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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의 프랜차이즈 선수 안경현은 은퇴 후 선수 시절보다 더 바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늘 현재에 충실하자는 삶의 철학이 그를 대기만성의 대명사로 만든 듯 했다. / 노시훈 기자 |
[ 박소연 인턴기자] 올시즌 프로야구는 역대 최소경기인 255경기만에 400만 관중을 넘어섰다. 이같은 추세라면 당초 목표였던 700만 관중을 크게 넘어 800만 관중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프로야구가 국민스포츠로 사랑받다 보니 방송사의 중계 전쟁도 뜨겁다. 새로 개국한 스포츠 전문 방송까지 가세한 중계 전쟁 속에서 스포츠 채널 SBS ESPN은 지난해부터 야구 선수 출신 안경현(43)을 해설위원으로 영입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자신 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그의 해설에 응원을 보내는 팬들이 꽤 많아졌다.
지난 20일 <더팩트> 취재진은 개포동 야구연습장에서 소탈함과 솔직함이 매력인 안경현을 만났다. 직접 운영하고 있는 야구연습장 역시 그를 닮아 있었다. 소박하지만 훈련에 필요한 장비는 다 갖춰 야구에만 집중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해설 공부를 하는 듯 TV 중계를 틀어놓고 보던 그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오셨어요?"라며 반갑게 맞았다. 특유의 털털함으로 순식간에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든 그는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줬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에서 그가 꺼낸 이야기는 왜 그가 대기만성의 대명사로 꼽히는지 그리고 새로운 인생에서 왜 다시 주목받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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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현은 한때 일부 야구팬들이 제기했던 편파 중계 논란에 대해 "단지 더 많이 알아서 할말이 많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
◆ "두산 편파 중계? 더 많이 알다보니 오해 받아"
- 선수 때도 중계 보셨을텐데 직접 해설해보니까 어떠세요?
선수 때는 중계를 잘 안 봤어요. 해설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생각한대로 말이 잘 안 나온다는 거예요. 상황이 워낙 빨리 변하죠. 코멘트가 짧아야 하지만 할 말이 많아서 길어져요. 이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있죠. 선수 출신 해설자들이 전문성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이유가 알고 있는 것을 짧은 시간 내에 임팩트있게 전달하지 못해서죠. 하지만 선수 때 공 위주로 봐서 시야가 좁았는데 해설한 뒤 팀을 보게 되더라고요.
- 두산에서 오래 계셨으니까 아무래도 더 관심이 갈 것 같은데요.
관심이 더 있는게 아니고 더 많이 아는거죠. 그러다 보니 설명이 길어지고 편파라는 얘기도 나오는 거겠죠.(웃음) (요즘 두산 경기 어떻게 보세요) 전체적으로 두산 팀 컬러가 많이 바뀌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뛰고 쳤던 김동주, 이종욱, 최준석, 손시헌 같은 선수들이 노장급에 속하다 보니… 빠르고 힘있는 팀이었는데 조금 안타깝더라고요.
- 첫 해설 기억나세요?
잠실 시범경기였어요. 처음에는 야구를 했었기 때문에 일반 시청자들에게 어렵게 다가가면 힘들까봐 편하게 했는데 보시는 분들이 '전문성이 떨어진다', '성의없어 보인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요즘에는 기술적인 얘기도 좀 하고 지난해 여름부터 항상 중계를 틀어 놓고 네개 경기장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어요.
- 비슷한 시기에 함께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양준혁 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양)준혁이는 일단 예능 때문에 바빠요.(웃음) 준혁이도 같은 생각이죠. 타격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설명했을 때 누가 알아듣냐 말이죠. 선수들이야 '뭐가 빠졌어'라면 알지만 일반 시청자들한테 그걸 설명하기란 쉽지 않죠. (빨리 결혼하셔야 할 텐데) 워낙 자유 생활을 오래해서 쉽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까지 혼자 살았는데 굳이 쫒겨살 생각은 없을 것 같아요. 만약 할 생각이라면 빨리했으면 좋겠어요. 1년 안에. (눈 높으신거 같아요) 그렇죠? 연예인들을 많이 알아요. 자연적으로 눈이 높아지지.(웃음)
- 해설을 할 때 이것 만큼은 차별화 됐다고 생각하시는 점은요?
경기를 보면 분명히 '저건 눈감고도 잡는 건데 왜 놓쳤지'하는 부분이 있어요. 다 이유가 있어요. 선수들이 안타 하나 치려고 하루에 천개씩 스윙을 하고 타격 연습을 하는데 몰라서 그랬겠어요? 알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뭔가 빼먹거나 안 하는 동작이 생기는거죠. 하지만 그 경우 보통은 '저 선수 저러면 안된다' 이러고 말죠. 저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가 뭐 때문에 못하고 있는지 잘되고 있는지 그런 걸 설명하려고 해요.
- 그런 쪽 설명하다가 편파 중계라는 말 들으셨잖아요.
설명이 길어지면 왜 한 팀 얘기만 많이 하냐고 그러더라고요. 전 누가 이기든 우승하든 관심도 없는데. 저는 누가 안타를 쳐서 몇점을 내서 이겼다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오늘 경기에서는 눈에 띄진 않았지만 누가 뭘 잘했다, 아쉽다 그런 부분들을 찾아서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 해설위원으로 이루고 싶은 욕심이 있나요?
처음엔 없었는데 하다 보니까 자리를 제대로 잡고 싶어졌어요. 열심히 해서 '안경현의 해설이 어떤 해설이다'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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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현은 오랜 선수생활 동안 터득한 다양한 슬럼프 극복법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아침까지 술을 마신 것이라고 했다. |
◆ "특별한 슬럼프 극복법? 밤새 술 마시기!"
- 야구선수로 받았던 상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이 있다면요?
대학교 1학년 때 청소년 대표로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출전해 홈런상을 받았어요. 가장 뜻깊어요. 야구의 불모지인 강원도 출신(원주)인데다 처음엔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실력도 좀 떨어져서 포기할까 생각했었거든요. 견디다 보니까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제가 1번 타자도 하게 되고. 또 홈런상까지 받으니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같은 선에서가 아니라 굉장히 밑에서 출발해서 받은 상이니 더 뜻깊은 거죠.
- 92년 두산에 입단하셨는데 초반에는 좀 부진했어요.
후회되는게 연고전이 10월 초에 끝났는데 다음날부터 프로 입단하는 날까지 땀을 내본 적이 없어요. 뛰어본 적도 없고 야구 도구를 본 적도 없었죠. 지금 안양KGC인삼공사 이상범 감독을 포함해서 일곱 명이 석 달 동안 매일 술을 먹었어요. 그렇게 놀아본 적 없었거든요. 살이 찌는 것 같긴 했는데, 그때 일주일에 10kg도 뺐던 경험이 있어서 금방 뺄 자신이 있었죠. 한 20kg 이상 쪄서 입단했는데 야구를 처음 배우는 것 같이 안 되더라고요. 운동을 못 따라가니까 팀에서는 자꾸 이상한 걸 시키고요. 당시 3개월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후회스러운 시간이었어요. 지금 대학생들이 프로 준비한다고 하면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게 경험에서 나오는 거예요. 회복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거든요. 그해 군대도 갔고. 3개월 때문에 3~4년을 허송세월 보낸거죠.(깊은 한숨)
- 후반기에는 잘 풀리고 잘 했잖아요. 그렇게 변한 계기는요?
1997년 시즌 중간에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어요. 심정수랑 같이 미국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웨이트트레이닝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돌아오자마자 웨이트트레이닝를 했죠. 3년을 했는데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까 몸만 불어서 둔해졌죠. 2000년 시즌이 끝나고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보디빌딩 선수였던 트레이너를 만났어요. 이후 몸도 가벼워지고 급속도로 달라졌어요. 2001년 봄에 하와이캠프를 갔는데 움직임이 달라졌더라고요. 수비에서도 효과를 보고 체력도 생기니까 타격도 잘 맞기 시작했죠. 그때 트레이너를 만난 게 매우 컸어요.
- 마지막 선수생활을 SK에서 하셨잖아요.
두산은 선수들이 안 좋을 때 도와주는 차원이고 SK는 방향 제시를 해요. 나이를 먹고 전성기가 지났을 때 SK 같은 관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두산에선 배려한다고 좀 쉬어라 그만해도 된다 그러는데 SK는 오히려 밀어 붙여서 유지를 시켜줄 수 있는 단계까지 올리죠. SK는 강해요. 몸이 망가지긴 하죠.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니까. 그런데 김성근 감독의 지론은 그래요. 몸이 망가지든 실력이 좋아져서 주전이 되든 승부를 봐야된다는 얘기죠. 선수보다는 팀 위주. 보람이 있으니까 따라가잖아요. 우승하고 연봉도 많아지고. 연습만 죽어라고 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안 하겠죠.
- 선수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슬럼프도 많았을 텐데 가장 극적으로 극복한 때는 언제였나요?
2007년 시즌에는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안 맞더라고요. 1할 대? 그 정도였으니까. 현대 유니콘스랑 3연전을 앞둔 전날 친구들이 소주 한 잔하자고 하는거예요. 어차피 잘 맞지도 않고 타선도 3번에서 6번으로 떨어졌으니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아침까지 마셨어요. 잠깐 눈붙이고 경기장 나갔는데 타석에 들어가니까 힘이 들어 생각도 없어지고 힘도 안 들어가요. 배트도 짧게 잡게 됐고요. 그날부터 3경기 연속 3안타를 쳤어요. 타율이 금방 3할이 넘어가고 다시 3번타자 되고. 그 해 그대로 쭉 잘 맞았죠. 이 방법은 일년에 한 번 써 먹을까 말까죠. 자꾸 써먹으면 몸 버리니까. 보통은 고비가 오면 쓰러질 때까지 뛰어보기도 하고, 비디오를 보고 잘못된 부분을 찾기도 하고. 극복 못할 슬럼프는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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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장을 찾은 후배 누나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는 안경현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결혼했을 것 같다고 취재진에게 말하며 쑥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
◆ "후배 누나에서 부인으로…첫눈에 반해 결혼 결심"
- 어린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뭘까요?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얻어 내려고 해요. 야구는 단순 노동이라서 기본적인 동작을 가지고 연습하다 보면 자신의 몸에 맞는 자세가 나오게 되거든요. 사회인 야구선수나 어린 선수들은 잘 하는 프로선수들 자세를 연구해요. 선수는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올라온 건데. 공이 빠르고 변하는 것을 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자세가 나오는 건데, 그걸 연구하고 흉내내요. 폼은 멋있게 나올지 모르지만 정작 공은 잘 못 치고 다치거든요. (앞서가지 말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기본기에서 노력해서 자신의 것을 만들 생각을 해야지 경지에 올라있는 프로선수들을 똑같이 따라하면 오히려 결과가 나쁠 수 있죠.
- 야구선수를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충고 한 마디 하신다면요?
항상 얘기하는게 야구는 단순노동이에요. 그 고통과 노력을 감내할 수 있으면 해도 괜찮아요. 보통 야구를 처음 시작하면 선수가 되겠다고 오거든요. 손바닥이 까져서 세수를 못 할 정도로 연습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못 이겨요. 딱 하루만 하면 그만둔다고. 재미를 넘어서 고통을 참을 수 있으면 해도 되는데 그게 안되면 괜히 발을 들이지 않는게 좋죠.
- 최종 꿈이 감독이라고 들었어요.
모든 야구 선수들은 은퇴하면 감독하겠다는 생각은 다 있죠. 여건이 안 되서 그렇지.(웃음) 초등학생한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대통령이에요’ 하는 것과 같죠. (코치 수업을 받을 계획도 있나요) 대부분 일본을 많이 가는데 사실 그쪽 코치들이 자기 선수들한테나 지도를 하지 코치한테 하진 않잖아요. 그냥 옆에서 보는 거지. 그런데 SK 시절 일본인 코치들은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한 최고 일류급들이었어요. 난 그때 선수였으니까 2년 동안 그 사람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었고요. 난 그게 더 큰 공부였다고 생각해요.
- 어떤 스타일의 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대부분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감독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선수생활을 거치면서 자신이 겪어왔던 감독들 테두리 안에서 스타일이 나오게 되거든요. 저는 운이 좋게도 김성근 감독, 김인식 감독 두 분 모두에게서 야구와 선수들을 다루는 방법들을 배웠기 때문에 각자의 장단점을 섞어 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분명히 연습은 좀 많이 시킬 거고요. 철저하게 팀플레이 위주로 갈 거예요. 선수들과 대화도 많이 해서 벽은 없애면서 끝까지 선수를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는 그런 감독이 되고 싶어요.
- 결혼 얘기도 빼놓을 수 없죠. 결혼을 좀 일찍 하셨잖아요?
군대 갔다 와서 2군에 있을 때 목동경기장에 장인, 장모와 아내가 같이 왔어요. 처남이 같은 팀 후배였거든요. 첫눈에 반해서 소개시켜 달라고 했죠. 처음엔 안해주더라고요.(웃음) 한달을 졸랐어요.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었는데 정말 보기 좋더라고요.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후배한테 누나를 소개시켜 달라고 할 때부터 결혼할 마음이었죠. 후배 성격을 아니까 누나도 어떨지 알겠고. 그때가 24살이었는데 다시 돌아가도 결혼했을 거예요.
- 마지막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요?
인터넷 보면 선수들 욕이 너무 많더라고요. 물론 욕할 수도 있죠. 그런데 무조건 욕하지 말고 과정을 보고 이해를 해달라는 거죠. 야구는 결국 실수투성이 스포츠인데 그냥 못한다고 하지 말고 이게 어떤 실수였는지 알고 욕하라는 거죠. 프로선수되기 얼마나 힘든지 다들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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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현은 모교인 연세대학교 야구공에 멋지게 사인을 해줬다. |
◆ <더팩트>은 스포츠 전문 웹진 'PlayGround'를 통해 6월15일부터 20일까지 안경현 해설위원에 대한 팬들의 질문을 받았다.
- 네티즌들이 개그맨 김대희씨 닮았다는 말을 많이 하시던데 (cookgirl)
그 사람 닮았다고 사인해달라는 말 엄청 많이 들었어요. 김대희씨 사인 좀 하나 해주세요. 이걸 얼마나 들었는데. 기분나쁘지 않아요. 난 좋은데. 어떤 때 보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후배가 소개시켜준다는데 연락이 없어요. 만나면 재밌을 것 같아요.
- 야구선수가 안 됐다면 지금쯤 뭘 하고 계실까요? (silver4077)
아마 과수원에서 사과 농장을 하고 있지 않을까. 원주에 살 때 아버지가 과수원하셨거든요. 계속 원주 살면서 과수원하고 있었겠죠. 운동 쉬는 날 아버지 따라가서 일도 많이 했거든요.
- 경기를 중계하다 보면 선수로 뛰고 싶진 않나요? (ehgmlwns)
설마요. 후회없이 다 뛰었어요. 몸도 안 좋고. 선수생활 오래하다 보니까 관절염같은 게 생겼거든요.
- 다시 야구를 하신다면 어떤 포지션을 맡고 싶나요? (swk1988)
그래도 내야수요. 내야수가 재밌어요. 그리고 투수는 날짜별로 나오지만 타자는 매일 경기를 하잖아요. 공격과 수비 다 할 수 있고. 또 내야에서 이뤄지는 기술이 더 세밀하고 화려하기도 하고요.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본인 만의 특별한 기술. (위원님이 자랑하는 특별한 기술은요) 나는 다리가 느린 대신 핸들링이 좀 좋았어요. 잡는 건 자신이 있었죠. 어려운 것도 내야 땅볼이나 불규칙 바운드 같은 것도요.
<글 = 박소연 인턴기자, 사진 = 노시훈 기자>
스포츠서울미디어 스포츠기획취재팀 claire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