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기자] KBS 스포츠가 배출한 '걸출한 신상'으로 엄지인(28) 아나운서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엄 아나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대학 시절 식품영양학을 전공했고 2007년 입사 후 KBS 사상 처음으로 여자 아나운서가 스포츠 뉴스 메인 진행을 맡더니, '우리말 겨루기', '엄지인의 시사콜콜'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고 있다. 특유의 싱그러운 미소와 당찬 이미지는 KBS 스포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스포츠 뉴스와 함께한 2년 6개월의 시간은 어느덧 엄 아나운서와 스포츠의 인연을 더욱 돈독히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엄 아나운서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스포츠에 대한 야망이 있다. 지금까지 걸어 온 이채로운 삶의 궤적처럼 쟁쟁한 스포츠계 남자 아나운서들 틈에서도 당찬 꿈이 있었다. 본인은 정작, 아직까지 스포츠하면 '팬心'이 먼저 우러나오는 풋내기라 표현하지만 막상 당도한 그곳에서는 신명 나는 스포츠 커뮤니케이터로 즐거운 행보를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의 아름다운 질주에 눈을 뗄 수 없는 진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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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지인(28) KBS 아나운서 / 사진 - 노시훈 기자 |
7일 오후 KBS 본관에서 엄 아나운서를 만났다. 4일 막을 내린 제13회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는 스포츠계가 자신을 주목한다는 데 대해 기대와 긴장이 교차하는 눈치였다.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도, 사진 촬영을 위해 옮긴 여의도 공원에서도, 머쓱한 미소를 보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묻는 질문에 가감 없는 답변으로 속내를 들려 주었다. 3년째 스포츠 뉴스 진행자로 활약하며 뚜렷한 목표 의식과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는 엄 아나운서. 글쓴이는 여자 아나운서의 전성시대를 주제로 말문을 열었다.
- 스포츠계 여자 아나운서들의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스포츠하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자들이 꺼려했던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지상파, 케이블에서 여자 아나운서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스포츠에 편안한 분위기가 더해진 것 같아요. 자연스레 각종 경기장에서 여자들의 출현이 많아졌죠. '스포츠 대중화'에 도움이 됐다고 봐요. 반면 여자 아나운서들의 수요가 많아지니까, 희소가치가 떨어진 면도 있어요. 혹자는 '잘 모르면서 무작정 뛰어 든다'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하죠. 저도 스포츠와 만난 지 어느덧 3년째가 됐지만 선배 대접을 받는 것이 어색하기도 해요.
- 2007년 입사 후 스포츠 뉴스에 바로 투입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전까지 KBS에서 여자 아나운서가 평일에 스포츠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한 일이 없었어요. 주말에만 하는 경우는 있었죠.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려고 하셨는데,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제가 운 좋게 발탁 됐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주말에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평일에 진행할 것을 말하시더라고요. (어떤 점을 높이 보셨나요?) 씩씩함?(웃음) 솔직히 제가 보기에도 기존의 여자 아나운서와 이미지가 다른 것 같아요. 보통 보호 본능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저는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오히려, 그런 점에서 예쁘게 봐 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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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 아나운서는 입사하자마자 스포츠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
-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였나요?
평소에도 스포츠는 좋아했어요. 대학 시절 미국에 연수 갔을 때도 프로미식축구(NFL)도 보러 가는 등 보통 여자들과 보는 각도가 달랐어요. 단, 스포츠 뉴스 진행을 맡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죠. 보통 수준의 여자들이 재미있게 보는 정도에서 머무를 수 없잖아요? 전문성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매일 뉴스를 준비하고 진행을 하면서 보는 눈이 높아졌죠. (처음에 힘들었을 텐데요) 처음에 뉴스를 진행할 때 공교롭게도 프로야구가 개막할 무렵이었어요. 그런데 야구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경기가 있잖아요? 팀, 선수, 각종 기록 등 챙겨야 할 것이 정말 많더라고요. 따라가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어요. 한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 기억에 남는 실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2007년 스포츠 뉴스를 맡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에요. 저희가 방송 3사 중에 스포츠 뉴스 시간이 가장 길어요. 12~13분 정도 나가거든요. 그러다 보니 뒷부분에서 단신 종합으로 나가는 뉴스 분량도 많아요. 어느 날 단신 종합에서 기자회견 내용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화면에 나가는 그림이나 내용이 모두 비슷했어요. 제가 착각을 해서 그림과 다르게 내용을 바꿔서 말을 했어요. 방송 끝날 때까지 몰랐죠.(웃음) 그런데 취재 기자께서 방송을 보시니까, 알려주셨죠. 사실, 그때 경고 받았답니다.
- '우리말 겨루기', '엄지인의 시사콜콜'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고 있는데.
그런 만큼 공부도 많이 해요. 그런데 시사 프로그램을 하게 된 계기는 사실 스포츠 뉴스의 영향이 컸어요. 9시 뉴스를 마치고 스포츠 뉴스가 이어지잖아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뉴스를 매일 챙겨보고요. 그러다 보니 일일 단위로 시사에 대한 눈을 뜨게 되더라고요. 매일 저녁 라디오 뉴스도 진행하기에 관심이 더해졌고요. 우리말 겨루기는 당연히 아나운서니까 우리말을 잘 해야지요.(웃음) 그래도 시험 공부하듯 열심히 준비해요.
- 본인은 어느 프로그램에 성향이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어디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아요. 단,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들었을 때 저는 예능 프로그램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이상하게 거부감이 많으시더라고요. 제가 시사 프로그램이나 우리말 겨루기, 역사 스페셜 같은 무거운 분위기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기존 아나운서들과 다르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받아들이기에 부담되나 봐요.(웃음) 저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 재미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하세요.(웃음) 그래서 이제 제 길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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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 아나운서는스포츠 뉴스 진행자로는 이례적으로 교양, 시사 프로그램을 넘나들고 있다 |
- 실제로 운동은 얼마나 잘하나요? 즐겨하는 종목이 무엇이고요?
운동은 즐겨하는 편이에요.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고요.(웃음)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 아주 잠깐 육상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요. 당시 학교에서 달리기 중, 상위권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모집했을 때 선발됐죠. 물론 오래하지는 않았어요. 단, 운동에 재능이 없지는 않았죠. 지금은 매일 헬스를 꾸준히 해요. 골프, 배드민턴도 가끔 치고요. 어린 시절 달리기했던 경험을 살려서 가끔 10km 달리기 대회에도 출전하죠. (남자들도 10Km 뛰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렇죠. 그런데 저는 완주했어요.(웃음) 물론 이후 무릎에 무리가 와서 지금은 쉬고 있지만요.
- 네티즌들은 의외로 운동 신경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
아, 제가 출발! 드림팀에 2번 출연을 했어요. 처음 나갔을 때 공을 던지는 미션이 있었는데 제가 잘 못했거든요.(웃음) 손에 힘이 없어요. 그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두 번째 나갔을 때는 뛰는 미션이 많아서 제가 출연자 중 2위를 했어요. (당시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승부욕이 있죠. 처음 나갔을 때 잘 못해서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였다니까요.(웃음) 주변에서는 ‘열정적이었다’는 말씀을 안 해주시던데…. 아무튼 공 던지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캐치볼을 할 수 있는 친구를 찾습니다.
- 의외로 대학 시절 전공이 식품영양학이에요.
예, 처음에는 다들 놀라세요. 사실 식품영양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웰빙 열풍이 불면서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죠. 식품이 따지고 보면 스포츠와 연동된 내용이 많아요. 그런데 식품영양학을 잘 모르시는 분들께서는 ‘요리 잘하겠네?’라며 물어보시죠.(웃음) 식품영양학은 그저 학문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나운서가 되셨네요?) 어릴 때 뉴스에 나오는 아나운서를 동경했어요. 남보다 인상 깊게 본 것 같아요. 대학에 입학해서 교지를 만들었는데, 당시 KBS 등 방송국을 찾아 아나운서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런데 당시 인터뷰 했었 분들이 지금은 선배님이 되셨죠.(웃음)
- 엄 아나운서가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를 꼽자면.
음, 민감한 질문이네요.(웃음) 물론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는 있지만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특정인을 거론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혹시 라이벌 팀이나 선수를 좋아하는 팬들이 섭섭해 하지 않으실까.(웃음) 해외에서는 리오넬 메시? 좋아하기 보다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때, 스포츠 뉴스 진행을 안 하고 그 시간에 시청광장에 나가 리포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의 조별리그 2차전(1-4 패)이 열렸죠. 사실 그 전에 메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그저 작은 선수지만 천재성이 있다는 것 뿐이었죠. 그런데 경기를 보니 얄밉게 잘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지켜봤는데, 정말 '축구의 신'인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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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훗날 스포츠 중계 등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엄 아나운서 |
- 지난해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때 박은영 아나운서와 경기장을 찾았는데.
그 당시 가수 비(정지훈)도 경기장에 왔거든요? (박)은영 언니와 제가 했던 이야기가 ‘우리는 비를 이긴 여자’라고.(웃음) 왜냐하면 그 다음날 포털사이트 검색어에서 저랑 은영 언니가 1, 2위에 있는데, 비는 아래에 있더라고요.(웃음) 월드스타를 이겼다고 농담했죠. 그 전까지 경기장에 정말 가고 싶은데, 스포츠 뉴스 시간대와 항상 프로야구, 프로축구가 겹쳐서 가지 못했어요. 정말 무리해서 간 거였죠. 5회 말까지만 보고 다시 방송국에 갔어요. 뉴스를 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을 말하자면 경기를 마음껏 볼 수 없다는 것이죠.
- 스포츠 뉴스를 오랜 기간 하고 있는데, 정통 뉴스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물론 관심은 있어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스포츠 뉴스가 재미있으니까요. 사실 KBS 창원지국에 있을 때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스포츠 뉴스를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죠. 그저 덜컥 찾아왔어요.(웃음) 물론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스포츠 중계 방송이나, 전문 프로그램도 진행해 보고 싶어요. 평소에도 고민이 많아요. 언제까지 저를 스포츠 뉴스에 기용해 주실까, 언제까지 시청자들이 좋게 봐 주실까. 그렇지만 앞으로 시청자들이 저를 더욱 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지켜봐 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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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 아나운서의 유쾌한 행보를 기대한다 |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노시훈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