽 월드컵과 북중미 골드컵 모두 시청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여름 시즌 이후에 나타났다. 63경기로 진행된 클럽 월드컵은 경기당 평균 3만9,547명의 관중을 기록했지만, 14경기는 2만 명도 채 안되는 관중이 지켜봤다. 골드컵은 31경기 평균 2만 5,129명의 관중을 기록했는데, 이는 2023년 대비 7,000명 이상 감소한 것이다. 이같은 통계는 미국 대중스포츠로서 축구에 대한 관심과 흥행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MLS는 내년 안방에서 치르는 월드컵이 리그 성장에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리고 있지만 오히려 MLS의 수준 차만 두드러지게 만들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따끔하다. 월드컵에서 세계적 수준의 경기를 관전한 미국의 스포츠팬들이 MLS 경기장에서 맛볼 실망감을 상상해보면 MLS 관계자들이 끔찍해할 만하다.
미국에서 MLS라는 프로축구리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축구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돈, 다시 말해 투자의 문제라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내년 여름 월드컵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단순히 관중과 TV 시청률 증가에서만 그칠 게 아니라 투자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선수들에 대한 추가 투자도 포함된다.
최근 해리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2%가 축구에 관심을 나타냈으며, 이는 2020년 대비 17%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25%는 자신이 '열성' 팬이라고 답했으며, 5명 중 1명은 '축구에 집착한다'고 했다. MLS의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조사결과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출신의 손흥민과 독일 분데스리가에 뛴 토마스 뮐러는 지난 8월 나란히 MLS의 시즌 도중 영입되면서 폭발적 관심을 끌고 열풍을 일으키게 된 것도 캘린더 전환의 자신감을 갖게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27시즌부터는 MLS의 선수 영입이 정규시즌 이전에 이뤄질 전망이다. 캘린더 전환은 이 모든 것을 바탕삼아 구체화된 결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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