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여당 의원들이 검찰을 향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과 관련해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 내부에서조차 "노골적인 압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팩트 DB |
'정치권 이벤트' 전락한 '이재용 수사'...사회 분열 우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기소 타당성에 관해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두고 정치권의 관심이 뜨겁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권'이라기보다 일부 여당 의원들과 '타도 삼성' 대열에 합류한 몇몇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일 수사심의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바쁘다. '이재용'과 '삼성'을 향한 이들의 관심은 경제 상황을 우려하는 경제계의 그것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뜨겁고 맹목적이다.
문제는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성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사심의위 권고 발표 이후 최근 자신의 SNS에 "그 누구보다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이 부회장의 불기소를 권고하다니 당황스럽다"라고 지적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돈 있으면 재판도 수사도 없다는 선례를 남긴 지극히 불공정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29일에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까지 "방대한 수사기록의 신빙성을 믿는다면 검찰은 당당하게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하라"며 목소리를 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검찰 조직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여당에서 검찰 스스로 권력 남용을 막겠다며 도입한 수사심의위를 헐뜯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수사심의위는 지난 2018년 검찰이 권력 남용의 부작용과 폐해를 없애겠다며 검찰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아이러니한 광경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공세를 퍼붓는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논리다. 표현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기소를 부르짖는 가장 큰 이유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나마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자 내민 근거는 검찰이 1년 8개월여에 걸친 수사 기간 동안 50여 차례의 압수수색, 430여 회에 달하는 관련인 소환조사를 통해 20만 쪽 분량의 수사기록까지 확보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공을 들였으니 기소하라는 것이다. 이들의 말처럼 검찰은 특정 기업인과 기업을 향해 전례 없는 '해부' 수준의 수사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혐의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증거와 단서를 확보했다면, 과연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을까. 되려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에 검찰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를 삼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지난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기소 타당성에 관해 '불기소 및 수사 중단'을 권고했다. /더팩트 DB |
정치권의 '입김'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은 앞서 지난 1월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이 파기환송심을 진행 중인 이재용 부회장의 단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노골적으로 재판부를 압박했을 때에도 나온 바 있다.
죄를 지었다면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든 상대적으로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든 법 앞에선 모두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서열 1위 기업 총수라고 해도 예외로 둬선 안 된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헌법 제1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등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부 소속 판사의 몫이고, 같은 행정부 소속이라 할지라도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그나마 같은 여당 내에서 "정치인이라고 해서 검찰에게 기소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상 바람직하지 않다"(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국가 운영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정치권의 '입김'은 스스로 '무소불위'의 권력임을 인정하는 꼴이자, 월권이자 반(反)재벌 정서를 키워 사회 분열 불씨를 키우는 땔감 역할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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