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는 현역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린다. 펠레와 함께 역대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마라도나도 메시를 자신의 후계로 추켜세울 정도다. 팬들은 ‘메시도나’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다. 지난달 새 연봉 계약에서는 현역 축구선수 가운데 최고인 180억원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다.
메시의 소속팀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 어린 시절 고향 마을 팀에서 아버지로부터 축구를 배운 메시는 열한 살 때 성장 호르몬 이상을 발견, 치료를 약속한 바르셀로나의 제의를 받아들여 아르헨티나를 떠났다.
바르셀로나는 유소년팀에 데려다 키운 이 축구 천재 덕에 2008-200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프리메라리가, 코파 델 레이를 휩쓸어 3관왕에 올랐다. 메시 자신은 FIFA 올해의 선수, 유럽 최우수선수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스페인의 달콤한 귀화 유혹조차 뿌리칠 만큼 애국심이 가득한 메시가 최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기만 하면 갈팡질팡이다.
지난 6월 남아공 월드컵에서 메시, 테베스 등 막강 공격력을 앞세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를 자부하던 아르헨티나는 막 새로운 진용을 얽어 짜 별로 기대하지도 못했던 독일에게 4-0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 경기에서 메시가 보여준 것이라곤 몇 차례의 문전 드리블 정도, 그마저도 독일의 조직적인 방어망에 묶여 무용지물이었다.
지난 8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평가전은 더욱 실망적이었다. 메시는 예의 눈부신 돌파로 일본 수비진을 휘저으며 화려한 드리블을 자랑했다. 그러나 얻은 게 없었다. 그림 같은 프리킥도 일본 골키퍼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반면 알베르토 자케로니 신임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상대 진영에서부터 적극적인 수비로 아르헨티나 공격수들의 발목을 잡았고, 90분 내내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전반 18분에는 기습적인 강슛이 골키퍼의 어설픈 펀칭으로 흘러나오자 오카자키가 재치 있게 밀어 넣어 결승골 얻어냈다.
믿기 어려운 1-0의 일본 승리. 남아공 월드컵 16강으로 기세가 오른 일본은 최근 A 매치에서 파라과이를 1-0, 과테말라를 2-1,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제압하는 놀라운 전과를 올리고 있다. 조광래 감독의 한국을 그렇게 몰아붙이고도 0-0으로 비긴 건 역시 한일전에서 갖게 되는 심리적 부담 때문?
아르헨티나는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실망스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FIFA 랭킹 5위의 강팀이다. 마라도나가 떠난 후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대행(48)이 지휘봉을 잡은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부에노스아이레스애서 벌어진 독립 200주년 기념 경기에서 월드컵 챔피언 스페인을 4-1로 대파하며 기가 되살아나던 참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도의 상대에게 0-1로 지는 축구라면 아르헨티나도 메시도 한심해 보이기는 마찬가지. 아직도 메시는 그저 프로 그라운드에서 돈 잘 버는 선수일 뿐일까.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는 잉글랜드의 안방 호랑이 웨인 루니와 다를 바 없다. 메시도 선배 마라도나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10번을 달고 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두 10번의 차이가 확연하다.
메시의 골 감각은 탁월하다. 볼 컨트롤도 최고 수준이다. 프리메라리가에서 상대 수비진을 휘젓고 골문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면 마치 강을 거슬러 폭포 위로 튀어 오르는 송어의 용솟음을 연상케 된다. 그러나 국가대항전에서 아직 경기 흐름을 좌우할 정도의 큰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마라도나의 플레이에서는 그라운드 전체를 내다보는 안목이 엿보인다. 그는 상대 수비진과 부딪쳤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졌다. 골은 누가 넣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넣느냐가 중요하다. 마라도나가 펼치는 공격을 보노라면 미식축구 쿼터백의 기발한 작전 전개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낀다. 마라도나는 그야말로 대양을 가로지르는 돌고래 같은 느낌을 주던 선수다.
두 선수는 우선 위치와 역할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마라도나가 중원에 군림하는 공격 리더라면 메시는 전방에 투입된 전문 공격수에 가깝다. 그만큼 메시의 플레이는 직접적인 골 사냥에 치우쳐 있는 셈이다.
메시가 무작정 중원으로 물러난다 해서 마라도나와 같이 넓은 시야로 공격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의 장점은 문전을 파고드는 기민한 동작, 한 템포 빠른 슈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 있는 바르셀로나가 용도를 잘못 짚을 리도 없을 것이다.
올해 만 스물세 살, 혹시 더 많은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 메시도 마라도나 같은 큰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까. 천하의 마라도나도 스물둘에 처음 출전한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제 성미를 못 이겨 견제하던 브라질 선수와 주먹다짐을 벌이다 퇴장당했다. 바로 전 대회 챔피언 아르헨티나는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올해 남아공 월드컵 독일전에서 메시가 당한 굴욕보다 더 한 수모였다. 그리고 스물여섯이 되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침내 세계 축구를 평정하고 월드컵을 품에 안았다.
2014년이면 메시도 스물일곱. 과연 메시가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열리는 다음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와 같은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을까. 메시를 비롯, 아르헨티나의 주력 선수들이 더욱 원숙해질 4년 후가 어쩌면 아르헨티나에게 더 놓칠 수 없는 월드컵 3번째 우승의 찬스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