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갑오년 청마의 해가 밝았다.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활기차게 시작한 올해에도 스포츠가 만드는 '감동과 환희의 드라마'는 계속된다. 2월 소치 올림픽을 시작으로, 6월 브라질 월드컵, 9월 인천아시아게임 등 굵직굵직한 대회가 많은 팬의 마음을 일찌감치 설레게 하고 있고, 음지에서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유망주'와 '베테랑' 선수들도 새해를 맞는 포부와 각오가 대단하다. 2013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SS송년인터뷰'로 마무리한 <더팩트> 은 청마처럼 힘차게 달릴 2014년 '새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신년인터뷰 코너에서 차례로 만난다. <편집자 주>
[김광연 기자] 남성 위주였던 야구, 축구, 농구 주요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은 이제 옛말이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 수가 늘어나며 방송 환경이 많이 변했다. 다소 '딱딱했던' 진행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성이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다만 여성 아나운서가 많아지며 지나치게 경쟁이 과열돼 진행 능력보다 몸매, 외모에 초점이 맞춰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전문성보다는 잇따른 방송 진출로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를 향한 눈초리가 좋지 못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치열하고 급변하는 방송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란 목소리도 있다. 시간이 지나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온 힘을 기울이는 노력은 여전하다.
윤태진(27) KBS N 스포츠 아나운서도 '야구 여신' 소리를 듣고 있는 주인공이다. '여신'이란 타이틀은 팬의 애정이 어린 표현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또 다른 능력보다 외모와 몸매에 주목받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는 솔직한 마음을 보였다. <더팩트>은 어느덧 2011년 입사 이후 4년차를 맞이한 윤 아나운서를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KBS 미디어센터에서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 "'야구 여신'은 팬의 애정이 담긴 말"
- 지난해를 보낸 소감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아무래도 지난해 현장도 많이 다니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좀 많이 힘들었다. (웃음) 근데 좋은 게 오려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 벌써 4년차다. 후배도 늘고 마음가짐이 남다를 텐데.
먼저 후배가 한 기수가 있는 거랑 두 기수가 있는 게 진짜 다르더라. 책임감도 더 생기고. 회사 들어온 지 6개월 되고 후배를 받을 때는 내가 후배를 받을 위치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후배인지 동기인지도 잘 모르겠고. (웃음). 여자 아나운서 가운데 최고참이 됐다. 이제 기댈 수 있는 여자 선배가 없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4년차라고 딱히 달라진 건 없고 책임감이 커졌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은 위치에 섰다는 걸 느낀다. 개인적으로 너무 빨리 온 거 같다. (웃음)
- 요즘 일과는? 쉬는 날엔 주로 뭘 하나.
요즘엔 남녀 프로농구 인터뷰로 바쁘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쉰다. 일주일에 많으면 4~5번 정도 경기장에 투입된다. 쉬는 날이 있어도 다음 날에 경기가 있으니 쉬는 거 같지 않다. 미리 전날 준비를 해야 돼 '재택근무'하는 느낌이다. (웃음) 쉴 땐 뮤지컬이나 연극, 사진전을 보러 다닌다. 평소 4~5시간 자기 때문에 휴일에 피로를 풀려고 허리 아플정도로 12시간 푹 잔다. (웃음)
- 주위에서 '야구 여신'으로 부르는데, 정작 본인은 낯설어한다.
제가 여신이란 말에 정말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팬이 지어주는 '여신'은 몸매, 미모 보고 말할 때도 있지만,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를 진정으로 아낄 때 나오는 애칭이라고 생각한다. '애정'이라고 봐야겠다. '정말 열심히 하네'라고 인정할 때 여신이라는 타이틀이 생긴다고 느낀다. 말 그대로 우리 식구라고 받아 들일 때 말이다.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 '여신' 호칭을 달긴 멀었다. 최근엔 여자 아나운서가 많아 '여신 신전이 미어터진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웃음) 예전에 '유재석이 국민 MC는 맞다. 하지만 네가 국민 MC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는 말을 들은 게 기억난다. 뛰어나신 선배가 많지만, 몸매나 얼굴보다 스포츠 아나운서 자체로 한 번쯤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 성격 자체도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말괄량이다. 여신보단 차라리 '요정'이라고 해주셨으면…. (웃음) 이런 헛소리를 농담처럼 하고 다닌다. (웃음)
- '동기' 정인영 아나운서(29)와 비교가 많이 된다. 누가 '여신'에 가까울까.
(정)인영 언니도 자신을 여신으로 생각할지. (웃음) 저희 둘 다 '오글오글' 거린다. 만나면 서로 "어떡하느냐"고 한다. (웃음) 감사하지만 어떤 점에서 여신이라고 해야할 지 난감하다. 둘 다 여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저희가 무슨 어휴. 부끄러워서…. 언니는 여신이란 말에 재미로 "난 장신"이라고 한다. (웃음)

◆ 팬 의견 대변 위해 "스스로 팬이 되려 한다"
- 이제 좀 '늘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겠다.
화기애애하게 인터뷰를 이끌어나갈 때 느낀다. 예전 신입 땐 고개는 끄덕이고 있지만 '다음 질문에 실수하면 어떡하나', '버벅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았다. 지금은 인터뷰하면서 재미있는 얘기도 생각나고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늘었다.
- 아나운서는 팬의 대변하는 자리다. 팬의 견해를 채우기 위해 어떤 점을 노력하나?
제가 '팬'이 되려고 한다. 물론 어느 한쪽을 옹호하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이 풍성해진다. 진심이 담기는 거 같다. 팬의 생각을 알기 위해 커뮤니티 등에 다 들어가서 확인할 순 없다. 우선 제가 팬이 되는 게 필요하다.
- 어떻게 보면 반복된 일상이다. 어떤 점에서 보람을 찾나.
야구 시즌엔 인터뷰한 선수가 끝나고 실시간 검색어 올라갈 때가 있다. 물론 선수가 잘해서 올라갔겠지만 보람을 느낀다. 제가 하나를 물어봤을 때 둘을 대답해줄 때도 마찬가지다. 흔히 인터뷰 그림이 그려진다고 한다. 속으로 '오늘 이야기를 원활하게 잘 풀어간 거 같다'고 느끼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 그간 인터뷰를 많이 했다. 특별히 편안하거나 어려운 선수가 있다면.
이호준(38·NC 다이노스), 장성호(37·롯데 자이언츠) 선수가 정말 편안하게 잘해준다. 김현수(26·두산 베어스) 선수도 평소에 밝게 얘기한다. 마이크를 대면 달라져 당황스럽다. (웃음) 편한 선수들이랑 하면 '말린다'고 해야 하나. 질문이 '산'으로 가기도 한다. (웃음)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가 좀 힘들다. 통역을 거치다 보니 완벽한 의미 전달이 안 될 수 있어 그런 점에서 애로사항이 많다. 단답형으로 답하는 일부 신인도 당황스러운 적이 많았다.
- 스포츠가 인기가 많다 보니 뜻하지 않게 유언비어나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한다.
제가 담배를 피운다는 루머도 있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다. 근데 정말 그럴싸하다. 저도 가끔 "나 정말 저런 적 있었어?"라고 친구에게 물어볼 정도다. (웃음) 댓글을 달 수도 없고. 한번은 '이 사이트에 가입해서 해명 댓글을 달아야 하나' 고민도 한 적도 있다. (웃음) '담배 루머'는 약과다. 저희 어머니까지 거론하면서 '엄마랑 친한데', '엄마의 친군데' 그런 말을 들으면 답답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냥 웃어 넘긴다. 그렇다고 제가 조증이 있는 건 아니다. 밝을 때 밝아도 우울할 땐 끝없이 우울한 성격이다.

◆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 '외모 부각'에 "개인의 몫"
- 연차가 늘면서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전문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시기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주위 PD 선배가 "스포츠 아나운서 다 예쁘다. 모두 본인만의 매력이 있다. 특출나기 위해선 일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전문성이라고 하는 게 해를 거듭한다고 바로 갖춰질 수 있는건 아니니까. 끊임없이 노력해도 하루아침에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답답한 면이 있다. 예쁘단 말보다 김민아(31) MBC 스포츠 플러스 아나운서 선배처럼 "외모도 예쁘지만, 진행능력, 전문성도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잘난 척, 아는 척'이 될까 봐 조심스럽다. 그래서 선배에게 많은 조언을 구한다.
- 여전히 여성 아나운서의 외모나 몸매에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이 있다.
모든 스포츠 아나운서의 고민이다. 개인적으로 하는 노력이 있을 텐데 외적인 면에 가려지면 속상할 거다. 하지만 선택은 자신이 하는 거고 본인 몫이다. 방송인이라면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히 가진다. 주위를 보면 여성 아나운서의 외모만 주목하니 '저렇게 해야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지 않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봐 걱정스럽다. 보이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조금 이름을 덜 알리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결국 선택한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팬과 주위에서 외모만 보는 것에 대해 뭐라 말할 처지에 못 된다고 여러 번의 고민 끝에 느꼈다. 물론 열심히 하는데 자극적인 부분만 주목받는 분위기는 아쉽다.
-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수명이 길지 않다.
로테이션이 정말 빠르다. 벌써 3년 만에 후배가 4명이다. 아직 후배 같은 위치지만 선배가 된 느낌이다. 회사가 부담을 주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압박이 오는 거 같다. 설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도 제 미래를 생각해 인터뷰, 진행 외에 중계 업무를 주려고 한다. 꿈과 길을 제시해주는 거다. 저도 할 수 있다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 후배가 많이 지고 부담도 많이 늘었을 텐데.
첫 후배를 받을 때 그랬다. 대하기도 어렵고, 너무 빨리 올라간다는 생각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아까 말한 대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작년엔 '힘들어, 내가 여기 있을 위치가 아닌데'라고 자책했다면 올해는 저를 사랑해주고 싶다. 올 시즌에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보려고 한다. 그간 최근에 퇴사한 최희(28) 선배 뒤에서 숨어있었던 것 같다. 저도 알게 모르게 의지를 많이 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힘들어하지 않고 꼿꼿히 서야할 때다.
- 본인에게 현재 스포츠는 일과 취미 경계선에서 어디쯤 와있나.
100을 놓고 봤을 때 '일 : 60, 취미 : 40'이다. 지난 시즌부터 재미를 찾았다. 처음엔 인터뷰, 방송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깨닫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재미가 있으니 애정이 생긴다. 제가 인터뷰한 선수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물론 쉬지 못 하는 건 힘들다. (웃음) 일이 아니라 취미로 보러 갈 때도 의식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성격상 의식을 하진 않지만 경기장 '굴욕 사진'이 너무 많다. (웃음) (일은 일이다. 스트레스받는 부분도 있을 텐데.) 일로 다가서면 즐겁지도 않고 스트레스가 생긴다. 그래서 경기장 가면 야구 1~2이닝, 농구 1쿼터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본다. 팬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경기장에 오지만 저는 인터뷰 챙기고 대본을 써야 한다. 뭘 해야 한다고 부담을 안 가지려 한다.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경기장에서 이것저것 많이 먹는다. (웃음)
- 스포츠 아나운서만의 매력이 뭘까
아직도 답을 못 내렸다.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 자리는 어렵다. 자만에 빠지기도 쉽고 워낙 소수의 여자 집단이 다수의 팬, 관계자에게 인정받는 구조다. 여성 아나운서가 대폭 늘어났지만 이렇게 넓고 큰 집단에서 '이 아나운서가 이것만큼은 정말 잘해'라고 인정해줄 때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이런 정글 같은 곳에서 살아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말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제가 정말 프로페셔널하다고 남들이 인정할 때가 와야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 "이상형? 나쁜 남자보단 따뜻한 사람"
- 무용을 전공했다. 20년간 한 무용을 그만둘 때 어떤 생각이었나.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야구선수가 야구를 못하게 된 것과 같다. 절망만 하기에는 현실로 다가오니까 정신이 확 깼다. 생계도 달려 있었다. 2010년 제80회 춘향선발대회도 나가게 됐고 당시엔 뭐든 지 할 수 있다면 기회를 잡아야 했다. 방송이 아닌 다른 기회가 왔다면 그걸 했을 수도 있다. 춘향선발대회에서 선에 뽑히고 방송에 몇 번 나가면서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들었다. '아나운서도 괜찮나'고 생각이 들면서 무작정 시작했다. 전 완전 무용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길은 참 많다. 힘들었던 타이밍에 이 일이 제게 와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운좋게 힘든 시간도 짧았다. 이제 꿈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 절박한 마음이 아나운서 도전의 가장 큰 원동력인가. 5개월 만에 아나운서가 됐다.
무용을 할 때 내가 무대에 서는 사람이니까 나중에도 무대에서 서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 연장 선상에서 아나운서가 있었던 거다. 짧은 시간에 아나운서가 돼 정말 기뻤지만, 졸업 전 취업해 겪어야 할 고통이 컸다. 당시 스포츠를 아무것도 몰랐다. 회사가 날 만들고 키운 셈이다. 그때는 마이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좋았지만, 이후 시행착오를 겪었고 받은 욕이 너무 많다. (웃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망나니 같았다는 걸 느낀다. (웃음)
- 사회생활 한마디로 어땠나
여대(이화여대 무용과)를 나와 남자 선배를 겪어보지 못했다. '밥 사달라', '차 사달라'라고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웃음) 남자 선배 대하는 게 어려웠는데 선배들이 워낙 신입 때 잘해줘서 좋았다. 애로사항은 없었다. 무용과도 예체능 계열이어서 위계질서가 있다. 따로 특별히 적응에 어려운 점은 없었다.
- 이상형이 따로 있나. 선수도 괜찮을까.
선수와 사적인 만남을 가지진 않는다. 무섭다. 개인적으로 선수와 선을 그으려고 많이 노력한다. 이상형은 전엔 있었는데 없어졌다. 바라면 눈만 높아진다. (웃음) 개인적으로 차가운 '나쁜 남자' 스타일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배려도 많고 재밌고 대화가 잘 통하면 좋다. 좀 식상하긴 하다. (웃음)
- 앞으로 꿈 목표가 있다면
장기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은 편이다. 올 시즌부터 야구 전문 프로그램인 '아이 러브 베이스볼 시즌6' 주중 진행을 맡는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올 시즌을 무사히 넘기는 게 목표다. 지난해보다 더 나은 진행을 보여드리고 싶다. 팬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성장도 성장이지만 퇴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곧 설 연휴다. 팬에게 한마디.
설 연휴에도 다는 아니지만 일은 할 거 같다. 늘 팬이 많이 기대하시는 걸 안다. 열심히 노력하고 온 힘을 다하겠다. 다만 질타도 좋지만, 응원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하시는 일 다 잘되시고 건강하시길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