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의 변두리야구] "야구 선수 사인 잘 받는 비법 있다"…프로야구 사인문화
  • 김용일 기자
  • 입력: 2012.09.17 09:46 / 수정: 2012.09.17 09:46

프로 야구의 흥미로운 순위 싸움 만큼 선수를 향한 팬들의 사인 전쟁도 치열하다. / 김용일 기자
프로 야구의 흥미로운 순위 싸움 만큼 선수를 향한 팬들의 '사인 전쟁'도 치열하다.
/ 김용일 기자


▶[동영상] 야구 선수 사인 잘 받는 비법 편


[김용일 기자] ※ '김용일의 변두리 야구'는 MBC SPORTS+ '베이스볼 투나잇 야' 기획코너 <변두리야구 플러스>에서 글쓴이가 다루고 있는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다.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은 세부적인 내용과 뒷이야기까지 팬들의 함성과 선수들의 열정으로 가득찬 프로야구 소식을 생생하게 다룬다. <편집자 주>

800만 관중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 프로 야구. 이젠 프로 야구 선수도 인기 연예인 부럽지 않은 스타다. 스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인이다. 사인은 선수에 대한 위상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상품이다. 선수의 사인을 받은 팬들은 사인 용지가 한낱 종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프로 야구 스타들의 사인을 잘 받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더팩트>은 프로 야구 선수들의 사인 문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선수들이 출근하는 잠실구장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야구팬.
선수들이 출근하는 잠실구장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야구팬.



◆ 프로 야구 700만 관중, 야구 선수도 스타!
지난달 18일 오전 10시 잠실구장. 두산-삼성전이 열리기까지 7시간이나 남았지만, 많은 팬들이 경기장 중앙 문과 주차장에서 북적였다. 하나같이 경기장으로 출근하는 두산 선수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다. 선수들은 보통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출근한다. 한다솔(23) 양은 "이 시간대에 주차장에서 선수들을 자주 기다린다. 오늘 이종욱 선수 사인을 받고 싶다"며 웃었다. 두 자녀와 두산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이미자(43) 씨는 "사인을 잘 해주는 선수,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는데 출근 시간 때 운 좋으면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1시가 되자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 팬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두산 선수들이 하나 둘 자가 차량으로 출근했다.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사인북을 들고 침착하게 사인을 받는 팬, 스마트폰으로 선수와 사진 촬영에 몰두하는 팬, 공과 유니폼을 들고 선수가 차에서 내리는 위치를 파악해 재빠르게 사인을 받는 팬이 눈에 띈다. 반면 처음 현장을 찾은 낯선 팬들은 선수들의 동선을 읽지 못해 사인받기에 실패했다. 선수들도 밝게 웃으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거나 "죄송하다"고 사인을 거부하기도 했다.

두산 최주환은 "나도 어렸을 때 프로 야구 선수들에게 사인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종욱은 "차에서 내릴 때 팬들이 사인을 요청하면 거의 다 해 드린다. 아침 출근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경기 전 사인을 하는 것을 일종의 '징크스'로 여기는 선수도 있다. 기아 최희섭은 <더팩트>을 통해 "(날 잘 아는 팬들은) 야구가 잘 안 될 때 집에 빨리 가라고 배려해주신다"며 사인 자체는 단순하지만, 선수에겐 예민한 사안이 될 수 있음을 고백했다.

야구 선수들은 보통 야구공과 유니폼, 사인북에 사인을 한다.
야구 선수들은 보통 야구공과 유니폼, 사인북에 사인을 한다.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인지와 시간대는?
그렇다면 선수들에게 좀 더 쉽게 사인 받는 방법은 무엇이고, 어떤 준비물을 준비하면 더 효과가 있을까. 현장에서 본 다수 팬은 야구공과 사인북, 유니폼 등 세 가지 준비물을 가장 많이 갖췄다. <더팩트>은 두산, 삼성 선수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사인지'를 물었는데 야구공에 사인해줄 때가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기쁠 때는 따로 있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왔을 때다. 이종욱은 "팬이 내 유니폼을 들고 오셨을 땐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사인을 더 잘해주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에 대해선 "사인을 조그맣게 한다"며 재치 있게 답했다.

또한, 선수들이 사인하기 가장 쉬운 시간대는 출근 시간이었다. 그러나 홈팀과 원정팀 입장에선 차이가 있었다. 이날 홈경기를 치른 두산 최주환은 "홈경기 땐 출근 시간에 사인하기 편하지만, 팬들이 너무 많이 몰린다. 누구는 잘해주고, 누구는 대충하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원정 경기를 치른 삼성 진갑용은 "원정 버스에서 내렸을 때 사인을 많이 요청한다. 그런데 원정팀은 연습 시간이 정해져 있고, 한두 분 해주다가 사람들이 몰려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원정 땐 훈련 후 옷 갈아입는 시간에 사인하기 좋다"고 강조했다.

국내 야구장은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관중 입장을 허용한다. 일찌감치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선수들의 훈련이 끝난 틈을 이용해서도 사인을 받는다. 이때 최고 명당자리는 외야석이다. 한 팬은 "입장하면 무조건 외야석으로 달려간다. 선수들 훈련이 끝나고 사인 받는 게 의외로 쉽다"고 말했다. 기아 최희섭도 "개인적으로 훈련 끝나고 1~2분 정도가 사인하기 가장 편하다"고 강조했다. 경기 후엔 먼 길 가기 위해 분주한 원정팀보단 홈팀 선수들에게 사인받기가 용이하다. 그러나 경기 결과가 영향을 미친다. 홈팀이 경기에서 이겼을 땐 팬들도 다가가기 편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선수들을 배려하는 팬들이 많다.

동시다발적인 사인 요청을 받았을 때 야구 선수들은 저마다 우선순위가 있다.
동시다발적인 사인 요청을 받았을 때 야구 선수들은 저마다 우선순위가 있다.



◆ 동시 다발적인 사인 요청, 우선순위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선수에게 사인 요청은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진다. 이때 선수들은 대부분 아이와 여성 팬, 그리고 남성 팬 순으로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다. 기아 서재응은 "주로 아이들 위주로 사인을 많이 해준다. 특히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들. 보통 7살에서 12살사이다. 그다음이 여성 팬이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났을 땐 '죄송합니다. 다음에 해 드릴게요'하고 빠져나오는데 남성 팬들이 이해해주시더라"고 말했다. 넥센 박병호도 "어린아이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거의 거절하지 않고 해 주게 된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남성 팬을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선수들의 사인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팬들이 등장했다. 일종의 '경계심'을 갖게 된 것이다. 서재응은 "남자 성인들도 사인을 많이 해주는데 가끔 사인을 5~6개씩 받아 가시는 분들이 있다. 보통 그런 분들을 조심하라고 들었다. 특정 사이트에 사인 받은 것을 올려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그래서 여러 개의 사인을 해달라고 하실 때는 하나만 해주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잠실구장에서 만난 야구 애호가 황태성(37) 씨는 "귀중한 역사를 돈으로 사고파는 몰지각한 팬들이 있다. 선수의 사인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란(31) 씨는 "선수들이 경기 전, 후로 바쁘고 몸도 피곤할 텐데 여성 팬들의 사인 요청을 친절하게 받아주는 것 같아 좋았다. 프로 야구에 여성 관중이 늘고 있는 또 다른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팬 서비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교육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팬 서비스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교육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인하는 법도 교육하는 미국 메이저리그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의 사인 문화는 어떠할까.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특급 스타들이 즐비한 만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들이 사인에 대처하는 것에 대한 특별 교육을 한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뛴 최희섭은 "MLB는 선수들에게 사인할 때 장애인과 노약자 등 몸이 불편한 분들을 먼저 생각하고, 어린이와 여성 팬. 남성 팬 순으로 하라고 미리 교육한다. 야구장에선 100% 사인을 하는 편이다. 사적으로 식당이나 상점을 들렸을 때도 친절한 태도를 중시 한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의 팬 서비스를 프로로서 당연한 의무로 생각한다. 한국처럼 열정 있는 응원 문화는 없어도 경기 시작 전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거나 아이들과 캐치볼을 주고받는 모습은 메이저리그 전통 가운데 하나다. 아이들이 코앞에 서 있는 자신들의 영웅들에게서 미래의 꿈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지난 6월 24일 잠실에서 열린 롯데-LG 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을 때 외국인 용병 사도스키와 유먼이 섭씨 35도가 넘는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펜스에 붙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장면은 국내 선수와 차별화 된 마인드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근래 들어 많이 달라지고 있으나 국내 프로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폐쇄적이고, 승부 지상주의가 만연한 단체 환경에서 자라 팬 서비스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미디어와 관계는 물론이고 팬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방법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인은 선수와 팬의 관계 형성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팬이 없는 야구 선수가 야구는 할 수 있겠지만, 그라운드의 별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프로 선수는 경기력은 물론 팬 서비스에 있어서도 프로가 돼야 한다. 좀 더 팬과 소통하려는 의지와 마인드를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팬 역시 프로 선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선수와 팬이 건설적인 소통을 한다면 한국 야구 800만 관중의 꿈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kyi0486@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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