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기획] 이승준 "원래 꿈은 축구선수? 동생 덕에 농구선수 됐어요"…①
  • 박소연 기자
  • 입력: 2012.06.20 11:00 / 수정: 2012.06.20 11:00


농구 국가대표 이승준은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실력과 따뜻한 성품까지 두루 갖춘 엄친아로 불린다. / 태릉 = 이새롬 기자
농구 국가대표 이승준은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실력과 따뜻한 성품까지 두루 갖춘 '엄친아'로 불린다. / 태릉 = 이새롬 기자


[ 태릉 = 박소연 인턴기자] 2m를 넘긴 큰 키(205cm)에 조각 같은 얼굴.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연예인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는 이승준(34·원주 동부)이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더팩트> 취재진을 반겼다.

13일 태릉선수촌 농구장. 오는 7월 열리는 2012 런던올림픽 출전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얼마나 구슬땀을 흘렸는지 처음 보는 순간, 더 날씬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기자는 지난달 2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이승준과 미니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남자농구 대표팀은 다음달 2일부터 8일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 최종예선을 통과하기 위해 밤낮 없이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얼마나 훈련을 하느냐고 묻자 식사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훈련에 매진하느라 6kg나 살이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농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고 한국을 대표해서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승준의 눈빛 속에서 올림픽을 향한 원대한 꿈과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느껴지는 열정과 에너지는 결코 지금의 이승준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농구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단 이승준은 2009년 서울 삼성 썬더스에 입단해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 남자프로농구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에는 제16회 광저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은메달의 쾌거를 이끌었다. 그뿐만 아니다. 외모에 실력까지 모두 가진 '엄친아'지만 절대로 자만하지 않는 성품이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실한 플레이와 따뜻한 성품은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더팩트>의 인기 코너 'SOCIAL PLAYGROUND(소셜 플레이그라운드)' 8회차 주인공인 이승준과의 인터뷰에는 이벤트에 참여한 독자들의 질문도 포함됐다.

이승준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순간부터는 오직 올림픽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최종 목표는 메달이라는 그에게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이승준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순간부터는 오직 올림픽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최종 목표는 메달이라는 그에게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 "올림픽 가본 박태환 부러워…최종 목표는 메달"

- 대표팀 유니폼이 참 잘 어울려요. 다시 입은 기분이 어때요?
처음 발탁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어요.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잖아요. 국가대표가 되면 (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태극기가 여기 이렇게 달려 있어요. 그러면 저는 한 팀을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를 위해 뛰는 거예요. 외출할 때나 훈련할 때,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응원을 보내요. 그럴 때마다 '잘하고 싶다, 잘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더 커지죠. 사람들은 우리가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 만큼 국외 경기에서 최고의 경기력으로 한국의 이름을 빛내길 바라죠. 심지어 국외에 머물고 있는 교포들도 우리가 잘하면 굉장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올림픽 말고는 다른 생각이 없어요. 최선을 다할 거예요.

- 대표팀 분위기는 어때요?
김선형, 박찬희, 양동근, 양희정 같은 경우는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같이 뛰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올림픽도 함께 준비하고 있잖아요. 다시 만났을 때 "그때 기억나? 연습량도 엄청 났고 정말 힘들었는데"라면서 추억을 돌이키며 더 끈끈한 정을 다지고 있죠. 나머지 선수들도 모두 굉장히 친해요. 가족 같은 분위기랄까. 다들 장난기도 많고 유쾌해요. 훈련이 워낙 힘드니까 웃으면서 해야 덜 힘들거든요.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가 런던이 목표이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해요. 그걸 보면 또 자극받아서 더 열심히 하고. 태릉선수촌 안에서는 모두가 게을러질 수가 없어요.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내죠.

- 대표팀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있으니까 후배 선수들도 많이 의지할 것 같은데요.
(이승준 선수는 가슴을 부여잡고 상처입은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저 갈래요.(웃음) 맞아요. 이곳에서는 제가 가장 나이가 많아요. 고등학생인 선수들과 비교하면 제가 거의 스무살이 많은 셈이죠. 하지만 전 어린 선수들보다 경험이 많잖아요. 유럽, 미국에서 뛰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다독이고 조언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렸을 때도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디펜스는 이렇게 해라. 오펜스는 저렇게 해라'처럼 방향을 잡아줄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정말 잘한다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줄 수도 있고요. 어쩌면 제겐 지금이 국가대표로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다음 세대를 책임질 어린 선수들을 돕는 것이라 생각해요.

- 아직 마지막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
(한국말로) 아직 십 년은 더 할 수 있어요! (웃음) 그렇지만 원래 국가대표팀에서는 어린 선수들이 많이 뛰니까요. 사실 지금 특별히 아픈 데도 없고 컨디션도 좋아서 얼마든지 더 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대표팀에서 불러주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함께 할 준비가 돼있어요. 태극마크를 단다는 건 정말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불러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을 거예요. 국가대표 감독님은 나라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할테고 그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요.

- 곧 올림픽 최종예선이잖아요. 한국은 16년 동안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다들 각오가 대단한 것 같아요.
광저우에 있을 때 박태환 선수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제가 "아시안게임 정말 좋다"라고 감탄했는데 박태환 선수가 "좋죠. 그런데 올림픽은 정말 굉장해요(awesome)"라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좋냐고 물었더니 "아시안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어요. 그래서 경기도 열심히 뛰고 훈련도 열심히 해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예요.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니까요.

- 아시아권에서는 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에서는 한 번도 없었잖아요. 메달권 진입도 가능하다고 보나요?
목표는 언제나 높게 잡아야죠. 굉장히 어렵고 큰 목표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올림픽에 나간다면 최종 목표는 무조건 메달이죠.(웃음) 메달권에 있는 미국이나 중국은 워낙 큰 나라이고 또 선수들도 많아서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꺼라 생각해요. 높이도 있고 진행도 굉장히 빠르니까요. 하지만 한국팀은 워낙 팀플레이가 좋고 열심히 하니까 그런 팀들에 오히려 혼란을 줄 수도 있어요. 우린 할 수 있어요. 왜 안 되겠어요.

귀화혼혈선수로 겪는 차별이 아쉽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이승준은 국민들이 보내주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했다.
귀화혼혈선수로 겪는 차별이 아쉽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이승준은 국민들이 보내주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했다.

◆ "귀화혼혈선수 차별 아쉽지만 한국에서 뛰는 것 만으로 감사"

- 민감한 질문이지만 안 할 수가 없네요. 최종적으로 전태풍 선수가 탈락하고 이승준 선수가 합류하게 됐잖아요.
(국제농구연맹은 만 17세 이후에 귀화한 선수에게는 국가별로 한명씩만 국제 대회 출전을 허용하고 있다)
(한숨)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알다시피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귀화혼혈선수는 1명이잖아요. 제가 여기 있다는 것은 더 없이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죠. 하지만 전태풍 선수가 얼마나 런던에 가고 싶어하고 경기를 뛰고 싶어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었죠. 같은 한국인인데 귀화를 했다는 이유 만으로 특별 취급돼 한명만 선택돼야 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전태풍 선수뿐 아니라 이동준, 문태영, 문태종, 김민수… 모두 다 잘하는 선수들인데 룰이 그렇다니 따라야죠. 그렇지만 조금 아쉽긴 해요.

- 시민권까지 포기했는데 서운하지 않아요?
사실 이해는 안 돼요. 이상한 규칙인 것 같아요. 전 엄연히 여권 두 개가 아니라 하나를 가진 한국인인데. 어머니도 한국분이고요. 그래도 이렇게 한국에서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제 동생과 김민수 선수가 오기 전에는 귀화 선수에 대한 전례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인식도 많이 바뀌고 규제도 많이 완화돼서 많은 선수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죠. 동생과 한국에서 농구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지금 한국에 있고 제가 잘 해서 사람들이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 귀화혼혈선수라 받는 차별이 또 있잖아요. 삼성에 대한 애정이 컸지만 어쩔 수 없이 팀을 옮겨야 했는데 그때 기분은요?
(국내 프로농구 규정상 귀화혼혈선수는 한 팀에서 3년 이상 뛰지 못한다)
삼성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아마 평생 못 잊을거예요. 한국에서 뛸 수 있게 해준 것도 삼성이고 한국으로 귀화할 때도 큰 도움이 돼줬죠. 삼성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팀으로 가면서 좀 아쉬웠는데 제 동생이 삼성에 들어가서 기분이 좋아요. 삼성은 정말 좋은 팀이거든요. 삼성에 있던 3년 동안 많이 행복했어요. 구단, 선수들, 팬들 모두 잊지 못할 거예요.

- 다음 시즌부터 원주 동부에서 뛰게 됐는데 어떨 것 같아요?
동부는 디펜스가 정말 강해요. 선수들이 다들 머리도 좋고 능력도 좋죠. 강동희 감독님을 포함한 코치진도 훌륭하고요. 특히 김주성 선수는 상대하기 힘들었는데 같은 팀이 돼서 기뻐요. (동부 유니폼 입고 삼성을 만난다면) (헛웃음) 생각 안 해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상할 것 같아요. 같이 뛰었던 선수들과 다른 유니폼을 입고 만난다…. 디펜스 어떻게 하지?(웃음)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지금은 대표팀 생각만으로도 벅차서 동부 생각을 별로 못 했어요. 런던에 꼭 가야하잖아요. 대표팀 끝나고 나면 많이 생각해야죠.

농구와 동생이 인생의 전부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승준은 원래 축구를 더 좋아했지만 동생 덕분에 농구의 길로 들어섰다.
농구와 동생이 인생의 전부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승준은 원래 축구를 더 좋아했지만 동생 덕분에 농구의 길로 들어섰다.

◆ "원래 꿈은 축구선수? 동생 덕분에 농구선수 됐어요"

- 언제부터 농구선수가 꿈이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였을 거예요. 아버지가 대학교 때 농구선수셨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원래 농구에는 관심이 없고 축구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동생은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 매일 농구를 하자고 졸랐죠. 그러다 보니 "그래, 농구하자" 이렇게 된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농구를 시작할 때가 초등학생이었는데 대학교 때까지 매일 같이 동생과 일대일 농구를 했어요. (누가 더 많이 이겼어요 -sjhftw-) 거의 비슷해요. 오늘 내가 이기면 내일은 동생이 이기는 식으로요.

- 항상 동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승준 선수에게 동생은 어떤 의미인가요?
동생은 가족이자 제 최고의 친구예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의논을 하죠. 무슨 일이 생겨도 둘이 힘을 합치면 해결 못 할 게 없어요. 처음에 한국 왔을 때도 그랬어요. 동생이 저보다 먼저 한국에 왔는데 엄청 고생했거든요. 한국어도 못했고, 한국 문화도 몰랐고, 한국 농구스타일도 몰랐으니까요. 귀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요. 동생은 매일같이 힘들다고 "집에 가고싶다"고 했지만 그때마다 "조금만 더 참아. 곧 다 괜찮아질거야"라고 다독였어요. 이젠 많은 것이 바뀌었고 우린 둘 다 한국에서 뛰고 있어요.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을 잘 버텨준 동생이 자랑스러워요.

- 시즌 끝나고 동생과 호주여행 다녀왔다면서요?
네. 시드니, 멜버른부터 뉴질랜드 남섬까지… 모든 곳을 다 돌아다녔는데 정말 깨끗하고 사람들도 다 친절했어요. 거기서 스쿠버 다이빙도 하고 사냥도 가고 래프팅도 하면서 하루하루 정말 재미있게 보냈어요. 생일(3월18일) 때는 스카이 다이빙도 했고요. 음식도 맛있었는데 너무 비싸더라고요. 처음에 호주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만 해놓고 아침 먹으러 근처 식당에 갔거든요. 오믈렛 두개, 아메리카노 두개를 주문했는데 50불 달라고 하더라고요.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레스토랑도 아니고 일반 식당인데 깜짝 놀랐어요. 그것만 빼면 정말 환상적인 여행이었어요.(웃음)

- 언젠가는 은퇴를 할 텐데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사실 어제 동생과 전화로 이야기 했었어요. 같이 레스토랑을 차리자고요.(웃음) 유럽가면 많이 볼 수 있는 야외에 테이블이 있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여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그런 곳 말이에요. 그리고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서도 힘쓰고 싶어요.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농구도 배우면서 영어도 배울 수 있게 미국으로 보내서 학교를 다니게 하는 거죠. 미국에는 좋은 감독, 코치, 트레이너들이 많으니까요. 걔들이 돌아오면 한국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수 있겠죠. 대학교를 가고, 유럽을 가고, 세계를 누빌 수 있게 해준 것도 다 농구였고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준 것도 농구덕분이었으니까 이젠 제가 농구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할 것 같아요.

- 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silver4077-
그냥 제가 농구하는 것을 보고 같이 신나하고 즐기면서 농구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아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같은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보면 농구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거든요. 경기 끝나면 바로 농구했어요.(웃음) 농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뿐 아니라 일반 팬들도 제가 농구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뛰고 농구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농구할 때 재밌고 신나는 기분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 농구선수를 꿈꾸는 꿈나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아버지가 항상 제게 했던 말씀인데 농구를 할 때 재밌고 즐거워야 한다는 거예요. 경기에서도 항상 즐기는 마음으로 뛰라고 강조하셨죠. 분명히 처음에는 농구가 좋아서 시작했을 텐데 밤낮 없이 훈련하고 연습량이 많다보면 자칫 일처럼 느껴질 수가 있거든요. 농구는 즐기는 '게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풀어지거나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되겠지만요. 이건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죠. 뭐든 즐기면서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어요.

팬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이승준은 최선을 다해 성원에 보답하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팬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이승준은 최선을 다해 성원에 보답하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글 = 박소연 인턴기자, 사진 = 이새롬 기자>
스포츠서울미디어 스포츠기획취재팀 claire85@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