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순간]<8> '쇼트트랙 전설' 김동성 "오노 사건, 펑펑 울다 실신까지…" ①
  • 유성현 기자
  • 입력: 2012.01.19 07:00 / 수정: 2012.01.19 07:00

▲ 한국 쇼트트랙 전설 김동성 제주빙상연맹 이사./ 배정한 기자
▲ '한국 쇼트트랙 전설' 김동성 제주빙상연맹 이사.
/ 배정한 기자

[유성현 기자] 지난해 한국 스포츠계는 크나큰 경사를 맞았다. 강원도 평창의 '10년 숙원'이었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것. 세계인들의 겨울 축제가 우리 안방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피겨퀸' 김연아를 비롯한 국민들 모두 벅찬 감동과 환희에 뒤섞여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동계 올림픽 무대에서는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이하 쇼트트랙) 1000m와 단체전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딴 김기훈을 시작으로 2개 대회 연속 2관왕(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의 전이경,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안현수와 진선유, 2010년 밴쿠버올림픽의 '빙속 3인방' 모태범-이상화-이승훈과 '월드스타' 김연아 등 많은 선수들이 '동계스포츠 약소국' 한국의 위상을 빛내며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쇼트트랙 전설' 김동성(32) 만큼이나 동계올림픽 무대에서 굴곡진 선수인생을 보낸 이는 흔치 않다. 지난 1998년 나가노 대회 1000m 금메달을 따 내며 18세의 나이로 스타덤에 오른 김동성은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대회에서 미국 홈 텃세와 '오노 사건'으로 다잡았던 금메달을 빼앗기는 좌절을 맛봤다. 그로부터 딱 10년이 지난 지금, <더팩트>이 과거 쇼트트랙사에 한 획을 그었던 김동성 제주빙상연맹 이사를 만났다. 여전히 그에게는 '오노 파문'이 참 아쉽고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 "최고의 순간? 하늘 계신 아버지 응원으로 첫 금메달"

▲ 김동성이 자신의 선수 인생을 돌아보며 최고의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김동성이 자신의 선수 인생을 돌아보며 '최고의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동계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전관왕, 오노 파문, 이른 은퇴 등 선수 인생이 참 다사다난 했다. 스스로 꼽는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
무엇보다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1998년 나가노 대회가 기억에 남는다. 대회를 딱 열흘 앞두고 운동을 무리하게 해서였는지 무릎 연골판이 찢어졌었다. 무릎에 물이 차서 굽혀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출전 명단에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회를 치렀다.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메달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시합에 워낙 집중하니 아픈 게 느껴지지 않더라.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더라.(웃음)

- 그렇다면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 우승을까지 거머쥐었다는 건가?
혹시 도핑 테스트에 걸릴까봐 진통제도 안 맞고 나섰다.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아 보니 내심 우승까지 바라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결국 아픈 몸을 이끌고 우여곡절 끝에 1000m 결승에 올랐다. 열심히 앞 선수를 따라 붙다 결승전 마지막 바퀴에 힘껏 발을 내밀었는데 정말 근소한 차이로 내가 리자준(중국)을 제치고 1등을 했더라. 그 짧은 순간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다. 흔히 우승은 하늘에서 정해준다고 하지 않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많이 응원해 주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 선수 생활을 하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됐다고 들었다.
1997년 4월에 열린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대표선발전을 아버지가 보러 오셨다. 아프신 몸을 이끌고 제가 2관왕 하는 걸 직접 보고 내려가셨다. 그런데 가시던 길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결국 돌아가셨다. 대회 첫째 날을 마치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임종을 했다. 한참을 슬픔에 잠겨 있는데, 어머니가 이틀째 선발전을 치르는 걸 아버지도 하늘에서 바랄 거라고 하시더라. 그때 제가 둘째 날 대회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올림픽도 나서지 못했고 금메달 꿈도 접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선발전에 나서서 잘 마무리하고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금메달을 땄을 때 아버지께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정말 기뻤다.

◆ "오노에게 金 내준 후 펑펑 울다 실신까지…"

▲ 김동성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노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 김동성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노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 4년 후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는 억울한 일도 겪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오노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어떤 기분이었나?
오노한테 금메달을 빼앗겼을 때에는 정말 화가 났었다. 스케이트 날집도 안 끼우고 라커룸에 들어와서는 분을 못 삭이고 펑펑 울었다. 울다 못해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며칠 후 다른 부문을 뛰어야 했는데, 나는 연습은커녕 산소호흡기만 끼고 있었다. 결국 500m에 나섰지만 이미 대회에 맞춰 만들어놨던 몸은 다 풀려버린 상황이었다. 다른 선수들에게 내가 힘들다는 표정을 보여주기 싫어서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지만 컨디션을 끝내 올리지 못했다.

-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는 어린 패기로 금메달을 땄다면,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대회에서는 전성기를 맞은 원숙한 기량으로 더 좋은 성적이 기대됐다. 하지만 여러 문제가 겹치며 '노골드'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상실감이 컸을 텐데?
2002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스스로 마지막 세계대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훈련 중에 몇 번이나 탈진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당시 목표는 단 하나, 전 종목 석권이었다. 기록을 보더라도 가능성이 충분했다. 지금 선수들이 세운 기록을 10년 전에 찍을 정도였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회에 나섰는데, 오노 사건이 벌어졌던 1500m를 비롯해 리자준이 제 다리를 잡아 당겨 넘어뜨렸던 1000m까지 일이 꼬였다.

- 당시 홈 텃세나 편파 판정도 있었지만 세계 최고의 실력이라는 점이 다른 선수들에게 견제의 대상이 됐던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월등한 기록을 갖고 있어서였는지 견제가 너무 심했다. 그때는 선수들 뿐 아니라 심판들도 훨씬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다. 차라리 1998년 나가노 대회처럼 기대 밖에 있다가 우승을 차지한 게 더 쉬웠을 거다. 게다가 경기 내내 팬들은 발을 구르며 미국을 연호할 정도였다. 홈 어드밴티지는 그렇다 쳐도 심판의 편파 판정까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분노의 질주, 오노에게 복수 못했던 마음 드러내"

▲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 전관왕 위업을 달성할 당시 선보인 분노의 질주를 설명하는 김동성.
▲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 전관왕 위업을 달성할 당시 선보인 '분노의 질주'를 설명하는 김동성.

- 당시 오노 사건으로 반미 정서가 크게 늘었다. 예상 밖으로 날이 갈수로 커져가던 영향력에 당혹스럽지는 않았나?
당시에는 오노 파문을 비롯해 효순-미선 사건 때문에 반미 정서가 엄청났다. 사실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내가 팬이어도 열받았을만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6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할 때도 일부는 아시아인이라고 무시하는 걸 느꼈었다. 사실 2002년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안정환 선수의 골로 이천수 선수오 함께 오노 세리머니를 했을 땐 정말 통쾌했다.

- 오노에 대한 악감정, 이후 맞대결로 풀 기회가 없었던 점이 아쉬웠을 것 같다.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가 끝나고도 다음 세계선수권에서 오노를 꺾기 위해 훈련에만 매진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맞붙어 실력으로 꺾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정작 오노가 대회에 불참했하더라.(웃음) 그래서 유명한 '분노의 질주'가 나온 거다. 사실상 마지막 국제 대회였으니 모든 걸 쏟아붓고 싶었던 점도 있었고, 대회에 안 나온 오노를 겨냥한 행동이기도 했다. 결국 오노와 맞대결은 하지 못했지만 대회 전관왕을 달성해 유종의 미를 거둔 것 같다.

- 우리나라에서는 오노가 '꼼수'의 대명사로 불리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실력을 꽤나 갖춘 선수 아닌가?
실력이나 승부욕은 있는 선수다. 힘과 기술 다 갖췄지만 약간 꼼수가 있다는 거다. 한국에서는 실력은 없고 꼼수만 많은 친구처럼 비춰지고 있는데, 좀 더 깨끗하게 플레이 했다면 그렇게 크게 미움 받는 선수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글 - 유성현 기자, 사진 - 배정한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yshalex@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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