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창 밖으로 보이는 한국 축구의 하늘에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한국이 9경기 만에 월드컵 11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6일 새벽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35년 만의 이라크 원정에서 극한 환경을 극복하고 2-0 승리를 거둠으로써 5승 4무 승점 19의 B조 1위로 마침내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 소식은 14억 인구의 중국이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과 대비되며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이 경사가 특별한 이유는, 이틀 전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겹쳤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가 경제난과 사회적 갈등의 불안을 겪는 시점에서 한국 축구의 쾌거는 한 줄기 희망이자 위로였다. 축구는 그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국민 감정과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사회적 거울’이자 ‘국가 이미지의 결정적 무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전 세계 6개국만이 달성한 성과이자 아시아 최초의 쾌거"라면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한 번도 빠짐 없이 본선 무대를 밟게 된 우리 대표선수들이 참으로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또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순수한 열정과 땀방울에는 언제나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이 있다"면서 "어려운 시기, 축구대표팀이 이룬 쾌거가 우리 국민께 큰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메시지를 전하며 국민과 함께 했다. 이 메시지에는 게시 11시간 만에 548개의 댓글이 달리며 국민의 기쁨과 함께한 대통령과 감정을 공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 최초로 프로축구 시민구단의 구단주 출신이다. 성남 FC를 운영하며 축구를 단순한 구단 운영이 아닌, 지역사회 통합과 문화 콘텐츠 육성의 도구로 접근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경험이 아니라, 축구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몸소 체득한 정치 지도자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도 일반 시민구단의 구단주들과 달리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히 뛰어나 축구 발전의 아이디어도 참 많았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는 축구가 어떻게 국민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지를 체험했다. 붉은 물결 속에서 지역, 이념, 세대를 초월한 감동과 일체감이 연출됐다. 이는 지금처럼 정치적, 지역적 갈등이 첨예한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경험이다. 축구는 연고를 기반으로 하기에 지역 균형 발전과 직결되고, 동시에 대표팀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연결해 '국민적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고사성어로 말하자면, 지금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시대다. 사회 양극화와 세대 갈등은 한국 사회의 ‘만성 질환’이다. 이를 정치만으로 치료하기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축구라는 ‘공통 감정의 통로’를 활용한다면,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대 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국민 통합’의 과제에 축구는 실질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닮고 싶다고 공언한 故 김대중 대통령은 축구를 통해 국민들과 애환을 함께하며 통합을 위해 노력한 대통령이다. A매치 경기가 있을 때면 청와대에서 '붉은 악마' 셔츠를 입고 응원을 했을 정도다. 1997년 9월에는 그 유명한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는 '도쿄대첩'(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 2-1 승리) 당시 현장에서 한국 응원단과 함께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경기에서 질 경우 쏟아질 비난을 우려해 주위에서 반대했지만 원정 응원을 감행해 결국 축구와 정치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네 경기를 모두 현장에 직관하며 대통령의 상징성과 축구의 파급력을 연결한 바 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포르투갈전 승리로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라커룸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했고, 당시 대표팀 주장이던 홍명보가 16강을 이끈 선수들의 병역 특례를 건의해 성사된 일화는 유명하다. 김 대통령은 "스포츠는 국민 통합의 언어이며, 외교보다 강한 이미지 구축의 수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다.
공교롭게도 당시 주장을 맡았던 홍명보가 이제 대표팅의 사령탑이 돼서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요르단이 역사상 첫 본선 진출에 성공한 반면, 중국은 FIFA의 본선 출전국 확대에도 불구하고 3차예선에서 탈락했다. 이 대비는 한국 축구의 시스템적 우위와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의 성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축구계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정치가 제도적 기반과 예산, 그리고 문화적 접근을 뒷받침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국민의 감정을 움직이는 지도자가 강한 지도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감정적 연결은 정치적 동의보다 강력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축구를 단지 이벤트성 활용이 아닌, 정책의 일부로 접근한다면 새로운 국민 통합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이제는 '이기는 축구'뿐 아니라, '함께하는 축구'가 필요하다. 스포츠 복지 확대, 지역 연고 구단 활성화, 재정난을 겪고 있는 시·도민구단 안정화, 생활체육 기반 강화 등은 정치의 손길이 필요한 영역이다. 축구는 그 자체로도 힘이 있지만, 정치의 지원을 받을 때 비로소 날개를 달 수 있으며 진정한 국민적 감동으로 완성된다. 공은 둥글지만, 방향은 정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축구와 함께 국민 통합의 ‘황금 패스’를 날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