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 사태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부 기업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배정한 기자 |
건전한 시민의식 결여,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적
[더팩트 | 서재근 기자] 경제계의 눈과 귀가 충남 천안에 있는 삼성SDI 배터리 공장을 향했다.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이곳에서 만나 전기차(EV) 배터리 관련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기 때문이다. 재계 1, 2위 그룹 수장의 만남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안팎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두 사람의 만남을 '생존 전략'을 짜려는 리더의 고충과 고뇌를 방증하는 사례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사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주요 핵심 사업 분야에서 직접 경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삼은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5G 통신 장비를 비롯해 삼성SDI가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 등은 미래차를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현대차그룹과 밀접하게 접점을 형성하고 있는 분야다.
그럼에도 양측은 지금까지 눈에 띄는 '협력 모델'을 구축하지 않았다. 기술적인 요인도 있지만, 현대기아차가 그간 생산·판매한 전기차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가 탑재됐고, 그나마 이 부회장이 인수를 추진한 하만의 JBL, 하만카돈 등 카 오디오가 현대차 일부 모델에 탑재된 정도가 협업 사례의 전부다.
오랜 세월을 거쳐 암묵적으로 형성된 '경쟁 심리'가 반영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삼성과 현대차의 두 리더가 이제는 상호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의 필요성에 모두 공감했다는 점이다. 각 회사 고위 관계자들 역시 확대 해석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갈수록 심해지는 글로벌 기업 간 경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급격히 확산한 대내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전례 없는 최악의 위기 상황 속에 이처럼 주요 그룹 총수가 전면에 나서 생존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산업계 곳곳에 퍼진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2월을 기점으로 3개월여 동안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경제계를 할퀴었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이태원 클럽발(發) 대규모 확진으로 또다시 재확산 가능성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이태원 집단 감염 소식이 처음 수면에 드러난 지 수일 만에 우려는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지난 11일을 기점으로 정상근무 체제 전환에 나서려 했던 다수 기업들이 일제히 계획을 수정했고, LG유플러스와 카카오뱅크, CJ제일제당 등 일부 기업은 본사 사옥과 지역 생산라인 등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문을 닫거나 가동을 멈춰야 했다.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확진자에 하루에만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손실을 떠안았던 백화점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 부천 중동점과 롯데백화점 명동본점 등은 이태원 방문 직원의 확진 판정으로 최근 점포 운영을 조기 종료했다.
그나마 일부 기자실을 비롯한 사무시설과 출근 제도 정상화를 예정대로 단행한 기업들도 행여 확진자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적자전환', '사상 최대 규모 적자' 등 최근 주요 기업들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경영 성적표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식어다. 제조분야부터 항공, 정유·화학 분야와 이커머스 업계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서 코로나19 영향권에서 벗어난 기업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줄줄이 이어지는 마이너스 성장세가 코로나19 영향이 제대로 반영될 2분기에 그 범위와 정도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4월을 기점으로 '보상 소비' 효과를 기대했던 시장 분위기도 금세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경제계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각종 경제 관련 법안 처리와 규제 개혁 등 정부에 거는 희망도 모자라 이제는 일부 젊은 층의 올바른 시민의식에 대한 기대까지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최근 정부가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데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상식을 갖춘 건전한 시민의식 없이는 정부의 의지도, 기업의 눈물겨운 자구노력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일부의 무지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어쩌면 '코로나19'라는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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