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한국 축구, 축구협회 리더십 공백이 너무 길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11.06 00:00 / 수정: 2026.11.06 00:00
대표팀 관리부터 유소년 시스템 정비까지… 리더십 부재 속에 10년 대계가 말라간다
구체적 선거일정과 제도화 방안 공개해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4월7일 천안 서북면 코리아풋볼파크 개관식에 앞서 취재진에게 개관 소감을 말하고 있다./더팩트DB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4월7일 천안 서북면 코리아풋볼파크 개관식에 앞서 취재진에게 개관 소감을 말하고 있다./더팩트DB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대한축구협회의 리더십 공백이 위태로울 정도로 장기화되고 있다. 정몽규 회장이 중도 사퇴한 이후 수개월째 수장이 공석인 가운데, 국가대표팀은 정식 사령탑 없이 임시 체제로 A매치를 치르고 있다. 중동 정세 여파로 아시안컵 개최 일정이 연기되면서 대표팀 감독 선임 등 당장의 현안은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

그러나 대회 일정이 미뤄졌다고 축구협회가 안고 있는 행정적 과제까지 늦춰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급한 현안이 한숨 돌린 지금 이야말로 장기화된 리더십 공백을 해소하고 조직을 정상화할 해법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앞서 'K-축구 혁신위원회'가 공정한 회장 선거 시스템 도입을 골자로 한 권고안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축구계 안팎의 기대감은 컸다. 그러나 선거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절차와 방식으로 치러질지에 대한 세부 계획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용수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달 국정감사장에서 "12월 18일 선거를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밝힌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하지만 그조차 불과 한 달여를 남겨둔 지금까지 구체적인 선거 로드맵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더팩트DB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더팩트DB

당초 이사회와 대의원총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던 선거 관련 안건은 지난 4일 열린 이사회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 기존 선거 방식과 개혁안의 방향성 및 공정성을 둘러싸고 이사와 대의원 간 견해차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츠서울은 축구계 관계자 말을 인용해 차주 이사회가 다시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지만, 선거 제도 정비를 위한 내부 논의가 언제쯤 구체적인 결론에 이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차기 회장 선거를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한 상황에서 이사회의 기본적인 논의조차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허탈감을 넘어 현 집행부의 추진력과 행정 리더십에 의문을 갖게 한다.

축구협회가 내부 이견과 행정 혼선으로 표류하는 사이, 한국 축구의 뿌리부터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다.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 약화와 선수단 내부 갈등설이 잇따라 분출되며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고 있지만, 이를 중재하고 관리해야 할 협회는 누구 하나 책임 있게 나서지 않는다.

당장 협회의 리더십 공백으로 추진 동력을 잃은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대표팀 정식 감독 선임과 내부 갈등 중재는 물론, 유소년 인프라 확충과 지도자 교육 체계 정비도 시급하다. K3·K4리그의 재정 자립 기반 마련과 1~7부를 잇는 디비전 시스템의 내실화, 그리고 세계 수준과 격차가 벌어지는 국내 리그의 경쟁력 강화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들 모두 한국 축구의 10년 대계가 걸린 핵심 과제지만,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정 정체가 장기화될수록 차기 회장이 선출되더라도 정체된 행정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9월 모레노 감독을 한국축구대표팀의 임시 감독으로 선정한 대한축구협회 이사회 장면./KFA
지난 9월 모레노 감독을 한국축구대표팀의 임시 감독으로 선정한 대한축구협회 이사회 장면./KFA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선거 일정과 절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새로운 후보군의 참여 기회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후보들이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해야 경쟁력 있는 비전과 구체적인 공약을 마련하고, 이를 축구계에 알리며 평가받을 수 있다. 선거 일정이 촉박하게 확정되고 후보 등록과 선거운동 기간마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존 축구계의 인맥과 조직을 활용할 수 있는 인사들에 비해 새로운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는 한국 축구의 변화를 이끌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어렵게 하고, 후보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출마 의사를 공개적으로 내비친 인물은 이석재 전 경기도축구협회장 정도다. 그 역시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협회 부회장을 지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존 집행부와 거리를 둔 새로운 개혁 인사의 등장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차기 축구협회장은 협회 재정 운용의 효율성 제고와 안정적인 수익 기반 확대는 물론, 추락한 한국 축구의 위상 회복과 미래 비전 제시, 각급 대표팀과 유소년 육성 시스템의 연계, 심판 자질 향상 등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중차대한 자리다. 하지만 지금은 수장 공백 속에 협회 행정 전반이 추진력을 잃고 있다.

아시안컵 연기가 협회 행정 공백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축구협회는 이제라도 구체적인 선거 일정과 절차, 혁신위원회 권고안의 제도화 방안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 투명한 일정 공표가 전제되어야만 참신한 개혁 후보들이 한국 축구의 미래 비전을 들고 당당히 경쟁에 참여할 수 있으며, 추락한 행정 신뢰 또한 회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리더십 공백이 길어질수록 한국 축구가 잃는 것은 단순한 행정의 시간이 아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를 준비할 소중한 기회까지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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