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골라인] 이승우는 PK를 '실축'하지 않았다!(영상)
  • 심재희 기자
  • 입력: 2015.10.29 10:55 / 수정: 2015.10.29 13:32
잘 싸웠다, 이승우! 이승우가 벨기에와 2015 칠레 17세 이하 월드컵 16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달 4일 수원컵 크로아티아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하고 포효하는 이승우. /최용민 기자
잘 싸웠다, 이승우! 이승우가 벨기에와 2015 칠레 17세 이하 월드컵 16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달 4일 수원컵 크로아티아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하고 포효하는 이승우. /최용민 기자

'PK 실패' 이승우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더팩트 | 심재희 기자] 지난 3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뉴질랜드의 A매치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놓쳐 '이슈'가 됐다. 전반 38분 대표팀에서 가장 킥이 좋은 손흥민이 자신이 존경하는 차두리의 은퇴 경기에서 멋진 축포를 터뜨릴 기회를 잡았으나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곧바로 기사가 쏟아졌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후반 40분 결승골을 기록한 이재성만큼 손흥민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자극적인 내용까지 담긴 기사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더 아쉬운 것은 바로 '손흥민 페널티킥 실축'이라는 표현이 주를 이뤘다는 점이다.

당시 경기가 끝나고 '손흥민은 페널티킥을 실축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손흥민은 페널티킥을 잘 찼다. 오른발로 강력하게 왼쪽으로 슈팅을 날렸지만 상대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에 막혔다. '실축'이라는 표현은 '잘못 찼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사전적으로 풀어 봐도, 실축(失蹴)은 '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차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그랬다. 손흥민은 페널티킥을 '실축'한 것이 아니라 '실패'한 것이라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게 아니다. '실축'과 '실패'는 의미하는 바의 차이가 크다. 실축은 골대를 맞거나 골문 밖으로 완전히 잘못 찼을 경우에 쓸 수 있는 말이다. 실패는 실축을 비롯해 골키퍼 선방이나 수싸움에서 뒤졌을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아쉬운 PK 실패! 이승우의 페널티킥이 벨기에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SBS 방송화면 캡처
아쉬운 'PK 실패!' 이승우의 페널티킥이 벨기에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SBS 방송화면 캡처

29일(한국 시각) 칠레 라 세레나에서 열린 한국과 벨기에의 2015 칠레 17세 이하 월드컵 16강전. 한국이 0-2로 뒤지던 후반 26분 페널티킥 기회를 잡았다. 오세훈이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상황에서 상대 수비수의 반칙에 넘어지며 퇴장을 이끌어내면서 페널티킥 찬스까지 얻어냈다. 만약 한국이 페널티킥을 성공하면 한 골 차로 따라붙을 수 있었고, 이후 수적인 우세를 바탕으로 동점과 역전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페널티킥을 담당한 선수는 다름아닌 '전담 키커' 이승우였다. 모두 이승우를 믿었고, 이승우도 특유의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막혔다. 이승우 특유의 멈추는 동작을 벨기에 골키퍼가 간파하면서 몸을 던지지 않았고, 결국 이승우는 어정쩡한 슈팅으로 골문을 가르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에서 호아킨 산체스의 슈팅이 이운재에게 막혔던 장면과 비슷했다.

이승우가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한 이후부터 '손흥민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기사들이 쏟아졌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대부분의 기사 제목에는 이승우가 등장했다. 그런데 또 '실축'이라는 표현이 함께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페널티킥을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지만, '실축'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잘못 찼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페널티킥 실축? 이승우가 페널티킥을 놓치고 난 뒤 실축이라는 표현이 담긴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네이버 캡처
'페널티킥 실축?' 이승우가 페널티킥을 놓치고 난 뒤 '실축'이라는 표현이 담긴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네이버 캡처

이승우가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한 이후 한국은 추격 의지를 많이 잃은 것이 사실이다.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1골 차와 2골 차는 분명 다르다. 경기의 흐름에서 중요한 찬스를 놓쳤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이승우가 페널티킥을 '실축'했다고 단정지어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이승우가 골키퍼를 속이는 동작을 취한 것도 자신의 선택이지 '실축'은 아니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페널티킥을 시도했으나, 수싸움에서 이긴 상대 골키퍼가 잘 막아냈다고 봐야 옳다.

물론 결과론적이지만, 아쉬운 부분은 이승우의 '페널티킥 습관 노출'을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느냐는 점이다. 17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연장전이 없어 우리나라도 벨기에도 승부차기 예습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골키퍼들은 상대 키커가 차는 방향이나 습관 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경기 전 '전담 키커' 이승우의 페널티킥 대해 벨기에가 현미경을 들이댄 상황이었는데, 이승우는 자신의 스타일을 그대로 밀고 나가다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지난 9월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에서도 이승우는 지금과 비슷한 패턴으로 페널티킥을 성공한 바 있다.

오늘보다 밝은 내일. 이승우는 이번 대회에서 단 하나의 공격포인트도 올리지 못했지만, 한국 공격을 이끌며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달 2일 열린 수원컵 나이지리아와 경기에서 멋진 오버헤드킥을 시도하고 있는 이승우. /최용민 기자
오늘보다 밝은 내일. 이승우는 이번 대회에서 단 하나의 공격포인트도 올리지 못했지만, 한국 공격을 이끌며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달 2일 열린 수원컵 나이지리아와 경기에서 멋진 오버헤드킥을 시도하고 있는 이승우. /최용민 기자

최진철호가 이번 대회에서 안겨준 감동은 꽤 컸다. 비록 더 높은 곳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지긋지긋 했던 '경우의 수' 공포를 털어내준 것만해도 고맙다. 이승우의 '원맨 팀'이 아닌 '팀 코리아'로서 경쟁력을 더했다는 것도 의미가 깊다. 지구 반대편 칠레까지 날아간 '리틀 태극전사'들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밝을 것이라는 기대를 확실히 품을 수 있는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승우에게 한마디. "페널티킥 마크 앞에 선 선수는 적어도 페널티킥을 차는 두려움을 뛰어넘은 선수다!"

kkamano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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