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가짜 9번', 진짜 9번이 가짜
  • 김성범 기자
  • 입력: 2012.06.11 16:17 / 수정: 2012.06.11 16:17

'False nine'(팔스 나인), 직역하면 가짜 9번이다. 굉장히 어설픈 해석이다. 좀 더 다듬어보자. 축구에서 등번호 9번은 전통적으로 정통 센터포워드를 의미한다. 여전히 조금 어색하지만, ‘가짜 공격수’ 정도면 원래 뜻과 비슷한 해석인 듯 싶다.

팔스 나인이란 원톱 자리에 서는 공격수가 실질적으로는 타킷맨이 아닌 미드필더에 가까운 움직임을 가져가는 전술을 가리키는 용어다. '제로(0)톱'이란 대체 용어나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가 뛰는 모습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겠다.

11일(한국 시각) 열린 유로 2012 C조 예선 1차전, 스페인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들고 나온 전술이 바로 팔스 나인이었다. 최전방 원톱 자리에 공격형 미드필더인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투입했다. 정통 스트라이커를 포기하는 대신, 패스 플레이에 능한 다수의 미드필더를 통해 빠르고 세밀한 패스 플레이를 꾀했다.

팔스 나인은 제대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날 경우 정통 스트라이커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스리백과 함께 수비적으로 나설 이탈리아를 상대로 일면 수긍이 가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가짜 9번’은 파브레가스 말고 또 있었다. 물론 의미는 조금 다르다. 파브레가스와 교체 투입된 등번호 9번의 ‘진짜 9번’, 페르난도 토레스였다.

물론 토레스의 전반적 플레이는 괜찮았다. 사실 공격 전개 과정만 놓고 보면 팔스 나인 상태보다 토레스가 투입된 뒤의 4-5-1이 더 효율적이었다. 파브레가스는 메시가 아니었고, 스페인의 공격력은 기대에 못미쳤다. 반면 토레스는 교체 투입과 동시에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특히 끊임없는 스페인의 패스 플레이에 지칠 대로 지친 이탈리아 수비진은 토레스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첼시에서도 토레스는 적어도 골 직전까지의 플레이만큼은 기막혔다. 문제는 골을 못 넣는다는 점이었고, 이는 이날 경기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후반 29분, 토레스는 교체투입과 동시에 번뜩였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고 골키퍼 1 대 1 기회를 잡았다. 4년 전 독일과의 유로 2008 결승전에서 넣은 결승골 장면과 데칼코마니 격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골키퍼가 허망하게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반 박자 빠른 감각적 슈팅이 없었다. 그 대신 머뭇거리던 사이 달려든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에게 손도 아닌 발로 공을 빼앗겨 버렸다.

10분 뒤에는 좀 더 결정적 기회를 잡았다. 사비의 침투 패스를 받아 순간적으로 골키퍼와 맞서는 상황을 맞았다. 당황한 부폰 골키퍼도 각도를 줄이기 위해 뛰쳐나왔고, 이에 토레스는 그의 키를 넘기는 칩샷을 날렸다. 그러나 공은 부폰을 넘어 골포스트까지 넘어가고 말았다.

한 경기에 한 번 찾아오기도 힘든 기회가 두 차례나 찾아왔으나 모두 득점에 실패한 셈이었다. 공격에 방점을 찍어줄 확실한 공격수는 스페인의 압도적 점유율 축구가 완성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다비드 비야의 부상이 스페인에게 치명적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 대체자가 될 토레스가 결정적 기회를 모두 날렸으니, 무승부는 차라리 다행인 결과였다.

언어적 유희를 더하자면, 이날 진짜 팔스 나인은 파브레가스가 아닌 토레스였을지도 모른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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