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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서 181구 15회 완투를 선보였던 전 삼성 투수 박충식. / 문병희 기자 |
[유성현 기자] 2011시즌 한국 프로야구는 삼성의 통산 5번째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철벽 마무리 오승환은 '3세이브 평균자책점 0' 완벽투로 최우수 선수의 영예를 누렸다. 접전 끝에 경기 막판 2이닝을 막아내며 팀 승리를 지킨 그의 활약은 한국시리즈 마운드의 막중한 부담감을 이겨냈기에 더욱 각별했다.
하지만 지난 1993년, 한 신인 투수가 수많은 관심이 집중된 한국시리즈 마운드에서 연장 15회 완투를 펼친 것에 비하면 그 정도가 덜하다. 게다가 당시 상대는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히는 선동열이었다. 그는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투혼의 181구를 던진 '고독한 승부사' 박충식(4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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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사업에 매진했던 박충식은 최근 양준혁야구재단의 유소년 야구단 창단을 돕기 위해 8년 만에 야구계로 복귀했다. |
◆ V5 이룬 삼성 투수진 "역대 최강이라 해도 손색없어"
은퇴 뒤 호주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박충식은 최근 다문화 유소년 야구단 창단을 준비 중인 양준혁 야구재단의 감독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은퇴 8년 만에 야구계로 복귀한 그는 한국에서 느낀 뜨거운 야구 열기에 놀라면서 자신이 활약했던 한국시리즈 마운드를 돌아보며 추억에 젖었다.
"아직도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죠. 야구인으로서 그 분들께 어떻게 보답해드릴까 고민이에요. 요즘 한국야구 열기가 대단하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한때 야구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자부심도 느끼고요. 이제는 야구계를 위해 제가 무슨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야죠."
호주에 있을 때도 한국 프로야구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는 그는 '친정팀'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특히 삼성의 철벽 마운드를 이끈 후배 투수들의 기량에 대해서는 칭찬을 거듭했다. 자신의 데뷔 시즌이자 사상 첫 4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했던 1993년 당시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제 현역 시절보다 더 나은 것 같아요. 투수들의 스타일이 다양해서 빈틈이 없어요. 완벽에 가깝도록 훈련이나 준비가 잘 된 느낌이 들고요. 선발-중간-마무리 로테이션 자체도 훌륭하죠. 투수 운용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지 않았던 우리 때보다 훨씬 더 강해보여요. 현재 삼성 투수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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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무려 18년이 지났지만, 박충식은 1993년 한국시리즈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었다. 그가 남긴 181구 기록은 여전히 한국시리즈 최다 투구 기록으로 남아 있다. |
◆ 선동열과 맞대결 명승부 "그저 내 공에 집중했을 뿐"
1993년 가을, 삼성과 해태가 맞붙은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신인 투수' 박충식이 자신의 이름을 야구팬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데뷔 첫 해 14승을 따내며 프로야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는 한국시리즈 선발로 나서 막강 전력 해태를 상대로 '겁 없는 피칭'을 보였다. 경기가 끝나는 연장 15회까지 마운드에서 홀로 버텼고, 이날 던진 공만 무려 181개나 됐다.
"그때 삼성 분위기는 '우승을 향해 그라운드에서 죽자'는 마음이었죠. 저 또한 온 힘을 다했던 거고요. 몸도 건강했고 컨디션도 아주 좋았어요. 물론 회를 거듭하면서 코칭스태프는 제게 "괜찮냐", "바꿔줄까"라며 걱정을 했죠. 만약 그때 누가 내려오라 했으면 굉장히 괴로웠을 거예요."
투혼의 181구를 던지며 삼성 마운드를 홀로 책임지는 동안, 해태는 문희수-선동열-송유석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투수들을 연달아 투입했다. 하지만 그는 상대의 막강 투수진에 전혀 흔들림 없는 피칭을 이어갔다. 정규이닝 9회를 넘겨 연장에 들어섰지만 구위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연장 15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2-2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4시간 30분간의 대혈전이었다.
"선동열 선배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는 관중들의 반응이 뜨거웠죠. 하지만 저는 상대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만 생각했어요. 공 하나하나에 자신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던졌죠. 회가 거듭돼 연장에 접어들었어도 힘들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어요. 무의식적으로 계속 마운드에 올랐던 거죠. 단지 묵묵히 제 공만 던지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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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충식은 투혼의 181구 15회 완투 상황을 선수로서 쉽사리 접할 수 없었던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
◆ "끝장 승부였다면? 200구, 300구든 끝까지 던졌죠"
해태를 맞아 시리즈 전적 1승1패로 팽팽하게 맞서던 삼성은 박충식의 3차전 역투에 4차전을 따내며 우승에 한 발 다가섰다. 하지만 해태의 뒷심은 강했다. 5,6차전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3승2패로 역전을 일궜다. 다급해진 삼성은 181구를 던지고 4일 밖에 쉬지 못한 박충식을 7차전 선발로 내세웠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박충식은 5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해태 우승을 더그아웃에서 지켜봐야했다.
"연장 끝에 무승부로 끝나고 집에서 자고 일어나니 이기지 못했던 아쉬움이 뒤늦게 몰려왔어요. 다음 경기를 관전하면서 '만약 어제 이겼더라면 우승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죠. 7차전에서도 선발로 나섰지만 그날따라 경기가 안 풀리더라고요. 무리한 투구로 몸이 안 좋았던 것 보다 해태 선수들이 잘 쳤던 것 같아요."
3차전 혈투가 승리로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은 18년이 지난 지금도 박충식에게 남아있다. 만일 그 경기가 15회 무승부로 종료되는 게 아닌 끝장 승부였다면 그의 피칭은 언제까지 계속됐을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마운드 위에서 쓰러지더라도 승부를 보고자 했던 신인 시절 패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끝장 승부였다면요? 16회, 17회든 200구나 300구든, 끝까지 던졌겠죠. 당시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수를 더 줄지언정 무조건 제가 끝을 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코칭스태프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라고 해도 제가 계속 던지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거예요.(웃음)" <①편 끝>…②편(10일)은 은퇴 후 사업가 시절, 향후 목표 등이 이어집니다.
<글 = 유성현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yshalex@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